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 굶지 좀 마요

5화

부원의 눈빛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스치듯 지나가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서아에게는 심장이 내려앉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훈련장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죽도를 어깨에 걸친 부원이 서 있었고, 서아는 태민에게서 손을 뗀 채 굳어 있었다. 방금까지 맞잡고 있던 손끝이 아직도 따뜻했다. — 무슨 일이야. 서아는 애써 평소 목소리를 되찾았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나왔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부원은 잠깐 태민을 힐끔 보고는, 별 의미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부장님 찾으셨어요, 훈련 시간 다 됐다고요. — 알았어, 금방 가. 부원이 자리를 뜬 후, 발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서아는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골랐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쿵, 쿵. 태민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유난히 오래 머물렀다. — 방금 손 뺀 거, 그게 다예요? — 무슨 소리야. — 부원 오니까 손을 뺐잖아요. 마치 저랑 있는 게 죄인 것처럼.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이 더 아프게 파고들었다. 서아의 표정이 흔들렸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실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지켜온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반사적으로 몸을 뺐다. 손을 빼는 데 걸린 시간은 채 일 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태민은 그 짧은 순간을 정확히 봤다. — 나한테는 지켜야 할 게 있어. 너는 이해 못 해. —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 싫습니다. 태민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서아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 — 저는 누구의 그림자 속에 숨을 생각 없어요. 도시락 챙겨주는 것도, 옆에 있어주는 것도, 이렇게 매번 숨겨야 하는 관계라면—저는 안 할 겁니다. 서아는 그 말에 순간 말을 잃었다.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건 협박이 아니라, 그가 지켜온 원칙 그 자체였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누구의 특별도 되지 않겠다던 원칙이, 지금은 오히려 그녀를 향한 요구로 바뀌어 있었다. ‘이 녀석, 진짜로 진심이구나.’ 서아는 그 사실을 깨닫자 오히려 두려움이 커졌다. 이 관계가 진짜가 되면, 정말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선도부장이라는 자리, 검도부 주장이라는 자리, 그 모든 완벽함이 한순간에 흔들릴 것 같았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유리처럼 얇게 느껴졌다. — 태민아.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낮아졌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질 말을 찾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다. 태민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잠깐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훈련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아는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 안에서 다른 감정도 자라고 있었다. 이 아이가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다정함을 보인다면—그 생각만으로도 속이 뒤틀리는 듯한 낯선 감각. 그녀는 그 감각의 이름을 아직 알지 못했다. 며칠 뒤, 그 감각은 훨씬 더 선명해졌다. 방과 후, 서아는 검도부 훈련장으로 가는 길에 태민을 봤다. 복도 창가, 오후 볕이 유난히 밝게 부서지는 자리였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 반 여학생 하나가 그에게 뭔가를 건네고 있었다. 손편지 같은 것이었다. 하늘색 편지지, 리본으로 묶인 모양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왔다. — 태민아, 이거 좀 받아줘. 저번에 너 요리하는 거 봤는데, 진짜 멋있더라. 여학생의 목소리는 밝았다. 뺨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태민은 무표정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받을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손이 잠깐 허공에 머물렀다. 서아는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봤다. 걸음이 멈춘 채였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화가 나는 건지, 불안한 건지, 그녀 스스로도 구분할 수 없었다. ‘저게 뭐야.’ 걸음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몇 걸음쯤 다가갔을 때, 서아는 스스로 멈춰 섰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 아니, 끼어들면 안 됐다. 저건 그냥 흔한 장면이었다. 남자애가 편지를 받는 흔한 장면. 그런데도 발이 움직이지 않았고, 눈은 그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태민이 결국 편지를 받지 않고 손을 내렸다. — 죄송해요. 이런 건 받을 이유가 없어서요.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여학생이 서운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편지를 든 손이 힘없이 내려갔다. 그녀는 몇 번 더 태민을 쳐다봤지만, 그는 이미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아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깨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내가 지금 뭘 안도하고 있는 거야.’ 낯선 감정이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감정. 서아는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쿵, 쿵, 빠르게. 그녀는 손을 가슴에 살짝 얹었다. 이런 반응이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날 밤,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며칠째 이어진 수면 부족보다도, 그 낮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태민이 편지를 받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과, 애초에 그런 걸 받으려 했던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두 감정이 서로 부딪히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 좀 이상해졌어.’ 그녀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방 안은 조용했다. 시계 초침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매일 아침 벤치에서 도시락 뚜껑을 열던 순간, 태민이 손을 잡아주며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너져도 돼요. 적어도 저 앞에서는.’ 그 말이,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위로였다. 지금은—그보다 더 복잡한 무언가였다. 그녀는 몸을 뒤척였다.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가,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웠다. 어느 쪽으로 누워도 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감정의 이름을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그 감정이 자신을 잡아끌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 무엇도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 적이 없었다. 시험도, 대회도, 선도부의 규율도.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평소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다. 교복을 입으면서도, 가방을 챙기면서도,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벤치 앞에서, 도시락을 기다리는 대신—태민이 오기 전에 먼저 도착해 있고 싶었다. 거리는 아직 서늘했다. 아침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서아는 걸음을 서둘렀다. 평소라면 여유롭게 걸었을 길인데, 오늘은 유난히 발걸음이 빨랐다. 그리고 그 이른 아침, 서아는 벤치 근처에서 낯익은 얼굴을 하나 더 발견했다. 어제 태민에게 편지를 건넸던 그 여학생이, 이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서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심장이 다시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여학생은 벤치 옆에 서서,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자세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설마.’ 서아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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