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가 저를 쫓아옵니다

5화

토요일이 되었다. 나는 평소처럼 학교에 있어야 했다. 토요일 보충 수업 때문이었다. 교실은 평소보다 훨씬 한산했다. 절반은 학원으로, 절반은 늦잠으로 빠져나간 자리였다. 나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운동장 너머, 교문 쪽에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어제 옥상에서 봤던 남자였다. 한지훈. 나중에 박준서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이름까지 알아왔다. 검은 코트를 입은 채로,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멀리서 봐도 자세가 곧았다. 그 자세가 이상하게 불편했다. 한지훈은 교문 앞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시선을 뗐다. 괜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신경이 쓰였다. 계속. 칠판을 보다가도, 노트에 뭔가를 적다가도, 자꾸 시선이 창밖으로 새어 나갔다. 한지훈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지 코트 자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게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시 갔다. 한지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한설이 그쪽으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한설의 걸음걸이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느긋했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다는 걸 눈치챘다. 두 사람은 몇 마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거리가 멀어서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설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한지훈이 뭔가 말했고, 한설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한지훈의 어깨가 조금 앞으로 기울었다. 말을 하는 건지, 사정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한지훈이 한설의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 심장이 목까지 차올랐다. 왜 저러는 거지.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나는 숨을 죽였다. 한설이 손을 뿌리쳤다. 뿌리치는 동작이 단호했다. 너무 단호해서, 오히려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창문에 쪼르르 붙어 있다가, 박준서에게 등을 붙잡혔다. "야, 뭐 하는데 그렇게 붙어 있어." "아, 아니, 그냥···." 박준서가 창밖을 힐끔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거 그 사촌 오빠 아니야?" "어." "뭐 하는 거지, 저기서." 박준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계속 창밖을 살폈다. "손목 잡는 거 봤어?" "···봤어." "쎄한데." 박준서가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저 사람 어제도 그렇고, 뭔가 좀 이상하지 않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창밖만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한지훈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뒷모습이 어딘가 지쳐 보였다. 한설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몸을 돌려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괜히 펼쳤다 덮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어제 옥상에서 한설이 했던 그 말. 낮고, 확실한 톤으로. 하지만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목을 잡힌 것도, 그걸 뿌리친 것도, 전부. 수업이 다시 시작되고, 선생님이 뭔가를 설명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박준서가 슬쩍 옆에서 쪽지를 건넸다. 〈뭐냐 저거. 너 표정 왜 그래.〉 나는 쪽지를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한설을 다시 만났다. 평소처럼 내 앞자리에 앉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식판을 내려놓는 손이 태연했다. 나는 그 태연함을 한동안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한설이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한설이 젓가락을 멈추고 나를 봤다. "뭐가." "아침에···." "봤어?" "어, 어쩌다가···." 목소리가 저절로 작아졌다. 한설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짧게 말했다. "별거 아니야." "손목 잡혔잖아요." "그게 뭐." 무심한 말투였지만, 나는 그 무심함이 더 신경 쓰였다. 식판 위의 국이 식어가는 걸 보면서도, 나는 숟가락을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프지 않았어요?" 한설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이 오래 이어졌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피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돼?" 짧은 질문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가 다시 원래로 돌아갔다. 나는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숟가락을 들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한설의 손목에 가 있었다. 붉은 자국이 남아 있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소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신경 쓸 필요 없어." 한설이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오빠는 원래 그래. 우리 집이 좀···." 말을 하다가 멈췄다.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한설은 끝내 말을 잇지 않았다. 젓가락 끝으로 반찬을 뒤적이는 손짓만 이어졌다. 그 손짓이 평소보다 느렸다. 대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오늘 매점 갈래?" 분위기가 바뀐 걸 알았다. 더 묻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저, 저는 다음 시간이···." "알아. 됐어." 한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판을 정리하는 손길이 평소와 똑같았다.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처럼. 그리고 지나가듯 한 마디를 남겼다. "오빠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나 그 집 안 가." 그 말을 남기고 한설은 급식실을 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문이 닫히고도 한동안 그 자리에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그 집. 큰아버지. 토요일. 세 단어가 머릿속에서 자꾸 겹쳐졌다. 무언가 한설이 절대 말하지 않으려는 부분이 있다는 걸, 나는 그제야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그 어렴풋함이, 이상하게도 계속 가슴 한쪽을 눌러왔다. 식판 위의 국은 이미 다 식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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