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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대놓고 뭘 하는 건 아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목소리 톤도 그대로다. 그런데 나를 안아 올리는 손끝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의 각도에서, 뭔가 미묘하게 달라진 무게가 느껴진다. 관찰당하고 있다는 감각. 두 살짜리가 그런 걸 느낄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안다. 가끔 서재로 불려간다. 서재는 늘 서늘하다. 벽 하나를 가득 채운 책장, 그 앞에 놓인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그리고 그 책상 뒤에 앉은 아버지. 유모가 나를 안고 들어가면 아버지는 손짓으로 유모를 내보내고 나를 직접 무릎에 앉힌다. "도훈아, 이거 뭐야?" 손바닥 위에 작은 촛불을 올려놓고 묻는다. 처음엔 그냥 불장난인가 싶었다. 두 번째부터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세 번째부터는 확신했다. 이건 시험이다. 두 살짜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아버지는 없다. 촛불을 켜놓고, 그 앞에서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아버지도 없다. 하지만 이 집의 가주는, 원작에서도 그랬듯, 자기 핏줄 중 누군가에게서 각성의 조짐이 보이면 절대 그냥 넘기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손을 뻗어 촛불을 만지려는 척했다. 손가락 끝이 불꽃에 닿기 직전,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몸을 뒤로 젖히고, 입을 삐죽이고, 눈에 물기를 살짝 머금었다. 우는 시늉까지 곁들였다. 이 정도 연기는 이제 손에 익었다. 두 살짜리 몸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 이거였다. 최대한 평범하게, 최대한 무해하게. 아버지는 그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촛불을 껐다. "…아니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완전히 의심을 거둔 건 아니었다. 그 말투에는 확신도, 안도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냥 판단을 유보한 사람의 말투였다. 나를 무릎에서 내려놓을 때, 아버지의 손이 잠깐 내 어깨에 머물렀다. 그 잠깐의 머뭇거림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이런 시험은 그 후로도 몇 번 더 있었다. 손바닥 위의 물그릇을 흔들리게 하려는 듯 이상한 손짓을 하며 나를 관찰하기도 했고, 한번은 그냥 아무 말 없이 나를 안고 창가에 서서 오래도록 바깥을 보기만 했다. 나는 매번 아기처럼 굴었다. 침을 흘리고, 딸랑이를 향해 손을 뻗고, 뜻 없는 소리를 냈다. 연기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 무렵, 강서연 쪽에서 다른 일이 벌어졌다. 오후, 복도에서였다. 나는 서연의 등에 업혀 세탁실로 가는 길이었다. 볕이 복도 창으로 길게 들어와 바닥에 노란 줄무늬를 그리고 있었고, 서연의 등은 늘 그렇듯 따뜻했다. 걸음마다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그 움직임이 좋아서, 나는 반쯤 잠든 채로 실려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다 서연과 부딧힐 뻔했다. "어이쿠, 미안." 아버지가 웃으며 서연의 팔을 짧게 붙잡았다. 균형을 잡아주려는 정도의 손짓이었다. 정말 그뿐이었다. 다른 뜻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넘어질 뻔한 사람의 팔을 반사적으로 잡은, 그런 흔하고 사소한 접촉. 서연의 몸이 그 순간 완전히 굳었다. "…" 숨소리가 멈췄다. 등에 업힌 내 몸까지 그 떨림이 전해졌다. 서연의 어깨뼈가 딱딱하게 굳는 감각, 등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감각. 심장이 뛰는 속도가 갑자기 빨라진 것도 느껴졌다. 쿵, 쿵, 쿵. 평소보다 훨씬 빠른 박동이 등 너머로 전해졌다. 아버지는 별생각 없이 손을 놓고 지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에게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몇 초짜리 접촉, 몇 초짜리 배려. 그러고는 잊혔을 순간. 서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다는 걸, 등 너머로도 알 수 있었다. 손끝이 떨리고, 다리가 조금씩 후들거린다. 나를 업은 채로 넘어질까 봐 걱정될 정도로 다리가 휘청였다. "…괜찮아요." 서연이 낮게 중얼거렸다. 나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복도 끝까지 가는 동안 서연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걸으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을 텐데, 오늘은 그저 걸음을 옮기는 데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는 게 느껴졌다. 발끝이 자꾸 바닥을 잘못 짚었다. 세탁실에 도착해서야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나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고서였다. 그 손짓 하나는 흔들리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자기 자신은 무너지고 있으면서도 나를 놓는 손은 끝까지 조심스러웠다. "미안해, 도훈아. 이모가 잠깐만…" 서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잘게 떨렸다. 나는 등에서 내려와 서연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었다. 두 살짜리 손으로 다독이는 척,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바닥이 너무 작아서 서연의 무릎 한쪽도 다 덮지 못했다. 서연이 나를 내려다봤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지." 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원작에서 이 여자가 겪은 일을 안다고, 지금 그 말을 내뱉을 수 없다는 게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몇 년 후, 이 사람이 어떤 계약 위에 끌려가듯 혼인을 하게 되는지, 그 혼인이 어떤 지옥이었는지, 나는 이야기의 결말까지 알고 있다. 알면서 지금 이렇게 손바닥 하나 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두 살짜리 몸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무력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걸을 수 없다는 것, 누군가를 안아줄 수도 없다는 것. 지식만 어른의 것이고 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지금처럼 잔인하게 느껴진 순간은 없었다. 서연은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소매로 눈가를 닦고 다시 일어섰다. 다리가 아직 조금 후들거리는 게 보였지만, 애써 힘을 주어 똑바로 섰다. "미안해. 이런 거 보여주면 안 되는데." 애써 웃는 얼굴이었다. 처음 본 웃음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슬픈 얼굴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입꼬리는 올라갔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억지로 만든 표정, 나를 안심시키려고 급하게 조립한 얼굴. 서연은 다시 나를 안아 올렸다. 아까보다 조금 더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세탁물을 정리하는 내내 서연은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흥얼거리던 노래도 없었다. 그저 손을 움직이는 소리, 젖은 천이 부딪히는 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그날 밤, 나는 요람 안에서 결심했다. 천장을 보며, 낮에 봤던 서연의 얼굴을 몇 번이고 다시 떠올렸다. 팔을 붙잡혔을 뿐인데, 그 정도 접촉에도 몸이 완전히 굳어버릴 만큼의 공포가 어디서 왔는지, 원작을 읽었던 나는 안다. 그 공포의 이름을, 그 공포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안다. 원작의 강제 혼인 시나리오가 어떤 계기로 시작되는지, 정확한 시점을 기억해내야 한다. 이대로라면 서연은 몇 년 안에 그 지옥으로 다시 끌려들어간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그 시점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나는 겨우 두 살이라는 것.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걷는 것도 서툴고, 아버지 앞에서는 촛불 하나에도 놀란 척을 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 무력함이 그날 밤 가장 크게 나를 짓눌렀다. 요람 창살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리 없이, 아무도 모르게. 이 몸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을까. 그 답을 찾지 못한 채로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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