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우리는 무너진 창고 잔해를 파헤쳤다.
콘크리트 가루가 목구멍까지 들어와 캑캑거리게 만들었다.
매캐한 연기가 골목을 채우고 있었고,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부서진 철근 사이로 누군가의 신발 한쪽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그 신발을 보고 심장이 내려앉았지만, 다행히 주인은 그 옆에서 스스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기야!" 은채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창고 뒤쪽, 붕괴한 지지대 아래였다.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방향은 정확했다.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뛰었고, 도현이 나보다 반 걸음 앞서 도착했다.
지지대는 폭 30센티미터쯤 되는 H형 철제 구조물이었는데, 그 무게만으로도 사람 하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도현이 지지대를 손으로 잡고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 다시 푸른 빛이 일었다.
빛은 처음엔 손가락 끝에서 실처럼 새어 나오다가, 순식간에 손 전체를 감쌌다.
200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철제 구조물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의 팔뚝 위로 힘줄이 툭툭 불거지는 게 보였고, 이마에서는 땀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빛의 잔여물 같은 게 흘러내리는 듯했다.
"천천히..." 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목소리에 고통이 섞여 있었다.
나는 은채를 끌어냈다.
그녀의 다리가 잔해에 눌려 있었고, 왼팔에는 깊은 열상이 나 있었다.
분홍색 장갑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짐작도 안 될 정도로 붉었다.
"괜찮아, 은채야." 도현이 그녀 옆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전 서한울에게 향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이었다.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조심스러움이 들어차 있었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 은채가 신음하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응급 키트를 꺼내 지혈대를 감았다.
손이 떨렸지만 훈련받은 대로 움직였다.
압박점을 찾고, 지혈대를 감고, 시간을 확인했다.
'출혈량을 보면 30분 안에 지혈이 안 되면 위험하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며 손을 움직였다.
"조금만 참아." 내가 말했다.
은채는 고통 속에서도 도현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다가 다시 도현에게 맞춰졌다.
"너 다시 힘 쓰는 거 처음 봐..." 그녀가 힘겹게 말했다.
"지수가 죽은 뒤로 한 번도 안 썼잖아."
그 이름이 나온 순간, 도현의 손이 멈췄다.
지지대를 붙잡고 있던 그의 손끝에서 빛이 흔들렸다.
"지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채는 뭔가 더 말하려다가, 도현의 시선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입술이 몇 번 벙긋거리다가 결국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지금은 그 얘기 할 때 아니야." 도현이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 경고가 섞여 있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지만,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뭔가 무거운 진실이 있다는 걸 느꼈다.
'지수라는 사람이 죽었고, 그 뒤로 이 사람은 힘을 봉인했다.'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그리고 그 짐작이 맞다면, 오늘 그가 다시 힘을 쓴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졌다.
우리는 은채를 부축해 임시 대피소로 향했다.
대피소는 콜로니 지하 저장고였고, 다행히 붕괴를 피해 있었다.
입구는 철제 셔터로 되어 있었는데, 누군가 미리 그걸 반쯔 내려놓아 밖에서 안 보이게 해두었다.
그 안에는 이미 4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있었다.
부상자가 절반쯤 됐다.
한쪽 구석에는 아이 셋이 담요를 덮고 웅크려 있었고, 그 옆에서 나이 든 여자가 아이들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다른 쪽에는 남자 하나가 어깨를 부여잡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신음하고 있었다.
나는 은채를 눕히고 다리 부목을 만들었다.
주변에 있던 판자 조각과 천을 이용해 급하게 고정했다.
"움직이지 마." 내가 은채에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만 겨우 끄덕였다.
나는 청호함과의 통신을 다시 시도했다.
재밍이 풀렸는지, 잡음 사이로 응답이 들려왔다.
"청림 지상팀, 응답하라." 한도영 함장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굳어 있었다.
"함장님, 청림이 공격받았습니다." 내가 보고했다.
"게스 병력, 그리고 서한울로 추정되는 인물이 지휘하는 걸로 보입니다."
무전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몇 초인지 나는 세지 못했지만,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서한울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함장이 물었다.
"목격자 진술로는 확실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본인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만, 목소리와 행동 패턴이 일치합니다."
"구조선을 보내겠다. 2시간 걸린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나." 함장이 물었다.
"버텨야죠." 내가 대답했다.
"부상자 수는." 함장이 다시 물었다.
"20명쯤 됩니다. 중상자는 5명입니다."
"알겠다. 최선을 다해."
통신이 끊긴 뒤, 나는 대피소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도현이 그 옆에 앉아 투구를 벗지 않은 채 무릎에 팔을 올리고 있었다.
그의 어깨가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까 그거, 손에서 나온 빛."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이오틱 능력이라고 했죠."
"그래." 그가 짧게 대답했다.
목소리에 더 이상의 설명을 허락하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청림에서 창고지기로 위장한 이유가 뭐예요." 내가 물었다.
도현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투구 너머로 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위장이 아니라 도망이었어." 그가 마침내 말했다.
"뭘 도망친 건데요." 내가 다시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무너진 대피소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 틈으로 먼지 가루가 조명 아래 흩날리는 게 보였다.
그 침묵이 어떤 대답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를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대신 대피소 안 부상자들 사이를 오가며 응급처치를 도왔다.
한 명은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고, 다른 한 명은 화상을 입어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나는 가진 물자를 최대한 아껴 쓰며 순서를 정했다.
중상자 먼저, 그다음 경상자.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피소 안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고, 몇몇은 지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구조선이 도착했다는 신호가 들려왔을 때, 나는 도현이 사라진 걸 알았다.
그의 자리엔 투구 표면에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이는 작은 파편 하나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파편을 손에 쥐고, 방금 앉아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