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한도윤은 여덟 살이었다.
방이라고 부르기엔 좁은 창고였다. 원래는 연탄을 쌓아두던 곳이라고 했다. 지금은 낡은 상자들과 곰팡이 냄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전구 하나가 천장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스위치를 켜면 깜빡, 깜빡, 두어 번 떨다가 겨우 빛을 냈다.
도윤은 그 전구 아래서 이불을 개켰다. 이불은 얇았다. 겨울에는 이불 속에서도 입김이 났다. 손끝이 시렸다. 손을 비벼도 온기가 오래 남지 않았다. 창고에는 늘 바람이 들어왔다. 벽 한쪽에 금이 가 있었고, 그 틈으로 계절이 그대로 들어왔다.
도윤은 상자 위에 접어둔 옷을 입었다. 작아진 옷이었다. 소매가 손목 위로 올라갔다.
문 밖에서 그릇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식사 준비하는 소리였다. 도윤의 몫은 없었다. 몫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이모 박은주는 아침마다 같은 말을 했다.
"밥값은 해야지."
말투는 늘 똑같았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다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뱉는 말이었다. 도윤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덟 살짜리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도윤은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섰다. 등 뒤에서 문이 세게 닫혔다. 문틀이 흔들렸다. 그 진동이 발밑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학교로 가는 길은 늘 같았다. 골목을 지나고, 문구점을 지나고, 공원을 가로질렀다. 골목에는 늘 같은 자리에 놓인 쓰레기봉투가 있었다. 문구점 유리창 안쪽에는 도윤이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장난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도윤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도 눈은 자꾸 그쪽으로 돌아갔다.
공원에는 오래된 벤치와 잡초가 무성한 화단이 있었다. 벤치 페인트는 벗겨져 나무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화단은 누군가 관리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잡초가 허리 높이까지 자란 구석도 있었다. 아이들은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공원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밤에 가면 나무가 움직인다는 이야기였다. 도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라 조용하다는 이유로 이 길을 좋아했다.
그날, 도윤은 공원 화단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인가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말이었다.
"덥다. 덥다."
도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벤치도 비어 있었고, 화단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화단 풀 사이로 무언가 움직였다. 뱀이었다. 작은 몸통이 볕 아래서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비늘이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덥다. 덥다."
같은 말이 다시 반복됐다. 도윤은 그 소리가 뱀에게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뱀이 말을 할 리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그런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소리는 계속 들렸다. 도윤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신발 밑창에 흙이 닿는 느낌이 났다.
"덥다고?"
그 순간, 뱀이 멈췄다. 작은 눈이 도윤을 향했다. 눈동자는 세로로 길게 갈라져 있었다.
"들리나."
도윤은 숨을 멈췄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뱀의 목소리였다. 분명했다. 입을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들려."
도윤이 대답했다. 자신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다. 무섭다는 생각보다 먼저 입이 움직였다. 뱀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세로로 갈라진 눈이 도윤을 위아래로 훑는 것 같았다. 그러다 풀숲으로 사라졌다. 풀잎 스치는 소리만 남았다.
도윤은 그 자리에 한참 앉아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 도윤은 손을 펴 보았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일어서야 했다. 늦으면 선생님이 또 이유를 물을 것이다. 이유를 말할 수도 없었다. 뱀이 말을 했다고 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었다.
도윤은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비 냄새. 아니었다. 하늘은 맑았다.
흙냄새. 그것도 아니었다. 흙냄새는 늘 이 공원에 있는 것이었다.
타는 냄새. 아주 옅게, 가죽 태우는 듯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도윤은 걸음을 멈추고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도윤은 냄새를 따라 공원 안쪽 숲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곳은 관리가 안 되는 구역이었다. 나무들이 우거지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는 곳. 어른들은 그 구역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도윤은 나뭇가지를 헤치고 들어갔다. 나뭇가지가 팔을 스칠 때마다 옷소매가 걸렸다.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사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두루마기 자락이 바람도 없는데 흔들렸다. 도윤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나뭇가지 하나 흔들리지 않는데, 저 옷자락만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도윤은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나무껍질이 등에 닿았다. 거칠고 차가운 감촉이었다.
사내의 팔에 무언가 안겨 있었다. 작은 짐승 같았다. 크기는 강아지만 했다. 등에 짧은 털이 나 있었고, 몸 색깔이 자꾸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 회색, 그리고 아주 잠깐 보라색. 그 색이 바뀔 때마다 짐승의 윤곽도 살짝 흐려지는 것 같았다.
도윤은 눈을 크게 떴다. 저런 동물은 본 적이 없었다. 동물원에서도, 책에서도.
사내는 그것을 화단 구석 낙엽 더미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손길이 부드러웠다. 마치 잠든 아이를 눕히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몸을 낮춰 무언가 중얼거렸다. 도윤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이라기보다는 낮은 진동처럼 들렸다.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웅—
낮은 울림이 공기를 흔들었다. 도윤은 눈을 크게 떴다. 나무 뒤에서 심장이 쿵쿵 울렸다. 발밑의 흙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
사내의 몸이 흔들리듯 흐려졌다. 윤곽이 물에 젖은 종이처럼 번져갔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냥, 사라졌다.
도윤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무를 붙잡고 있던 손끝이 아직도 차가웠다. 낙엽 더미 위의 작은 짐승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색은 이제 회색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도윤은 다가가고 싶었다. 저것이 무엇인지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이번에는 겁이 난 게 맞았다. 뱀의 말보다, 사내의 사라짐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무서웠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학교 종이었다. 도윤은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혔다.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뛰다가,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도윤은 이미 학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췄다.
방금까지 공원 숲 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 앞이었다. 숨이 가빴다. 하지만 뛴 거리가 이상했다. 공원에서 학교까지는 아무리 빨리 뛰어도 오 분은 걸렸다. 그런데 지금 숨이 가쁜 정도는 겨우 몇 걸음 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윤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한 손이었다.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만 팔뚝에 남아 있었다.
"뭐야, 이거."
혼자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교문 안으로 아이들이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도윤도 그 뒤를 따라 뛰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선생님이 눈을 흘겼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윤은 자리에 앉았다. 손끝이 여전히 서늘했다. 수업 내용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칠판의 글씨가 눈앞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자꾸 아까 본 것들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됐다. 뱀의 눈. 사내의 옷자락. 그리고 사라짐.
옆자리 아이가 도윤의 팔뚝을 보고 물었다.
"팔에 그거 뭐야?"
"나무에 긁혔어."
도윤은 짧게 답했다.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앞을 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그 공원을 지날 때, 도윤은 숲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낙엽 더미는 그대로 있었다. 그 위의 작은 짐승은 보이지 않았다. 낙엽이 조금 흐트러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도윤은 낙엽 더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손을 뻗어 낙엽을 살짝 들어보았다.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흙과 벌레 몇 마리뿐이었다. 도윤은 손을 털며 일어섰다. 뱀을 다시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화단 어디에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도윤은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골목을 지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뭔가가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계속됐다. 목덜미가 따끔거렸다. 도윤은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문구점 앞을 지날 때,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흘깃 보았다. 평소와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오늘 하루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도윤은 이상한 걸 느꼈다.
대문이 열려 있었다. 평소라면 굳게 닫혀 있어야 했다. 이모는 늘 대문을 닫고 잠갔다. 낮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박성구의 목소리였다. 낮고, 화가 난 목소리였다. 도윤은 그 목소리를 이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좋은 일은 없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이런 걸 배웠어."
도윤의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저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손끝이 이미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