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제 그 흐느낌이 꿈이었나 하는 의심이었다.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며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는데, 창문 틈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방 안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부엌에서 들려오는 낯선 발소리, 도마 위에서 칼이 부딪히는 소리, 프라이팬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나는 확신했다. 그녀는 정말로 우리 집에 있었다.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가자 코끝을 스치는 고소한 계란 냄새가 훅 끼쳐왔다. 거실로 나가보니 서윤이 이미 이슬과 나란히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오빠 일어났어? 언니가 계란말이 해줬어!" 서윤이 신나서 자랑하듯 말하며 포크로 접시를 통통 두드렸다. 식탁 위에는 노란 계란말이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는데, 모양이 제법 그럴듯해서 나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
"……맛없을 수도." 이슬이 시선을 피하며 작게 덧붙였다. 목소리가 모기 날개짓처럼 가늘어서 하마터면 못 들을 뻔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젓가락으로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계란의 결이 씹히면서 짭짤한 간이 입안에 딱 맞게 퍼졌다. "맛있는데." 솔직한 감상이었다. 그녀가 잠깐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밥그릇으로 내렸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귓불이 살짝 붉어진 걸 나는 못 본 척했다.
등교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어젯밤의 흐느낌을 언급할지 계속 고민했다. 칫솔을 물고 서서도, 셔츠 단추를 채우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그 소리가 자꾸 맴돌았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셋이 함께 집을 나섰다. 학교로 가는 길, 이슬은 어제와 달리 조금 편안해 보였지만, 그 표정 안쪽에는 여전히 불안한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정하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라가 먼저 이슬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이슬아, 어제 연락 안 받던데." 아라의 목소리에 걱정이 섞여 있었다. 이슬은 짧게 "괜찮아"라고만 대답했는데, 아라는 뭔가 더 물으려다가 내 쪽을 흘끔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나는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조용히 자리로 향했다.
수업 시간 내내 이슬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창밖만 바라보는 옆모습이 유리창에 붙은 그림자 같았다. 쉬는 시간에 다인이 다가와 옆자리에 앉으며 낮게 물었다. "너네 뭐, 무슨 일 있었어? 오늘 좀 이상한데." 눈치 빠른 다인의 물음에 나는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별일 없어."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이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이 꼭 뭔가를 캐내려는 형사 같아서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하교 후, 이슬은 다시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을 함께 걸었다.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골목길을 지날 때 이슬의 가방끈을 만지는 손이 살짝 떨리는 걸 봤지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서윤이 반기며 문을 열어줬고, 저녁은 어제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흘러갔다. 서윤이 이슬 옆에 딱 붙어 앉아 시시콜콜한 학교 얘기를 늘어놓는 동안, 이슬은 가끔 짧게 웃기도 했다.
저녁을 먹은 뒤,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나는 의아해하며 현관으로 나갔는데, 문을 열자 예상치 못한 얼굴이 서 있었다.
"안녕! 놀러 왔어." 다인이었다. 손에는 편의점 봉투를 든 채 밝게 웃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왔어?" 내가 놀라서 묻자, 그녀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서윤이가 알려줬지. 단톡방에서." 뒤늦게 서윤이 슬쩍 다가와 눙치듯 웃었다. "헤헤, 다인 언니랑 친하니까." 나는 그 말에 한숨을 삼키며 문을 조금 더 열어줬다.
다인은 거리낌 없이 안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고, 봉투를 든 채 곧장 거실로 향해 이슬과 마주 앉았다. "안녕, 나 오다인. 민준이 친구야." 그녀가 밝게 인사하자 이슬이 살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한이슬." "알아, 유명하잖아." 다인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편의점 봉투에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봉투 속에서 나온 것들은 감자칩, 초콜릿바, 그리고 이미 살짝 녹기 시작한 아이스크림 두 개였다.
분위기는 다인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졌다. 그녀는 특유의 밝은 텐션으로 이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했는데, 좋아하는 노래는 뭔지, 어떤 드라마를 보는지, 매운 거 잘 먹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을 쉴 새 없이 물어봤다. 이슬도 조금씩 경계를 풀며 짧은 대답을 이어갔다. 감자칩을 하나 집어 입에 넣는 모습이 처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근데 둘이 왜 같이 사는 거야?" 다인이 갑자기 직설적으로 물었다. 순간 공기가 살짝 얼어붙었다. 감자칩을 씹던 소리마저 멈춘 것 같았다. 이슬의 표정이 굳어졌고, 손에 든 과자 조각이 그대로 멈췄다. 나는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냥, 사정이 있어서." "오, 사정?" 다인이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장난기와 함께 묘한 관찰이 섞여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민준이 너, 얼굴 빨개졌어." 다인이 킥킥거리며 지적했다. 나는 당황해서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정말로 화끈거리고 있었다. 목덜미까지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아니야." 부정했지만 다인은 이미 확신한 듯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니긴, 완전 홍당무구만." 이슬도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소리 없이 살짝 입가를 올렸다. 그 미소가 너무 짧아서,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다인은 그 뒤로도 한참을 더 머물며 이슬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서윤은 그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흘려서 손등을 핥는 소동을 부렸다. 시계가 아홉 시를 넘길 즈음, 다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흔들었다. "나 간다! 이슬아, 다음에 또 놀자." 이슬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나서는 다인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돌아오니,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밤이 깊어지고 다인이 돌아간 뒤, 나는 설거지를 하며 오늘 하루를 곱씹었다. 수돗물이 손등을 타고 흐르는 감각을 느끼면서, 이슬이 조금씩 우리 집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녀의 아빠는, 그 새엄마라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뭘 하고 있을까. 접시를 헹구는 손끝이 문득 차갑게 느껴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벗어 걸어둔 뒤 거실로 나오자, 이슬이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표정이 심각했다. 화면을 쥔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다가가 물었더니, 그녀가 화면을 슬쩍 보여줬다. 부재중 전화 열두 통. 발신자 이름은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그녀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야." 그녀가 낮게 말했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