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쾅!
술집 문이 안쪽에서 밖으로 튕겨 나오듯 열렸다.
"뭐여, 죽은 놈이 왔다고?"
누군가 술 냄새를 풍기며 튀어나왔다.
그럴 리가.
죽은 놈이 술집 앞에 서 있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겠냐만, 지금 나는 정말로 그 죽은 놈이었다.
전대구는 바닥에 떨어진 술잔을 밟으며 나를 손가락으로 겨눴다.
"강도윤! 니 강도윤 맞지! 절벽에서 뒤진 놈이 왜 여깄어!"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마을 골목 안쪽 창문들이 하나둘 열리는 게 보였다.
불빛이 켜지고, 사람 그림자들이 창틀에 매달려 이쪽을 내려다보는 게 마치 재개발 반대 집회 취재 나온 방송국 카메라 앵글 같았다.
[전도서 1:9, 이미 있던 것이요 후에도 있을 것이며 새것이 없나니]
천공, 너 지금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격자무늬 실루엣이 껌뻑였다.
[신원 노출 확률 91%에서 97%로 상승했습니다.]
[도주 경로 재계산 중입니다. 로딩... 로딩...]
로딩이 웬 말이냐, 지금 상황이 이렇게 급한데.
버퍼링 걸린 넷플릭스도 이보단 빠르겠다.
나는 침착하게 웃어 보였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뭔 개소리여! 니 얼굴을 내가 몰라?"
전대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낮술로 벌게진 얼굴에 눈만 또렷했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 눈빛은 그대로다.
지구에서 300년을 보내고 돌아왔는데 알아보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인간의 기억력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동네 반상회 명부에 내 얼굴 박제라도 해놨나.
"저는 도윤이 아니라, 도윤이랑 좀 닮은 사람입니다."
"닮았다고? 니 왼쪽 볼에 그 흉터까지 똑같은데?"
아 맞다, 흉터.
300년 수행하면서 몸은 새로 태어난 것처럼 바뀌었지만 흉터 하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생 참, 디테일은 살아 있는데 큰 그림만 지워지는 법이 없다.
성형은 되는데 흉터 레이저 시술은 안 되는 이상한 시스템이었다.
술집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몰려나왔다.
호기심 어린 눈들이 나를 훑었다.
누구는 손에 젓가락을 든 채로, 누구는 신발도 못 신고 슬리퍼 한쪽만 끌고 나왔다.
이 동네는 남의 일에 관심 끄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게 분명했다.
[욥기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겠느냐]
낚인 건 나다, 확실히.
그물도 없이 그냥 걸려든 셈이었다.
전대구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다가왔다.
"니 죽었다고 다들 그랬어. 근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왔으면, 뭔가 설명을 해야 하는 거 아녀?"
말투는 시비였지만 눈빛엔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어쩐지 그 표정이 낯설지 않았다.
꼭 오랜만에 만난 채무자를 보는 표정 같기도 했고, 실종신고 냈던 가족을 보는 표정 같기도 했다.
"설명할 게 딱히 없는데요. 그냥 살아 있었습니다."
"살아 있었다고? 4년 동안 어디서!"
"멀리서요."
대답이 성의 없다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지구에서 300년 수행했다고 말하면 누가 믿겠나.
미친놈 취급받고 정신병원 끌려가는 쪽이 더 현실적인 결말이다.
그것도 여기 정신병원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 자슥이 끝까지 시치미를 떼네!"
전대구가 갑자기 팔을 뻗어 내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손이 닿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피할 생각도 없었는데 발이 자연스럽게 반보 물러났다.
[천명지체 반응 속도 계측 중입니다.]
[측정 불가. 시스템 과부하 방지를 위해 표시를 생략합니다.]
표시를 생략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 지금.
숫자로도 못 세는 속도라는 거냐.
민망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이거 완전 게임에서 스탯 찍다가 서버 터진 기분이네.
"거, 좀 살살 하시죠."
"뭐가 살살이야, 이 죽었던 놈이!"
전대구가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엔 진심으로 화가 난 얼굴이었다.
술집 앞 마당이 순식간에 관중석이 됐다.
동네 사람 여남은 명이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꼴이라니.
