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소꿉친구는 사양하겠습니다

1화

3월 둘째 주 화요일, 청명고등학교 2학년 3반 교실 창가에는 아직 겨울의 끝자락 같은 차가운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그 햇살을 등지고 앉아 늘 그렇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하루를 기대하고 있었다. 강도윤. 그게 내 이름이었고, 나는 이 학교에서 그 누구의 눈에도 걸리지 않는 존재이기를 바라며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눈썹 아래까지 정성스레 내려 붙이고, 도수도 별로 없는 안경을 코끝에 얹은 뒤 집을 나섰다. 눈에 띄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세운 유일한 인생의 목표였다. 그 목표를 위해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왔는데, 예를 들면 교복 셔츠 단추를 목까지 채우지 않고 딱 하나만 풀어 그다지 단정하지도, 그다지 흐트러지지도 않은 애매한 인상을 만든다거나, 급식실에서는 항상 줄의 중간쯤에 서서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묻힌다거나, 체육 시간에는 너무 잘하지도 너무 못하지도 않을 정도로만 움직여 누구의 기억에도 강하게 남지 않도록 하는 식이었다. 조용한 교실, 지루한 수업, 특별할 것 없는 급식, 그리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하루하루—그 평온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교실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가 창가 두 번째 줄, 내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동장 너머로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낮게 깔린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게 보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담임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손에 서류철을 든 채 목을 가다듬는 순간부터, 그 평온함에 아주 작은 균열이 가고 있다는 걸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자, 다들 조용히 하고. 오늘부터 우리 반에 전학생이 들어온다." 그 말에 반 아이들이 일제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또 남자야, 여자야?" 하고 물었고, 누군가는 "이 시기에 전학이라니, 특이하네"라며 옆자리 친구와 소곤거렸다. 나는 그 웅성거림 속에서 별 관심 없이 이어폰 볼륨을 살짝 낮추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오늘도 조용히 넘어가길 바랐다. 전학생이든 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그저 며칠만 지나면 아이들의 관심도 자연스레 사그라들 것이고, 나는 다시 원래의 조용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곧 담임 뒤를 따라 교실로 들어온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반 전체가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는 걸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긴 머리카락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결결이 빛났고, 그 아래로 드러난 눈동자는 마치 깊은 바다를 가둔 듯한 파란색이었다. 하얀 얼굴선과 곧게 뻗은 목선, 교복 위로도 도드라지는 곧은 자세까지—누가 봐도 눈을 뗄 수 없는 외모였다. 교복 재킷 소매 끝으로 살짝 드러난 손목은 가늘었고, 그 손에 들린 것은 다른 아이들처럼 낡은 파우치가 아니라 깔끔한 필통 하나뿐이었는데, 그 작은 디테일마저도 이상하게 시선을 붙잡았다. 반 아이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옆자리 친구의 팔을 툭 치며 "미쳤다, 저게 사람이야?"라고 속삭였고, 또 누군가는 대놓고 입을 벌린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또 시끄러워지겠군' 하는 생각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이런 종류의 소란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고, 그저 며칠 동안 반 아이들의 화젯거리가 되겠거니 하고 넘겨버렸다. "천유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짧고 담백했지만 이상하게도 교실 안에 울리는 느낌이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그러나 또렷하게 귀에 박히는 그런 목소리였다.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아주 희미한 감각이 스쳤지만, 곧 '흔한 이름이니까' 하고 넘겨버렸다. 유나라는 이름이야 어디에든 있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그 순간의 낯익음도 그저 착각이겠거니 싶었다. 담임선생님이 서류철을 뒤적이며 뭔가를 더 설명하려는 듯했고, 반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이어폰 한쪽을 슬쩍 빼며 곁눈질로 그 상황을 살폈는데, 그저 늘 그렇듯 반의 관심이 새로운 자극에 쏠리는 흔한 풍경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제는, 그녀가 교실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정확히 내 쪽에서 시선을 멈췄을 때 벌어졌다. 우뚝. 그녀의 눈이 커지는가 싶더니, 입가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단순히 새로운 반 친구를 향한 인사치레의 웃음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 찾던 무언가를 마침내 발견한 사람의 표정 같았고, 그 시선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그 반응이 낯설어서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이어폰 줄을 붙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피했다. '뭐야, 왜 나를...' 하는 생각이 들 틈도 없이 담임선생님은 그녀에게 자리를 안내했는데, 하필이면 그 자리가 내 옆, 비어 있던 창가 자리였다. 반 아이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다시 한 번 번졌다. "와, 강도윤 옆자리라니, 로또 맞았네." 누군가의 농담 같은 말이 들려왔지만, 나는 그 말이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오히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스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나를 향해 몸을 살짝 기울였다. 은발이 흔들리며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그 파란 눈동자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야, 도윤아." 그 한마디에 나는 온몸의 피가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귀로 들어온 그 말이 머릿속을 빙빙 돌면서도 정작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나는 안경 너머로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낯선 은발과 파란 눈동자,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도 그 미소만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였을까. 언제였을까. 기억을 더듬으려 할수록 오히려 안개처럼 흩어지는 느낌이었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저릿한 감각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삑ㅡ. 나는 그 소리에 오히려 안도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대답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생긴 셈이었으니까. 담임선생님이 서둘러 교실을 나서며 "1교시는 자율학습이니 각자 조용히"라고 덧붙였지만, 그 말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서둘러 교과서를 펼쳐 시선을 고정시켰고, 옆에서 그녀가 조용히 자리에 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자를 끄는 소리, 가방 지퍼를 여는 소리, 필통에서 펜을 꺼내는 소리까지—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소리들이 오늘만큼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나는 애써 교과서 위의 글자에 집중하려 했지만, 문장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같은 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그렇게 자율학습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나는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내내 나를 힐끔거리며 웃고 있다는 걸 등 뒤로 따갑게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아도, 그 웃음의 온도만은 선명하게 전해져왔다. 마치 오래된 비밀 하나를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불안감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듯 팔을 뻗으며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눈을 맞췄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하지만 분명한 확신을 담아 이렇게 덧붙였다. "이번엔 도망 못 갈 거야."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펜을 그대로 놓쳐버렸다. 탁. 책상 위로 떨어진 펜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고, 반 아이들 몇몇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펜을 주워 들었지만, 손끝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망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 한마디가 마치 오래전에 들었던 말처럼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