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날 이후로 나의 평온했던 하루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1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나였다. 뒷문 쪽 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는 쉬는 시간마다 어김없이 내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왔고, 책상 위에 턱을 괴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뭐 해?” 하고 물었으며,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 “왜 대답 안 해줘어—” 하고 입을 삐죽이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2교시가 끝나면 또 왔고, 3교시가 끝나면 또 왔다. 마치 정해진 알람이라도 맞춰놓은 것처럼, 오차 없이.
점심시간에는 어느새 내 급식 옆자리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오늘 반찬 뭐야?” 하고 물었는데,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자기 식판에서 고기반찬을 골라 내 식판에 슬쩍 옮겨놓으며 “이거 먹어, 내가 좋아하는 거 줄게” 하고 웃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숟가락을 든 손이 어색하게 멈췄고, 주변에서 밥을 먹던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슬쩍슬쩍 옮겨오는 걸 느끼며 목구멍으로 밥알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하교 시간에는 더 심했다. 신발장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가자아—” 하고 말끝을 늘이며 팔짱을 슬쩍 껴 오는 통에, 나는 매번 손을 빼내며 도망치듯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실내화를 갈아 신다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린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조차 유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팔을 걸어왔다. 마치 팔짱을 끼는 것이 인사법의 일종인 것처럼.
“저기 좀 봐. 완전 딱 붙어 다니네.”
“원래 아는 사이였나 봐. 부럽다, 부러워.”
반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지만, 유나는 그런 시선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더 밝게 웃으며 내 팔을 붙잡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는데, 정작 유나는 그 시선들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바로 박서준이었다.
금발 단발머리에 회색 렌즈를 낀 서준은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유일한 친구였는데, 키가 크고 표정 변화가 적어 겉보기에는 차갑게 느껴졌지만, 실은 누구보다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유나가 다녀가고 나면, 서준은 어김없이 자리를 옮겨와 내 옆에 앉았다.
“야, 강도윤. 너 요즘 아주 스타 됐다며?”
서준이 팔짱을 낀 채 씩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넸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이마에 닿는 나무 책상의 차가운 감촉이 오히려 반가웠다.
“놀리지 마. 나 지금 심각해.”
“심각하긴 뭘. 저렇게 예쁜 애가 매일 붙어 다니겠다는데, 세상에 그런 고민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 줄 알아?”
서준의 말투에는 은근한 부러움이 섞여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은 입학 이래로 줄곧 여자친구가 생기기를 바라며 애써왔지만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는 처지였으니, 어련하시겠습니까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나는 진지하게 미간을 좁혔다.
“나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 것뿐이야.”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니까. 세상이 너를 조용히 안 놔주잖아.”
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턱을 괴고는 교실 뒤쪽을 흘긋 쳐다보았는데,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유나가 다른 여자아이들 몇 명과 함께 웃으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서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근데 진짜 궁금한 건, 너 저 애랑 뭔 사이였냐는 거지.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라고 했잖아.”
“그냥… 같은 반이었어. 그게 다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우산을 씌워주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떠오르는 걸 애써 눌러야 했다. 서준은 내 표정을 살피다가 뭔가 눈치챈 듯 피식 웃었는데, 나는 그 웃음이 못마땅해서 괜히 시선을 돌렸다.
그때, 저 멀리서 유나가 반 아이들 몇 명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크게 흔들며 다가오는 게 보였고,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서준이 재빨리 내 어깨를 툭 치며 “왔다, 왔어” 하고 낮게 속삭이는 게 얼마나 얄미웠는지.
“도윤아! 나 오늘 애들이랑 매점 가는데 같이 갈래?”
그녀의 목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릴 정도로 컸고, 나는 순간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리는 걸 느끼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군가는 웃음을 참는 듯 입을 가렸고, 누군가는 그저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만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됐어.”
최대한 짧고 무심하게 대답했지만, 유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반 아이들을 향해 몸을 돌리며 밝게 외쳤다.
“참, 얘들아! 얘 나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었거든?”
탁!
순간 교실 안의 모든 소음이 멈춘 것 같았다. 누군가 마시고 있던 우유팩을 내려놓는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몇몇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와 유나를 번갈아 쳐다보았고, 서준은 옆에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진짜야?”
“강도윤이? 저 강도윤이??”
“대박, 나 처음 듣는 얘기인데?”
반 아이들의 놀라움 섞인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책상 위에 올려둔 손을 슬며시 주먹으로 말아 쥐었지만, 그 떨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저걸 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거야...'
몇몇 여자아이들은 벌써 유나 곁으로 몰려가 “진짜야? 언제부터? 어떻게 만났는데?” 하고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유나는 그 질문들에 하나하나 대답해주며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 광경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야, 이거 완전 특종인데?”
서준이 옆에서 낮게 속삭이며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고, 나는 팔꿈치로 그 옆구리를 쿡 찔렀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유나는 그런 나를 보며 오히려 만족스러운 듯 씩 웃어 보였는데, 그 웃음이 어딘지 예전,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우산을 받아 들던 그 수줍은 아이의 웃음과는 완전히 다른, 확신에 찬 것이었다. 마치 이 상황을, 이 소란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었다는 듯한.
겉으로는 화가 난 듯 그녀를 흘겨보았지만, 속으로는 이상하게도 그 시선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나는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나를 향한 시선들은 쉽사리 거두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 시선들 속에서 문득 이 소문이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