마치 배틀 유튜브 라이브 방송 현장 같았다.
좋아요와 구독 눌러주세요, 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누군가는 아예 담벼락에 걸터앉아 자리를 잡았고, 누군가는 옆사람 어깨를 툭툭 치며 뭔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러다 실시간 채팅창까지 생기는 거 아닌가 싶었다.
"자, 전대구님. 진정하시고요."
"진정은 니가 해야지! 니가 죽어서 온 마을이 얼마나 슬퍼했는데!"
슬퍼했다는 대목에서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어? 이거 뭐지.
진짜로 서러웠던 건가.
감동적인 순간이 될 뻔했지만, 다음 순간 전대구가 주먹을 날렸다.
감동은 짧고 주먹은 빨랐다.
사람 감정이란 게 이렇게 순식간에 배신당할 수도 있구나, 오늘 또 하나 배웠다.
피할 필요도 없었다.
주먹이 내 뺨에 닿기 직전, 발이 저절로 미끄러지듯 움직여 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손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서 있었을 뿐인데 전대구가 자기 힘을 못 이기고 앞으로 쏟아졌다.
퍽!
전대구는 자신의 팔로 자기 얼굴을 후려치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술집 앞 흙바닥에 그대로 얼굴을 처박았다.
흙먼지가 확 피어올랐다가 가라앉는 그 몇 초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조용해졌다.
관중들도, 나도, 심지어 천공도 잠시 말이 없었다.
바람 소리만 골목을 훑고 지나갔다.
[강도윤의 신체 능력이 인간 표준치를 초과 관측됨.]
[관측된 힘의 강도: 리히터 규모 환산 시 국지적 진동 유발 가능 수준]
국지적 진동은 무슨, 사람 하나 넘어졌을 뿐인데.
리히터 규모까지 갖다 붙이는 건 좀 오버 아니냐, 시스템아.
지진 관측소에 신고라도 들어가면 어쩌려고 이런 걸 대놓고 띄우는 건지.
하지만 사실 나도 놀랐다.
손도 안 댔는데 저렇게 나가떨어지는 게 정상은 아니었다.
무맥이었던 놈이 이제는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이 넘어지는 존재가 됐다는 뜻이었다.
300년 동안 뭘 얼마나 굴렀는지 스스로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전대구는 바닥에 엎어진 채 잠깐 꿈틀거리더니, 코를 틀어막고 낮게 욕설을 뱉었다.
"아이고 코야..."
그 신음소리마저 어딘가 익숙했다.
4년 전에도 술 먹고 자주 저러고 다녔던 인간이었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건가 싶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거 봤어? 손도 안 대고 저렇게..."
"강도윤 그놈, 진짜 살아 있었네. 근데 뭔가 달라졌는데."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달라졌다뿐이여? 사람이 아니구먼, 저게."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뜨끔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에서 좀 승급한 케이스였으니까.
소문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촤르르르륵, 어디선가 술병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마저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지.
정적 속에서 술병 하나 구르는 소리가 무슨 클라이맥스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나는 쓰러진 전대구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거 좀 곤란하게 됐네."
[신원 노출 확률 100%.]
확률에 소수점 없는 숫자가 뜬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91에서 97까지 오르는 것도 조마조마했는데, 이건 그냥 대놓고 확정 판정이었다.
천명지체 시스템이 이렇게 딱 잘라 말하는 걸 보면 진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인 모양이었다.
동네방네 광고 낸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전대구는 여전히 바닥에서 코를 잡고 낑낑거렸고, 구경하던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술렁였다.
누군가는 벌써 골목 안쪽으로 뛰어가는 게 보였다.
아마 이 소식을 옆집, 옆옆집까지 전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소문이라는 게 이렇게 발이 빠른 거였나.
인터넷 없이도 이 정도 속도면, 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무슨 비둘기 통신망이라도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숫자를 확인한 순간, 마을 어귀 쪽에서 낯익은 지팡이 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느리지만 분명한 발소리였다.
군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순간 잦아들었다.
누군가 숨을 죽이며 그쪽을 돌아봤다.
나 역시 저절로 시선이 그 소리를 따라갔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저 지팡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이 마을에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하필 그중에서도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그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