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편의점에 가려고 무심하게 버튼을 눌렀을 뿐인데, 문이 열리자마자 눈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여자와, 나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애.
순간 몸이 그대로 멈췄다. 뭐랄까, 좁은 상자 안에 갑자기 낯선 사람들과 갇히는 그 특유의 어색함이랄까. 그런데 이번엔 그 어색함이랑은 결이 달랐다. 뭔가 익숙한 얼굴이 거기 있었다.
여자 쪽을 먼저 봤다. 정확히는 그 얼굴에서 성민의 흔적을 봤다. 눈매가 비슷했다. 코도 비슷했다.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는 방향까지 닮았을 것 같았다. 성민이 살아있었다면 저렇게 자랐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데 성민은 남자고 죽었으니까 그런 상상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형광등 아래에서 그 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보였고, 그 하얀 얼굴 위로 성민의 잔상이 겹쳐 보였다. 마치 사진 두 장을 겹쳐놓은 것처럼.
..닮았다. 진짜 닮았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그렇게 몇 초를 서 있었다. 뒤에서 누가 밀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내가 먼저 어색하게 발을 뗐다.
"저... 이도현 씨죠?" 여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성민과는 전혀 달랐다. 낮고 조용했다.
성민은 목소리가 좀 컸다. 웃을 때도 크게 웃었고, 화낼 때도 크게 화냈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그거랑 정반대였다. 마치 소리를 아껴 쓰는 사람 같았다.
"네." 나는 겨우 대답했다.
"윤아라예요. 성민이... 성민이 누나예요."
아, 이 사람이 아라구나. 성민이 몇 번 얘기했던 그 누나. 병원에서도 몇 번 스쳤던 것 같은데,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얼굴을 제대로 못 봤었다. 정신이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그냥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니까.
"들었습니다. 저...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지도 모르면서 그 말이 먼저 나왔다.
돌이켜보면 그건 진짜 이상한 사과였다. 내가 성민을 죽인 것도 아니고, 병을 준 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죄책감을 대표해서 사과해야 하는 사람처럼.
"아니에요. 오히려... 성민이 마지막까지 도현 씨 얘기를 많이 했어요."
나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지막까지 성민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아라는 모른다. 알면 안 된다. 그 소원을 이 사람 앞에서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 소원. 그 말도 안 되는, 그런데 지금 진짜로 이루어지고 있는 그 소원.
성민이 살고 싶어서 나한테 빌었던 그 소원이, 대체 어떤 방식으로 나한테 붙어버린 건지, 나는 여전히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해를 못 하면서도 그게 진짜라는 것만은 몸으로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게 더 무서웠다.
그런데 문제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유가 죄책감 하나만은 아니었다는 거다.
아라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장례식이 끝난 지 며칠 됐는데도 아직 상복을 벗지 못한 것 같았다. 원피스 위로 드러난 목선과, 조용히 서 있는 자세와, 낮은 조명 아래 그늘진 눈매까지, 나는 그 모든 걸 눈으로 훑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죽은 친구의 누나를 앞에 두고.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스스로도 놀라서 시선을 억지로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근데 시선을 돌린다고 해서 방금 본 게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눈은 이미 다 담아버렸고, 머리는 그걸 다시 재생하고 있었다. 최악이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최악의 인간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선이 떨어진 곳에 남자애가 있었고, 그 남자애가 나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차가운 눈빛이었다. 열여섯이나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데, 그 나이대 애치고는 눈빛이 지나치게 어른스러웠다. 아니,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뭔가를 이미 파악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 마치 CCTV를 몰래 돌려보다가 나를 딱 걸린 것 같은 눈빛.
"한지호예요." 남자애가 말했다. 소개를 하는 건지 경고를 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어조였다.
"...성민이 친구니?"
"학교 친구요." 지호가 짧게 답했다. 그리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형, 아까부터 자꾸 뭘 그렇게 봐요?"
엘리베이터 안 온도가 순간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뭐?" 나는 되물었다.
"아라 누나요. 아까부터 눈으로 계속 훑고 있잖아요."
지호는 존댓말을 쓰고 있는데도 하나도 존중하는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정확히 반대였다. 나보다 두 살, 세 살 어린 놈이 나를 이런 눈으로 쳐다보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반박할 말이 없었다. 왜냐면 팩트였으니까.
