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회의는 삼 일 뒤였다.
고고학연구원 측에서 정식으로 안건을 올렸고, 의정부는 이를 심의하기 위해 소회의를 열었다.
나는 그 사흘 동안 매일 같은 꿈을 꿨다.
배신자가 두르고 있던 허리띠.
거기 새겨진 나선 문양.
처음엔 세 개였다.
그런데 어제 밤엔 다섯 개였다.
숫자가 늘어난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뭔가 진행되고 있다는 거겠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게 달력을 확인하는 거였다.
회의 날짜.
디데이처럼 세고 있었다는 게 좀 웃겼지만,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박정민 선배는 이번 회의의 담당관이었고, 나는 보조로 서류를 정리하는 역할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알고 갔다.
의정부 건물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관복 입은 낭관들이 종이 뭉치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복도 한쪽에서는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는 소리도 들렸다.
'대현국 옛 기록에서 묘사되던 관청 분위기, 딱 이거네.'
물론 사극에서는 이런 데서 신참이 발언권을 얻는 장면은 안 나온다.
주인공이나 그러는 거지.
나는 그냥 서류 넘기는 배경 인물 1이었다.
회의실 문 앞에서 박정민 선배가 서류 뭉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현아, 너는 그냥 앉아서 서류만 넘겨주면 돼. 알겠지?" 선배가 다짐받듯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순순히 답했다.
그때는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정말로.
회의실 상석에는 좌승지가 앉았고, 맞은편에는 고고학연구원장 이규석이 자리했다.
오십 대쯴 되어 보이는 사내로, 눈빛에 확신이 넘쳤다.
그런 확신은 대개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확신 있는 눈빛은 딱 두 종류였다.
정말로 확실한 걸 아는 사람의 눈빛.
아니면 뭔가를 숨기고 있어서 그걸 감추려고 더 확신에 찬 척하는 사람의 눈빛.
'저건 후자다.'
경험상 그랬다.
"이번 요청은 학술적으로 대현국 역사상 최대 발견이 될 겁니다." 이규석이 목청을 높였다.
"허가만 내려주신다면 국가에 명예를 안겨드릴 수 있습니다!"
'명예는 몰라도 골치는 확실히 안겨줄 것 같은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서류를 조용히 넘겼다.
보조답게, 티 안 나게.
박정민 선배가 옆에서 서류를 뒤적이며 진땀을 뺐다.
"원장님, 적막림 중심부는 선대부터 진입이 금지된 구역입니다. 이유는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가 말을 꺼내려는데,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니 재검토가 필요한 게 아닙니까!" 이규석이 말을 끊었다.
목소리가 커서 회의실 벽이 살짝 울리는 것 같았다.
좌승지가 미간을 좁혔다.
"박 낭관, 반대 논리를 더 확실하게 정리해 오라 했잖은가."
"그, 그것이..." 선배가 말을 흐렸다.
그럼 그렇지.
선배는 사람은 좋은데 이럴 때 밀리는 게 문제였다.
시험 전날 밤새 공부해도 막상 시험장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애들 있잖은가.
딱 그 타입이었다.
이규석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밀어붙였다.
"제가 삼십 년을 이 학문에 바쳤습니다. 적막림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제가 제일 잘 압니다!"
'삼십 년을 바쳤다는 거랑 지금 이유를 명확히 말 못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원래 발언권이 없는 자리였다.
보조는 그냥 서류를 넘기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게 예의였다.
그게 이 세계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신입은 입 다물고, 어른들 얘기 끝나면 서류 정리하고 퇴근.
근데 자꾸 어제 밤 꿈이 떠올랐다.
다섯 개로 늘어난 나선 문양.
그게 왜 하필 지금, 적막림 얘기가 나올 때 떠올랐는지 스스로도 정확히는 몰랐다.
그냥 감이었다.
'감이라니, 이게 무슨 소설 주인공 같은 대사야.'
자조하면서도 몸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실례지만." 나는 손을 들었다.
박정민 선배의 눈이 커지는 게 옆에서도 느껴졌다.
'야, 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는 눈빛이 그대로 날아왔다.
좌승지가 나를 흘겨봤다.
"자네는?"
"보조로 나온 이도현입니다." 나는 짧게 답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게." 좌승지가 허락했다.
목소리에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허락이라기보다는 그냥 '어디 한번 해봐라' 정도의 톤이었다.
박정민 선배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왜 그러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청원서를 펼쳤다.
밤새 몇 번이나 훑어봤던 문서였다.
