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사흘째 밤이었다.
도윤은 이제 자정이 되기 전부터 노트북 앞에 앉았다.
습관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마시지 않은 커피가 식어 있었다.
방 안의 불은 꺼둔 채였다.
오직 노트북 화면의 빛만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평범한 밤이었다.
하지만 도윤에게는 더 이상 평범한 밤이 아니었다.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47분.
아직 십삼 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초조함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감각이었다.
기다림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11시 58분이 되었을 때, 그는 이미 화면을 열어두고 있었다.
검은 화면.
아직 아무것도 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마치 무언가가 곧 나타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자정을 알리는 순간, 화면이 켜졌다.
같은 방이었다.
낡은 책상, 흔들리는 촛불, 벽에 걸린 문양.
점. 선. 물결. 탑.
이제는 눈에 익은 광경이었다.
은설이 앉아 있었다.
자세가 달랐다.
어제보다 등이 더 곧게 펴져 있었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자세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다잡으려는 자세였다.
도윤은 화면 아래 표시된 숫자를 보았다.
동시접속자 3.
숨이 잠깐 멈췄다.
이틀 동안 그 숫자는 언제나 1이었다.
자신 혼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숫자를 다시 확인해도 변하지 않았다.
도윤은 채팅창을 살폈다.
낯선 닉네임 두 개가 더 떠 있었다.
붉은눈.
서리검.
이름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성별도, 나이도, 위치도.
다만 그 이름들이 화면 위에 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고 불편했다.
"오늘은 시청해 주시는 분이 늘었습니다."
은설이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목소리에는 안도와 긴장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사람이 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위험한 일일 수도 있었다.
채팅창에 글자가 올라왔다.
붉은눈: 여왕이 이런 방식으로 국정을 논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어찌 되겠습니까.
은설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도윤은 손끝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조언을 주는 자가 아니라, 위협하는 자였다.
문장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압박은 결코 짧지 않았다.
알려지면 어찌 되겠느냐는 물음은 질문이 아니라 경고였다.
서리검: 세금 조언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조언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의문입니다.
또 다른 글이 떠올랐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날이 서 있었다.
도윤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칭찬처럼 시작해서 의심으로 끝나는 문장이었다.
도윤은 잠시 손을 멈췄다.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같은 시청자일 수도 있었고, 궁중의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은설을 지키려는 사람일 수도 있었고,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었다.
판단할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화면 속 은설은 잠시 눈을 감았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눈을 뜨고 정면을 응시했다.
"여러분의 우려를 이해합니다."
은설이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조언이든 경청할 것입니다. 옳은 방향이라면, 출처가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붉은눈: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어찌 판단하십니까. 폐하는 아직 국정을 모르십니다.
말이 날카로웠다.
글자 하나하나가 칼끝 같았다.
도윤은 참지 못하고 자판을 두드렸다.
판단은 결과로 하면 됩니다. 지출 내역을 확인해 보라 했으니, 결과가 나오면 옳고 그름은 자연히 드러날 겁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평소라면 이렇게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 속 소녀가 혼자 말을 받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은설이 그 문장을 읽었다.
읽는 동안 표정이 조금 풀렸다.
서리검: 말투가 당당하시군요. 얼굴도 이름도 밝히지 않고.
도윤은 다시 적었다.
이름을 밝힌다고 조언의 값어치가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채팅창에 아무 글자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저편에서 누군가가 문장을 곱씹고 있는 듯한 정적이었다.
은설이 그 정적을 대신 채웠다.
"저는 이분의 말을 믿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지난 이틀, 이분의 조언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붉은눈: 두 번의 우연을 신뢰라 부르기엔 이릅니다.
"우연이든 아니든,"
은설이 말을 이었다.
"저는 제 판단으로 신뢰를 정하겠습니다."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도윤은 그 목소리 아래 숨겨진 무언가를 느꼈다.
혼자 버티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등 뒤에 아무도 없이, 오직 스스로의 판단만으로 서 있는 사람의 목소리.
도윤은 화면 속 소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턱이 살짝 들려 있었다.
두려움을 감추려는 듯한 자세였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촛불 빛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가 흔들리며 사라졌다.
채팅창이 조용해졌다.
붉은눈과 서리검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접속은 끊기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도윤은 그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말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한동안 은설도 말을 아꼈다.
방 안에는 촛불이 흔들리는 소리만 있는 것 같았다.
도윤은 그 정적 속에서 화면 속 방의 세세한 것들을 눈에 담았다.
낡은 책상 다리에 새겨진 흠집.
천장 어딘가에서 스며드는 것 같은 냄새.
익숙하지 않은, 오래된 나무와 밀랍이 뒤섞인 공기.
은설이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의 이름을 여쭈어도 될까요."
조용한 물음이었다.
도윤은 잠시 손가락을 멈췄다.
닉네임 말고 진짜 이름을 밝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저 화면 너머의 세계에서 이름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이름을 안다는 것이 어떤 책임을 동반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망설임은 짧았다.
강도윤입니다.
"강도윤."
은설이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낯선 발음이었지만, 신중하게 한 글자씩 짚었다.
마치 처음 배우는 단어를 발음하는 사람처럼.
"제 이름은 하은설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짧은 웃음이 섞여 있었다.
도윤은 화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가가 풀리는 걸 느꼈다.
이름을 주고받는 것뿐인데,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입니다."
은설이 문득 말했다.
"이 방송은 아무도 볼 수 없어야 합니다. 저희 쪽 사람들도 이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매번 이곳에 닿으십니다."
도윤은 그 말에 담긴 무게를 뒤늦게 느꼈다.
동시접속자 0에서 시작된 방송.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그중 몇은 진짜 신하일 것이고, 몇은 자신처럼 우연히 닿은 이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닿은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은설이 처음 말을 건 것도 자신이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왜 자신이었을까.
수많은 사람들 중에, 수많은 밤들 중에, 왜 자신의 화면에 이 방송이 열렸을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은설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떤 연결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윤은 대답을 적지 못했다.
화면 속 소녀의 눈이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도, 세계도 다를 텐데, 그 시선만큼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마치 화면이라는 얇은 막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도윤은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연결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이상하게 크게 울렸다.
그때, 방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은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방금까지의 담담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긴장이 들어찼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살폈다.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각도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목소리가 급해졌다.
화면이 지지직거리기 시작했다.
화면 속 은설의 모습이 흔들리며 갈라졌다.
도윤은 급히 자판을 두드렸다.
내일도 오겠습니다.
손가락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화면은 그 문장이 전송되기 전에 완전히 꺼졌다.
동시접속자 3.
마지막으로 남은 숫자였다.
방 안에는 노트북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도윤은 어두워진 화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검은 화면 위로 자신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눈을 크게 뜬 채, 아직도 답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붉은눈과 서리검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호의인지, 경계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복잡한 무엇인지.
그리고 노크 소리.
그 소리 뒤에 누가 서 있었는지, 은설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자신이 이제 그 방송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도윤은 노트북을 닫지 않았다.
검은 화면을 한참 더 바라보았다.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 다시 켜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하지만 화면은 더 이상 켜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노트북을 덮었다.
방 안이 완전한 어둠으로 돌아왔다.
그 어둠 속에서도, 도윤의 눈앞에는 은설의 마지막 표정이 남아 있었다.
문 쪽을 향해 굳어진, 두려움을 억누른 얼굴.
내일 밤, 그 문 뒤에 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낯선 이름이 채팅창에 떠오를지.
도윤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자정이 되기 전, 노트북 앞에 앉는 일은 습관이 아니라 약속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