이게 진짜 억울한 부분인데, 나는 재벌집 아들이고 이 자식은 그냥 성민이 친구다.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 지위도 나랑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그 모든 조건이 이 순간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팩트 앞에서는 재벌도 그냥 발가벗겨지는 거였다.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눈으로 사람 보는 게 정상이에요?" 지호가 덧붙였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정확히 나를 찔렀다.
아라가 당황한 얼굴로 지호를 봤다. "지호야."
"죄송합니다, 누나. 근데 그냥 이상하잖아요, 저 사람."
'저 사람'이라니. 나한테 이름이 있는데. 그런데 그 순간엔 이름으로 불릴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호 말이 맞았으니까.
나는 이 상황에서 뭐라고 말해야 재벌 아들다운 위엄을 지킬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백 가지 대답을 생각해냈는데,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건 이거였다.
"...아니야."
최악이었다. 그 짧은 대답조차 목소리가 떨렸다. 열여섯짜리한테 말 한마디로 발린 것도 창피한데, 그 발림이 사실이라서 더 창피했다. 이럴 때 야구선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트라이크존 밖으로 빠지는 공에도 배트를 냈다가 헛스윙하고 그냥 덕아웃으로 걸어들어가는 그 기분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삼진.
어린 사람이 싸가지가 없다. 나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그 어린 사람이 옳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땅-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마치 이 어색한 순간을 어서 끝내라고 알리는 소리 같았다.
아라가 먼저 나가려다 잠깐 멈춰서 나를 돌아봤다. "도현 씨, 저희도 여기 며칠 있을 예정이에요. 성진재단에서... 배려해주셔서요."
"아, 네." 나는 겨우 대답했다.
성진재단이 왜 이런 배려를 해주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집안이 얽혀 있으니까. 성민이 살던 세상과 내가 살던 세상은 원래 접점이 없는 세상이었는데, 죽음이 그 접점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접점 한가운데 지금 내가 서 있었다.
"성민이 얘기, 나중에 좀...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아라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 문틀을 짚었다. 나도 문이 닫히지 않게 손을 뻗어 문을 잡았다.
손끝이 스쳤다.
아주 짧은 접촉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감각이 다시 왔다. 성민의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그 기운. 손끝에서 시작해서 가슴 쪽으로 흐르는, 설명할 수 없는 온도 같은 것. 이번엔 더 짧고 더 약했지만 분명히 같은 감각이었다.
몸 전체가 순간 얼어붙었다. 나는 지금 이 감각이 뭔지 아는데도 도무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규칙으로 돌아가는 건지, 누가 나한테 설명이라도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아라는 아무것도 못 느낀 것처럼 손을 거두고 걸어 나갔다. 지호는 나를 한 번 더 흘겨보고 뒤따라갔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남아서 내 손끝을 내려다봤다.
..이게 뭐야, 진짜.
왜 저 사람을 만졌을 때도 그 기운이 느껴진 걸까. 성민이랑 아무 상관없는 접촉이었는데. 아니, 아무 상관없는 건 아니지. 성민의 누나잖아. 그게 이유가 될 수 있나. 그게 이유가 되는 게 말이 되나.
머릿속에서 온갖 가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성민이랑 피가 이어진 사람은 다 그런 걸까. 아니면 성민이 죽기 전에 가장 마음에 뒀던 사람들만 그런 걸까. 그렇다면 지호는 왜 안 그랬지. 아니, 지호랑은 손을 안 잡았으니까 모르는 거지.
생각할수록 답은 안 나오고 질문만 계속 늘어났다. 이게 무슨 심리일까. 아니, 심리가 아니라 이건 그냥 물리적인 현상 같은 건데, 그럼 대체 이게 무슨 원리일까.
문이 자동으로 닫히려는 걸 손으로 다시 막았다. 편의점에 갈 생각은 이미 사라졌다.
나는 12층 버튼을 다시 누르고 방으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나는 계속 손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옆에 아무도 없는데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마치 방금 그 감각을 누가 훔쳐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서 손을 계속 쳐다봤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손이었다. 손금도 그대로고, 손톱도 그대로고, 굳은살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 손끝에 남은 감각만은 평범하지 않았다.
..또 시작되는 건가.
나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이 감각이 언제 다시 오고, 언제 사라지고, 결국 나한테 뭘 요구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날 밤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순간엔 몰랐지만, 이 감각은 그날 밤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