정확히는, 꿈에서 깨서 잠이 안 올 때마다 붙잡고 있었던 문서였다.
"원장님, 이 문서 세 장째에 보면 이전 두 차례 요청과 이번 요청 사이에 접근 범위가 갑자기 세 배 넓어졌습니다." 나는 손끝으로 문단을 짚었다.
"이전에는 외곽 조사만 언급하셨는데, 이번에는 중심 유적지 진입을 요청하셨죠. 그 이유가 문서 어디에도 명확히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규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 그건 조사 진척 상황에 따라—"
"진척 상황을 보여주는 조사 보고서가 첨부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말을 끊었다.
"보고서 없이 갑자기 세 배 넓은 접근을 요청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이거 좀 무례했나.'
속으로 살짝 자기 검열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규석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마에 살짝 땀이 비치는 것도 보였다.
"내부 사정이라, 자세히 설명드리긴 어렵습니다만—"
"내부 사정이 있으시다면 그 사정부터 소명하시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나는 담담하게 밀어붙였다.
나름 예의는 지켰다.
목소리도 안 높였고, 표현도 정중했다.
근데 내용은 그냥 '증거 대세요'였다.
정중함과 압박은 양립 가능하다는 걸 이럴 때 배운다.
좌승지가 슬쩍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박 낭관, 이 사람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예, 예! 저도 그 부분을... 지적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박정민 선배가 급히 말을 받았다.
방금 지적하려던 참이라니, 표정은 아까까지 사색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위기 앞에서 본능적으로 숟가락을 얹는다.
이규석이 다급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좌승지 어른, 이건 학술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저기 저 보조가 뭘 안다고—"
"제가 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서에 없는 걸 있다고 우길 수는 없다는 건 압니다." 나는 곧바로 받아쳤다.
이규석의 눈이 흔들렸다.
'집착이란 게 원래 이런 얼굴을 만드는구나.'
싶었다.
절박함과 확신이 뒤섞인, 어딘가 위태로운 눈빛이었다.
좌승지가 손을 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됐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원장은 다음 회의까지 상세 조사 보고서를 준비해 오게. 그전까지 허가증 발급은 보류하겠네."
이규석이 뭐라 더 말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었다.
"알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결국 회의는 청원서 재검토로 결론이 났다.
허가증 발급은 보류되었고, 이규석은 다음 회의까지 상세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로 나오자 박정민 선배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야, 너 뭐야. 그런 걸 언제 다 파악했어?"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제 밤에 서류를 좀 다시 봤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밤에 본 건 서류가 아니라 악몽이었지만, 그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진짜, 순간 나 오줌 지릴 뻔했다. 갑자기 손 드는데 심장이 여기까지 튀는 줄 알았어." 선배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제가 그렇게 무섭게 손을 들었나요." 나는 반문했다.
"무서운 게 아니라, 신참이 원장한테 저렇게 대드는 게 처음 봐서." 선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살았다, 이번엔." 선배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요?" 나는 되물었다.
"저쪽들 또 올 거야. 저 원장, 눈빛 봤지? 절대 포기 안 할 눈빛이었어." 선배가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이 맞았다.
이규석의 눈빛은 확신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웠다.
삼십 년 바쳤다는 그 말이 허풍은 아니었을 거다.
문제는, 삼십 년 바친 사람이 그 삼십 년을 증명할 서류 한 장 없이 저렇게 밀어붙인다는 거였다.
'저 정도로 다급하다는 건, 뭔가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뜻인가.'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벌써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신참이 그렇게 말했다며?"
"보조가 원장을 몰아붙였다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가 누구랑 연줄이 있는 거 아니야?"
연줄이라니.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연줄이 있었으면 애초에 이렇게 조용히 살지도 않았을 텐데.
연줄 있는 애들은 회의실 상석 근처에 앉지, 서류 나눠주는 보조석에 앉지 않는다.
조용히 지내고 싶었는데.
이 바닥에서 조용히 지내려면 그냥 시키는 일만 하고, 회의 중엔 숨소리도 안 내는 게 정답이라는 걸 안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그 규칙을 어겼다.
어쩐지 이번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시작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복도 끝에서 이규석이 나를 한 번 돌아보는 게 보였다.
그 눈빛은 조금 전 회의실에서 봤던 절박함이 아니었다.
훨씬 차가운, 계산하는 눈빛이었다.
'저 눈빛, 뭔가 나를 다시 볼 것 같은데.'
좋은 의미는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늘 그렇듯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