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석문 너머에서 전해지는 진동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몸체가 바닥을 밀며 이동하는 듯한 무게감이 발밑까지 전달됐는데, 그 진동은 일정한 박자를 두고 반복되고 있었다. 쿵, 쿵, 쿵. 마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몇 배로 증폭시켜놓은 것 같았고, 그 박동 하나하나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등줄기까지 저릿하게 만들었다. 나는 손을 홈에서 슬쩍 떨어뜨리며 몸을 뒤로 물렸다. '뭔가 있긴 있다는 건데, 지금 열면 진짜 죽는 거 아니냐.' 게임에서 이런 상황이면 백 퍼센트 강력한 몹이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였고, 현실에서도 그 법칙이 다르게 적용될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호기심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어쨌든 이 유적이 각성의 제단과 무관하지 않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고, 여기서 뭔가 얻을 게 있다면 그게 지금 내가 가진 어설픈 능력보다 훨씬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고민 끝에, 손바닥을 다시 홈에 가져다 대는 대신 벽면의 문양을 따라 석문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조급하게 굴다가 이 좁은 통로 안에서 뼈도 못 추리고 끝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문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일종의 경고문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선이 교차하는 각도, 특정 문양이 반복되는 위치, 그리고 그 문양들 사이에 유독 짙게 새겨진 균열의 흔적까지—모든 것이 우연이라기보다는 의도된 배치처럼 보였다. '위험, 봉인, 개방 금지 같은 뉘앙스인가.'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었지만, 오래전 고문헌을 다루던 감각이 그런 인상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옛 문서에서도 이런 식으로 경고를 시각적으로 배치해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나는 석문을 여는 대신 그 주변을 더 살펴보기로 마음을 바꿨고, 통로 벽면을 따라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하니 작은 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천장이 낮아 허리를 살짝 숙여야 했고, 벽면에는 석문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문양이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는데, 이쪽 문양은 경고보다는 뭔가를 인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발끝에서 먼지가 훅 일어나며 콧속을 자극했고, 나는 손등으로 코를 문지르며 방 안을 훑어봤다. 그 방 안에는 낡은 석함이 하나 놓여 있었다. 표면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지만, 그 아래로 은은한 금속성 광택이 비쳤는데, 어두운 통로 안에서도 그 광택만큼은 유독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뚜껑을 밀어 올렸다. 뚜껑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돌과 돌이 맞물리는 마찰음이 통로 전체에 낮게 울려 퍼졌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거 소리 때문에 저 안에 있는 뭔가 깨는 거 아니냐.' 나는 숨을 죽인 채 잠시 기다렸지만, 다행히 안쪽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안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결정체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별빛을 그대로 응축해놓은 것처럼 옅은 청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빛은 일정한 간격으로 밝아지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했고, 그 리듬이 아까 석문 너머에서 느껴졌던 진동과 어딘가 닮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거 아까 각성 공간에서 봤던 그 빛이랑 색이 똑같은데.' 각성의 제단에서 마주했던 그 알 수 없는 존재의 빛,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서 옅게 흔들리는 이 결정체의 빛.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너무 닮아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결정체를 집어 들었고, 그 순간 손끝을 타고 짜릿한 전류 같은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전기가 관통하는 듯한 감각이었는데, 아프다기보다는 오히려 몸속 깊은 곳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성진결정(星辰結晶)을 획득했습니다.]
[성진지력과의 친화도가 상승했습니다.]
[공간법칙의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문구가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결정체를 쥔 손바닥에서 힘이 빠르게 차오르는 감각이 느껴졌고,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손끝의 빛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오는 청백색 빛의 결이 아까보다 훨씬 촘촘해져 있었고, 그 빛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치 그 안에 아주 작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몇 번이나 결정체를 눈앞에 들어 확인했는데,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돌려볼 때마다 빛의 굴절이 달라지는 게 신기해서 잠시 넋을 놓고 구경했다. 이 정도면 아까 겪었던 표범괴물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이거 진짜 인생 역전 아닌가.'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삶에서 이런 걸 하나 주웠다고 이렇게 들뜨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나는 실없이 웃으며 결정체를 품속 깊이 챙겨 넣었다. 옷깃 안쪽에 넣은 결정체가 심장 바로 옆에서 은근한 온기를 뿜어내는 게 느껴졌고, 그 온기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놓게 만들었다.
그러나 안도의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방을 나서 통로로 돌아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다시 그 무거운 진동이 시작됐고, 이번엔 석문이 아니라 통로 반대편, 지상으로 이어지는 구멍 쪽에서 흙이 우수수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위쪽에서 뭔가가 통로를 억지로 뚫고 내려오려는 것 같은 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고, 무너진 구멍 사이로 뭔가 거대한 형체가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는 걸 목격했다. 그 형체가 완전히 통로 안으로 들어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늘로 덮인 두 개의 머리가 동시에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그것이 쌍두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미친, 저건 또 뭐야.' 나는 뒷걸음질 치며 통로 벽에 몸을 붙였다. 등에 닿는 돌벽의 냉기가 셔츠 사이로 스며들었고, 그 차가운 감각이 오히려 정신을 붙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쌍두사의 두 머리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나를 살피고 있었는데, 한쪽 머리는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고 다른 머리는 통로 안쪽, 내가 방금 나왔던 석함이 있던 방향을 살피듯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두 개의 시선이 동시에 다른 곳을 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를 짓누르는 압박감이었다.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표범괴물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무거웠다. 표범괴물을 상대할 때는 적어도 상대의 움직임을 하나로 읽으면 됐는데, 이건 두 개의 판단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몸통 하나에 머리가 두 개면 대체 어느 쪽이 진짜 위협인 건데.' 나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속으로 던지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통로 반대쪽 석문 너머에서 아까 느껴졌던 그 거대한 진동이 다시 시작됐다. 마치 쌍두사의 등장에 반응하듯, 석문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돌가루가 문틈 사이로 서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다리 여러 개가 달린 거대한 몸체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정확한 형체는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문틈 사이로 비치는 그림자만으로도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두 존재 사이에 완전히 갇혔다는 사실을 그제야 온전히 실감했다.
나는 결정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이를 악물었다. 쌍두사와 저 석문 너머의 존재, 둘 중 무엇이 먼저 움직일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이 좁은 지하 통로 안에 완전히 갇혀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좌우로 도망칠 공간도 없었고, 위로는 무너진 구멍이 있었지만 저 구멍을 통해 올라가려면 쌍두사의 코앞을 지나야 했다. 손끝에서 청백색 빛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저 두 존재를 상대하기에 충분한 힘인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방금 얻은 힘에 취해 실없이 웃던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는데, 지금은 그 웃음이 얼마나 섣부른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는 중이었다. '인생 역전은 무슨, 인생 끝나는 거 아니냐.' 나는 자조 섞인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저 멀리, 무너진 구멍 위쪽 지상의 어둠 속에서, 뭔가 검은 그림자가 미동도 없이 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