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녀는 사흘 뒤 다시 나타났다.
장소는 청림문 뒷산의 폐사찰이었다.
그날 나는 사부님의 심부름으로 홀로 약초를 캐러 나섰다. 뒷산 초입에는 흔한 삼칠근이 자랐지만, 좀 더 상급의 약재는 능선을 넘어야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침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은 시각이었다. 산길은 조용했고, 새소리마저 드물었다. 그 고요함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상했다.
능선을 반쯤 넘었을 무렵,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는 인기척이 아니었다.
아무 소리도, 아무 기척도 없었다.
다만 갑자기 세상이 정지한 듯한 감각이 들었을 뿐이다.
붙잡혔다.
"움직이지 마라."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목덜미에 서늘한 감촉이 닿았다.
검날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검을 뽑는 소리도, 다가오는 발소리도 듣지 못했다.
경맥을 읽는 내 눈으로도 그녀의 접근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백옥검."
나는 낮게 내뱉었다.
"내 이름을 기억하는군."
그녀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놀란 기색도, 반가운 기색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라는 듯한 어조였다.
그녀는 나를 폐사찰 안으로 끌고 갔다.
검끝은 여전히 내 목덜미 뒤에 붙어 있었다.
반항할 틈은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
폐사찰 안은 냉기가 감돌았다.
곳곳에 무너진 기와, 이끼 낀 벽, 그리고 세월에 색이 바랜 불상 하나.
향 냄새도, 사람의 온기도 없이, 오직 오래된 나무 냄새와 습한 흙냄새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낡은 불상 앞, 부서진 마루에 나를 앉혔다.
검은 여전히 내 목을 향해 있었다.
"묻는 것에만 답해라."
그녀가 말했다.
"경맥을 조작하는 법. 누구에게 배웠지."
"…배운 적 없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네 몸을 갈라 확인해야겠느냐."
낮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담담함이야말로 진짜 위협이었다.
검끝이 살짝 더 파고들었다.
살갗이 따끔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진실이다.
나는 경맥의 흐름이 보인다.
그게 전부다."
"보인다는 게 무슨 뜻이지."
그녀가 되물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의 몸을 들여다보면, 마치 지도처럼 경맥의 흐름이 눈앞에 그려진다.
어디가 막혔는지, 어디가 끊겼는지도 보인다."
그녀가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의심과 계산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오래 관찰하는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나는 시선을 피하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눌렀다.
그리고 검을 살짝 내렸다.
대신 무명 소매를 걷어 자신의 팔을 드러냈다.
피부 아래로 희미한 검은 실선이 보였다.
마치 끊어진 전선처럼, 세 갈래의 경맥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옅은 흉터 같았지만, 내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정상적인 경맥이라면 은은한 빛을 띠고 흐르듯 이어져야 했다.
그런데 그녀의 팔에서는 세 군데가 완전히 끊어져 있었고, 그 단절된 지점에서 검은 얼룩 같은 것이 번져 있었다.
"조현성."
그녀가 낮게 말했다.
"그와의 결투에서 경맥 세 개가 끊어졌다.
어떤 명의도 고치지 못했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그 무표정함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패배를 인정하는 자의 목소리는 원래 이런 색을 띠는 걸까,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 말에서 무언가를 직감했다.
그녀가 나를 이렇게까지 위협해서 붙잡아 온 이유.
단순한 위협이나 시험이 아니었다.
이건 절박함이었다.
"네가 이걸 고칠 수 있다면."
그녀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살려주겠다. 그리고 앞으로 네게 손대지 않겠다."
"고치지 못한다면?"
나는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끝을 다시 내 목에 붙였다.
그것으로 충분한 대답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폐사찰 밖에서 바람이 불상 근처의 깨진 창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내 목숨은 전적으로 저 손목에 달려 있다.
검을 쥔 손목은 가늘었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시야를 전환했다.
격자무늬 지도가 떠올랐다.
그녀의 경맥을 읽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세 개의 경맥이 끊어진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여파로 주변 경맥들의 흐름이 뒤틀려 있었다.
마치 회로 하나가 끊긴 게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미세하게 오작동하고 있는 형태였다.
원작 게임의 설계 논리로 보자면, 이것은 단순 부상이 아니라 진기 계통 자체의 붕괴였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끊어진 세 갈래 경맥 주변으로 진기가 역류하는 흔적까지 보였다.
정상적인 흐름이라면 위에서 아래로, 심장에서 사지 끝으로 흘러야 할 기운이 그 지점에서 되돌아오고 있었다.
마치 막힌 강물이 역방향으로 흐르며 주변 토지를 조금씩 침식시키는 것과 비슷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손상 범위는 더 넓어질 것이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말했다.
"그리고 위험할 수도 있다."
"상관없다."
그녀가 즉답했다.
"목숨을 걸겠다는 뜻이냐."
"이미 걸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조현성은 속세오귀의 다른 하나다.
나는 그와의 서열 결투에서 패했다.
이 몸으로는, 앞으로 어떤 결투에서도 다시 이길 수 없다."
"서열 결투라는 게 정확히 무엇이지."
내가 물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 얼굴에 스쳤다.
그러다 짧게 대답했다.
"속세오귀 사이에는 순위가 있다.
그 순위는 오직 결투로만 바뀐다.
패자는 승자의 아래에 서야 하고,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나는 그 말에서 배후의 규모를 짐작했다.
속세오귀는 단순한 다섯 명의 은둔 강자가 아니었다.
서열이 있고, 결투로 순위를 정하고, 그 결과에 목숨이 걸리는 구조.
무림 표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은밀한 권력 다툼.
그리고 그녀는 그 구조 안에서 패배자의 위치로 떨어진 것이다.
경맥이 끊어진 채로는, 앞으로 어떤 명령도 거부할 수 없는 처지.
"만약 내가 네 경맥에 진기를 흘려보내면."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모른다.
경맥이 뒤틀린 상태에서 새로운 진기를 주입하면, 오히려 역류가 심해질 수도 있다."
"상관없다고 했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시작해라."
그 목소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살펴보았다.
창백할 정도로 희고 말끔한 얼굴.
눈빛은 맑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속에서, 벼랑 끝에 선 자의 결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진기의 결은, 절정 검객이라 불릴 만큼 정제되어 있었다.
다만 세 곳에서, 그 결이 완전히 끊겨 있었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그 단절감이 낯설었다.
마치 잘 흐르던 물길 한가운데 갑자기 벽이 세워진 것 같은 느낌.
그 벽 너머로는 아무런 진기도 전해지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내 단전에서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격자무늬 지도 위, 끊어진 지점을 향해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