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며칠 뒤, 정원에서 사고가 났다.
날씨가 좋았다. 볕이 따뜻했고, 바람은 적당히 불었다. 엄마는 그런 날 아기를 밖에 눕혀놓는 걸 좋아했다. 일조량이 좋아야 뼈가 튼튼해진다는 이유였다. 나야 뭐, 두 살짜리 몸으로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담요 위에 눕혀진 채로 하늘을 봤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다. 이런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누워 있는 것. 전생에서는 이런 여유가 없었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부엌에서 뭔가 가지러 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서재에 있었고, 서연은 마당 한쪽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하얀 시트가 바람에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했다.
혼자였다.
정확히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른들이 근처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를 붙잡아주는 손은 없었다.
담요 위에서 뒤집기를 시도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몸이 심심했던 건지도. 아니면 최근 들어 부쩍 활발해진 신체 감각이 자꾸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건지도.
두 살짜리 몸이 이렇게 통제가 안 되는 건 매번 새삼스럽다. 정신은 성인인데 근육은 아기다. 명령을 내려도 절반은 씹힌다. 뒤집으려던 상체가 예상보다 크게 기울었다.
균형이 무너졌다.
몸이 담요 밖으로 굴러 나갔다. 잔디 위를 한 번, 두 번 굴렀다. 그리고 굴러떨어진 곳이 하필 화단 경계석이었다.
턱, 하고 부딪히는 느낌.
시간이 느려지는 착각이 들었다. 돌의 각진 모서리가 시야 가득 들어왔다. 부딪히면 어느 정도 다칠지 계산이 됐다. 두 살배기 두피는 약하다. 찢어질 수도 있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긴급 상황 판단 - 마력 강제 발현]
익숙한 문구가 시야에 떴다. 반가운 걸음마 아니었다. 반가움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손끝에서 빛이 확 터졌다.
콰앙, 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비슷한 무언가가 눈앞에서 일어났다. 공기가 팽창하는 듯한 압력. 얇은 마력 방벽이 내 몸 앞을 감쌌다. 반투명한 막이 잠깐 눈앞에서 일렁였다.
경계석에 부딫히기 직전, 몸이 튕겨 나가듯 잔디 위로 굴렀다.
몸이 두 번 정도 더 굴렀다. 등이 잔디에 닿는 감각. 축축하고 부드러웠다.
멈췄다.
다친 곳은 없었다. 손끝을 움직여봤다. 정상이었다. 다리도, 머리도.
대신, 화단 경계석 한 귀퉁이가 부서져 있었다.
돌이 부서진 단면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속이 서늘해졌다. 이건 좀 심했다. 그냥 튕겨내기만 하면 됐을 텐데, 방벽이 너무 강하게 발현됐다.
"도훈아!"
빨래를 널던 서연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시트를 던지듯 내려놓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걸음이 다급했다. 나를 안아 올리고 온몸을 살핀다. 손이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팔, 다리, 머리, 등.
"괜찮아? 어디 아파? 말해봐, 도훈아."
존댓말도 잊고 다급하게 묻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걱정으로 일그러진 표정. 평소엔 그렇게 다정하고 조곤조곤하던 서연이 이렇게까지 표정이 무너질 수 있구나 싶었다.
나는 대답 대신 눈을 깜빡였다. 말을 할 수 있어도 지금은 못 하는 척해야 했다. 두 살짜리가 사고 직후에 침착하게 상황 설명을 할 순 없으니까.
등 뒤에서 서연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나를 안은 팔이 미세하게 떨렸다.
소란을 듣고 아버지와 엄마가 동시에 뛰어나왔다. 엄마는 부엌에서 나오는 중이었는지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그걸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리고 달려왔다.
