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3초 고백, 평생 배신

5화

며칠이 지나도록 학교 안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등 뒤로 따라붙는 소곤거림, 급식실에서 마주치는 순간 일제히 멈추는 대화, 화장실 앞에서 슬쩍 스치고 지나가는 눈빛들. 도윤은 그 모든 것이 여전히 낯설고 무거웠지만, 서은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그 무게를 견디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서은은 옆에 있을 때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저 도윤의 걸음 속도에 맞춰 걸었고, 누군가 지나치게 오래 시선을 두면 그쪽을 향해 무심하게 눈을 돌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선은 흩어졌고, 도윤은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균형은 아주 갑작스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방과 후, 빈 교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책상 위에 비스듬히 떨어지고 있었다. 먼지가 그 빛 속에서 느리게 떠다녔다. 소라가 창가에 서 있었다. 혼자였다. 유하도 나윤도 소희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항상 붙어 다니던 그 무리가 사라진 자리가,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도윤아." 소라가 먼저 그를 불렀다.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낮고 조심스러웠다. 도윤은 걸음을 멈췄지만, 몸을 완전히 돌리지는 않았다. 문틀에 손을 짚은 채로, 반쪽만 그녀를 향했다. "할 말 있어?" 소라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손끝이 교복 소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때 일, 미안해." 그녀가 말했다.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진심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게임이라고는 했지만……." "그러니까 뭐." 도윤이 되물었다. 목소리에는 냉기가 섞여 있었다. "내가 잘못했어." 소라가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 말이 진심처럼 들렸지만, 도윤은 그 진심이라는 것이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진심이었든 아니었든, 그 순간 그가 느꼈던 것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사과, 늦었어." 도윤이 대답했다. 짧고 건조했다. "알아." 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그래도, 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첩이 삐걱, 짧게 울렸다. 서은이 서 있었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 아래 무언가 팽팽하게 당겨진 실 같은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걸음은 느렸고, 조명 아래에서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바닥을 가로질렀다. "방해했나." 서은이 짧게 물었다. "아니." 도윤이 대답하려 했지만, 소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서은." 소라가 서은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에 미묘한 날이 섞여 있었다. "둘이 요즘 자주 붙어 다니더라." "그게 문제가 돼?" 서은이 되물었다.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평온함이 오히려 소라를 더 자극하는 듯했다. "딱히 문제는 아닌데." 소라가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어딘가 억지스러웠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그냥, 신경 쓰여서." "신경 쓸 이유가 있나." 서은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그 경계에 걸친 말투였다. 소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도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 속에 무언가 묻고 싶어 하는 것이 있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윤도 알 수 없었다. 도윤은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시선의 무게를 그대로 느꼈다.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한 채, 그는 그저 그 팽팽한 공기 속에 서 있을 뿐이었다. 창밖에서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 "도윤이한테 사과하러 온 거면, 이제 끝난 것 같은데." 서은이 소라를 향해 말했다. 소라는 잠시 도윤을 바라보다가, 결국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점점 멀어지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도윤은 왜 마음이 이렇게 복잡한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사과를 받았는데도 개운하지 않은 이 기분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괜찮아?" 서은이 물었다. "모르겠어." 도윤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서은은 더는 캐묻지 않았다. 다만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손가락으로 창틀을 가볍게 두드리며. "곧 축제야." 서은이 말했다. "올해는 우리 반이 무대 담당이거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도윤이 물었다. 서은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도윤에게는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마치 뭔가를 이미 알고 있는데, 굳이 말하지 않는 사람의 웃음처럼. *** 다음날, 복도 게시판. 아침 등교 시간, 아이들이 그 앞에 몰려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종이 위에 인쇄된 명단, 그 아래로 조 편성표가 붙어 있었다. 도윤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게시판 앞에 섰다. 축제 준비 명단. 도윤의 이름과 서은의 이름이 같은 조에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뜻밖에도 윤소라의 이름 역시 같은 조에 포함되어 있었다. 도윤은 그 세 글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고, 다시 확인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도윤, 한서은, 윤소라. 같은 조. 같은 무대.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지만, 도윤은 그것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이 세 이름이 같은 무대 위에 함께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예감처럼 그의 가슴 한쪽을 무겁게 짓눌렀다. 축제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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