3화
‹ ›서재의 문을 닫는 소리가 등 뒤에서 낮게 울렸다. 도현은 손끝에 남은 문고리의 냉기를 느끼며 복도로 나섰다. 형광등 불빛이 유난히 창백하게 느껴졌다. 청아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아직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맴돌고 있었다.
복도 끝,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는 서은이 보였다.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그가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갈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 청아 언니가 다 말했어?
서은의 목소리는 낮았다. 평소의 밝은 웃음기가 사라진, 낯선 무게가 담긴 음성이었다.
도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말을 고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 그럼 오빠도 알겠네. 나 그때 진짜 힘들었어.
그녀가 벽에서 몸을 떼며 다가왔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그의 앞에 섰을 때, 시선이 정면으로 그를 마주했다. 흔들림이 없었다.
도현은 그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 나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
순간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귓속에서 이명이 울리듯 그 말이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 서은아,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 남매인 거 알아.
그녀가 말을 잘랐다.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 그런데 나 진심이야. 장난도 아니고, 착각도 아니야.
서은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도현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등 뒤는 이미 벽이었다. 차가운 벽면의 감촉이 셔츠 너머로 전해졌다.
퇴로가 없었다.
— 오빠 떠나고 나서 매일 사진 보면서 잠들었어.
서은의 눈빛이 흐려졌다. 마치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표정이었다.
— 오빠 목소리가 기억 안 날까 봐 무서워서, 예전 통화 녹음도 몇 번씩 들었어. 밤에 혼자 이불 속에서, 그 목소리 하나 붙잡고 버텼어.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눈가가 붉어졌다.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 그런데 오빠는... 나한테 남매 이상은 안 되는 거야?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그리고 그 확인 속에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부정하고 싶은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도현은 말을 고르지 못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이건 단순한 응석이 아니었다. 그 진지함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 서은아. 나는... 너를 여동생으로 생각해. 그게 당연한 거고.
말을 뱉는 순간에도 스스로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느꼈다.
— 나는 그게 싫어.
서은이 그의 셔츠 앞섶을 살짝 붙잡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 오빠도 나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지? 그럼 오빠도 나를 예전처럼 보지 말아줘.
도현의 손끝이 떨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밀어내야 한다는 이성과, 눈앞의 절박한 눈빛 사이에서 갈등이 일었다.
'이건 잘못된 거야. 그런데 왜 밀어낼 수가 없지.'
머릿속에서는 그녀를 떼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담긴 무언가가 그의 팔을 붙잡고 있는 듯했다.
— 오빠.
서은이 그의 셔츠를 조금 더 세게 붙잡았다. 손등의 힘줄이 하얗게 도드라졌다.
— 나 한 번만이라도, 오빠가 나를 다르게 봐줬으면 좋겠어.
그녀가 발끝을 세워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도현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듯했다.
'안 돼.'
그는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의 입술은 뺨을 스치듯 지나갔다. 짧은 순간, 그러나 그 감촉은 선명하게 남았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복도의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박였다. 그 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정적이 무거웠다.
서은은 물러서지 않고 그의 뺨에 남은 자신의 입술 자국을 손끝으로 슬며시 어루만졌다. 그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단단했다.
— 다음엔 안 피할 거지?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잠겨 있었다. 말을 뱉으려 해도 목구멍 안쪽에서 무언가가 막고 있는 듯했다.
— 나 기다릴 수 있어. 오빠가 나 진짜로 봐줄 때까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복도를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흔들림 없이 곧았다. 마치 이 순간의 승패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걸음걸이였다.
도현은 벽에 등을 붙인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 소리가 귀에까지 울렸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그는 그 손을 천천히 쥐었다 펴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건...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거야.'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가, 다시 서은의 목소리가 되풀이해서 떠올랐다. 오빠 목소리가 기억 안 날까 봐 무서워서. 그 한마디가 가슴 어딘가를 찌르듯 파고들었다.
그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규칙적인 걸음이었다. 익숙한 발소리였다.
도현이 고개를 돌리자, 계단 위쪽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보름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서은이 다가오던 순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그녀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와 눈동자의 온도가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 언니가 먼저 시작했네.
그 말투는 가볍고 태연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도현은 그 말의 의미를 채 이해하기도 전에, 보름이 계단을 내려와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녀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눈빛은 더 선명하게 굳어갔다. 마치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장면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그 안에서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 오빠, 나도 질 생각 없어.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웃음기가 여전히 입가에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다정함이 아니었다.
도현은 벽과 두 사람 사이에 갇힌 채, 방금 전과는 또 다른 종류의 긴장이 목을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