엄마가 나를 받아 들고 온몸을 살폈다. 서연이 했던 것과 똑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팔, 다리, 머리, 등. 상처 하나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엄마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를 품에 안고 몇 번이고 등을 쓸었다. 그 손길이 따뜻했다. 이런 걸 느끼려고 넘어진 건 아니었는데, 어쩐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아버지는 부서진 경계석 앞에 서 있었다. 몸을 숙여 조각을 살피는 동안,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이 돌, 아까까지 멀쩡했는데."
낮은 목소리였다. 서재 창문으로 정원을 내려다볼 때가 있으니, 아마 사고 직전까지 이 경계석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애가 넘어지면서 부딪혔나 보죠."
서연이 얼른 둘러댔다. 목소리가 살짝 높았다. 너무 빠르게 대답한 게 티가 났다.
"부딪혔으면 애 얼굴이나 팔에 흔적이 남아야지. 상처가 하나도 없어."
아버지가 경계석 조각을 주워들었다. 손끝으로 단면을 쓸어봤다. 단면이 이상하게 깨끗했다. 마치 무언가가 정확한 힘으로 튕겨낸 것처럼. 돌이 부서질 때 보통 생기는 거친 균열이 아니었다.
깨진 조각 하나를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빛에 비춰보는 것처럼.
"강호 씨, 지금 애가 놀랐는데 그게 중요해요?"
엄마가 날카롭게 말했다. 나를 안은 팔에 더 힘이 들어갔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몇 초간 침묵이 이어졌다. 정원에 바람 소리만 남았다. 서연은 그 사이에도 안절부절못하며 시선을 아버지와 나 사이로 옮겼다.
조각을 다시 내려놨다. 그리고 나를 잠시 바라봤다. 두 살짜리 아기를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뭔가를 재는 듯한 눈빛.
시선이 마주치는 그 몇 초가 길게 느껴졌다.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 관찰하고 있었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처럼.
속이 뒤틀렸다.
들켰나.
머릿속으로 온갖 가능성을 굴렸다. 방벽이 너무 눈에 띄게 발현된 건 아닐까. 타이밍이 너무 정확했던 건 아닐까. 두 살짜리가 넘어지는 각도까지 계산해서 반사적으로 대응했다는 게, 어른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아니, 아직은 확신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의심 정도다. 하지만 그 의심이 씨앗처럼 심어진 순간이라는 걸, 나는 직감했다.
"그냥 우연이겠지."
아버지는 짧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하지만 걸음이 평소보다 느렸다. 서재로 돌아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뭔가를 고민하는 사람의 것 같았다.
뒤를 한 번 돌아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이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엄마는 그날 하루 종일 나를 곁에서 떨어뜨려놓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잠깐 화장실에 갈 때도 서연에게 몇 번씩 확인했다. 도훈이 어디 있어, 잘 보고 있어. 서연은 그날 이후로 정원 근처에서 빨래를 널지 않았다. 실내에서 널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요람 안에서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원작에서 아버지 석강호는 눈치가 빠른 인물로 묘사된 적이 없다. 오히려 무심하고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성격으로 그려졌다. 원작 속 그는 자식이 다쳐도 대충 걱정하는 척만 하고 서재로 돌아가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뭔가를 감지하고 있다. 두 살짜리 아들이 부서뜨린 돌 조각의 단면을 유심히 살피는 아버지라니, 원작에 없던 전개다.
내가 원작을 바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원작이 이미 나를 중심으로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답을 알 수 없었다. 원작 지식이 이 정도로 흔들릴 줄은 몰랐다. 확실했던 것들이 하나씩 어긋나고 있었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앞으로는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
이불 속에서 손을 살짝 들어봤다. 손끝을 보며 다짐했다. 다음에는 절대로, 이렇게 눈에 띄게 마력을 쓰지 않겠다고. 넘어져서 이마가 조금 깨지는 정도라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몸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마력이 강제로 발현되는 이 시스템 자체가, 내 의지와는 별개로 작동하고 있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아버지의 눈빛이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천장의 무늬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며, 나는 그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두 살짜리 몸으로 얼마나 더 조심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