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저택의 아침은 늘 비슷하게 시작된다.
정원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주방에서 그릇 부딪는 소리가 울리고, 아버지 석강호의 굵은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넘어온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마루를 가로지르며 조금씩 길어진다. 그 빛이 내 담요 위까지 닿을 때쯤, 하루가 진짜로 시작된다는 걸 안다.
나는 그 모든 소리를 요람 밖, 거실 바닥에 깔린 담요 위에서 듣는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여전히 낯설다. 손가락 하나 뻗는 것도, 목을 가누는 것도 매번 새로 배우는 기분이다. 전생의 기억은 또렷한데 지금의 몸은 갓 태어난 아기의 것이니 이 낙차가 매번 우습고, 또 답답하다.
"도훈이 오늘도 얌전하네."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며 웃는다. 체격이 크고,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다. 손이 커서 나를 안을 때마다 몸이 통째로 가려질 정도다. 원작에서 이 사람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강서연에게 저지른 일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매일 이 사람 손에 안겨 있어야 한다는 게, 솔직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이런 게 아이러니라는 건가.
나를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 동시에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릴 사람이라는 걸 안다는 것.
"강호 씨, 애 너무 세게 안지 마요."
엄마가 잔소리를 한다. 손에 든 수건으로 아버지의 팔을 툭 치면서.
"내가 언제 세게 안았어."
"어제 애 트림하다가 놀랐잖아요. 눈이 이만큼 커지던데."
"그거는 걔가 트림을 너무 시원하게 해서 그런 거지."
"핑계는."
두 사람의 신경전은 늘 이런 식이다. 겉으로는 다투는 척, 속으로는 서로를 아끼는 게 뻔히 보인다. 이 부부 사이에 애정이 깊다는 건 원작에서도 여러 번 묘사됐다. 문제는 그 애정과, 아버지의 과거가 별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원작 속에서 어머니는 이 모든 사실을 끝까지 몰랐다. 아버지가 저지른 일이 세상에 드러난 건 훨씬 나중,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때 어머니가 지었던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활자로 읽었을 뿐인데도 선명했다.
지금 눈앞에서 웃고 있는 이 사람이, 그 표정을 짓게 될 사람이라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거실 구석에서 걸레질을 하던 손이 잠깐 멈췄다.
강서연이다.
적갈색 머리를 뒤로 묶고, 보라색 눈으로 조용히 마루를 닦고 있다. 표정에 변화가 없다. 웃지 않는다.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 중 가장 조용한 사람이고, 가장 말을 안 섞는 사람이다. 다른 하녀들은 서로 잡담을 주고받으며 일하는데, 서연은 늘 혼자다. 식사 시간에도 구석 자리를 고른다.
원작을 읽었을 때는 그냥 서브 캐릭터였다. 비극적인 과거를 가진, 조연에 가까운 인물. 몇 줄로 설명되고 지나가는 사람. 실제로 마주하니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걸레를 쥔 손등에 흉터가 있다. 검을 잡던 사람의 손이라는 게, 저 자세만 봐도 느껴진다. 등을 곧게 펴고 무릎을 접는 방식이 보통 하녀들과는 다르다.
"서연 씨, 오늘도 고생하네요."
엄마가 말을 건다.
"아닙니다."
짧은 대답. 서연은 걸레를 다시 움직인다. 시선은 한 번도 아버지 쪽으로 가지 않는다. 아버지도 서연을 볼 때 눈빛이 묘하게 굳는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무겁다. 아무도 그 이유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이 저택에서 저 두 사람만 아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담요 위에서 손발을 꼼지락거리며 그 모든 걸 지켜본다.
원작에서 강서연은 나중에, 아버지의 손에 의해 강제로 정략혼인의 대상으로 지정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버지가 저지른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입막음. 그 혼인은 서연을 더 깊은 불행으로 밀어넣는 장치였다. 소설 속에서 서연은 그 혼인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웃음이 사라졌고, 대사도 줄었고, 결국 이야기 후반부에는 이름만 남은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 결말을 알고 나서도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걸 막고 싶다.
왜인지는 나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저 조용한 사람이 웃는 얼굴을 한 번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냐고 묻는다면, 사실 없다. 손가락을 겨우 움직이고, 목도 못 가누는 몸으로 무슨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자꾸 저 사람의 표정을 살핀다.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으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목구멍에서 그냥 튀어나왔다. 서연의 시선이 이쪽으로 돌아온다.
찰나였다.
서연이 나를 바라본다. 무표정한 얼굴 위로 아주 잠깐, 뭔가가 스친다. 경계인지, 의아함인지 모르겠다. 걸레를 쥔 손이 마루 위에서 멈춘 채로 몇 초쯤 그대로 있었다.
"도훈아, 서연 이모한테 인사해야지."
엄마가 나를 들어 서연 쪽으로 내밀었다. 서연이 살짝 물러선다.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한 것처럼, 거리를 두려는 동작이었다.
"괜찮습니다, 마님. 저는…"
"아유, 애가 뭐 물어요. 손이라도 한 번 잡아줘요."
서연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거절할 말을 고르는 것 같았는데, 엄마가 이미 나를 그쪽으로 더 가까이 내밀고 있었다. 도망갈 곳이 없었던 모양이다.
서연이 마지못해 손끝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가락을 붙잡았다. 작고 거친 손이었다. 검을 잡아온 손이라는 게 느껴졌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두껍게 잡혀 있었고, 손끝은 차가웠다.
서연의 눈이 아주 살짝 커졌다.
"손이 따뜻하네요."
낮은 목소리였다. 처음으로 들은, 감정이 조금 섞인 말이었다. 지금까지 이 사람이 하는 말은 전부 짧고 건조했는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놀란 것 같기도 했고, 어딘가 낯설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손가락을 조금 더 세게 감아쥐었다. 서연이 그 힘을 느꼈는지 손을 빼려다 멈췄다.
"애가 손힘이 세네요."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서연이 대답했다. 여전히 짧았지만, 아까보다는 확실히 다른 온도였다.
등 뒤에서 아버지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표정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나는 그 표정을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다. 웃음도 아니고 놀람도 아닌, 뭔가 오래된 감정을 억누르는 얼굴 같았다. 아버지가 저런 얼굴을 하는 걸 처음 봤다. 서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그러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저택 안에서, 나만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 갓 태어난 손가락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 정도다.
손을 붙잡는 것.
그게 전부였다.
서연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다시 풀어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걸레를 챙겨 들고 뒤돌아서는 그 등이, 아까보다 조금 더 굳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의 시선은 여전히 그 등을 따라가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오래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