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왕녀, 심해에 잠들다

3화

상자는 오래된 나무 냄새를 풍겼다. 뚜껑을 열자 먼지가 훅 끼쳐왔고, 그 안에 얇은 천으로 싸인 편지가 놓여 있었다. 소금기와 세월에 색이 바랬다. 나는 그것을 펼치지 않고 오래 들고만 있었다. 손끝이 천의 결을 따라 움직였다. 낡은 실이 풀려 있었고, 어딘가는 소금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다. 어머니, 미란. 지난 태풍 때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 그날의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 배가 뒤집혔다는 소식, 마을 사람들이 밤새 등을 들고 해안을 뒤지던 모습, 그리고 다음날 새벽 파도에 밀려온 어머니의 옷자락. 몸은 끝내 찾지 못했다. 장례는 옷자락 하나로 치러졌다. 관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나는 겨우 열여덟 살이었고, 사람들이 곡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만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이 상자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딘가에 숨겨두었다는 것도, 언젠가 내게 줄 거라는 것도 모른 채였다. 오늘, 우연히 아버지의 방에서 이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손이 떨리는 걸 참아야 했다. 나는 그날 이후 처음으로 그 상자를 열었다. 편지를 펼쳤다. 짧은 글씨였다. 어머니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윤서야. 네가 이걸 읽는다면, 나는 이미 미르신 곁에 있을 거야. 무서워하지 마. 바다는 나를 데려가는 게 아니라 나를 안아주는 거니까.' 거기까지 읽은 순간, 방 안의 등불이 흔들렸다. 창문을 열어둔 것도 아닌데, 바람 한 점 없이 불꽃이 크게 일렁였다. 나는 그 편지를 손에 쥔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안아주는 거라고?'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가슴 한가운데가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죽는 순간까지도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축복이라 믿었다. 나는 그 믿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어딘가 깊은 곳에서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다 그런 걸까. 마을 사람들도 바다를 신성하게 여겼고, 미르신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했다. 나도 그런 마음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어머니의 목숨과 바꿀 만한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창밖에서 파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궁까지 닿을 리 없는 소리였는데도, 마치 방 안까지 밀려드는 것 같았다. 나는 편지를 움켜쥐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면서 종이가 구겨졌다. 편지지 아래쪽에는 작은 얼룩이 있었다.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알 수 없는 자국이었다. 나는 그 얼룩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된 종이의 감촉뿐이었다. '왜 나한테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 아버지는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미르신의 뜻이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게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그 말들은 아무것도 채워주지 못했다. 나는 그저 어머니가 왜 그날 밤 배를 탔는지, 왜 하필 그 항로였는지,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몇 번이나 아버지에게 물었는지 셀 수도 없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시선을 돌렸고, 화제를 바꾸었고, 어떤 날은 그냥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그게 아버지도 슬퍼서라는 걸 알면서도, 그 침묵이 쌓일수록 더 답답해졌다. 그런데 아버지는 매번 그 질문을 피했다.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아버지였다. 익숙한 발소리였다. 문턱을 넘는 그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만으로도 나는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불이 켜져 있어서." 낮은 목소리였다. 걱정도, 의심도 아닌, 그저 습관처럼 던지는 말이었다. 나는 편지를 등 뒤로 숨기려다,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아버지 앞에 내밀었다. 손이 떨렸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거두지 않았다. "이거, 알고 계셨어요?" 아버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시선이 편지에서 내 얼굴로, 다시 편지로 옮겨갔다. 그 짧은 순간에 아버지의 얼굴이 몇 번이나 바뀌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래." "그런데 왜 저한테 안 주셨어요?"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나조차 놀랄 만큼. "네가 힘들어할까 봐." "저는 지금도 힘들어요, 아버지. 그때도, 지금도."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갈라짐이 내가 얼마나 오래 참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나는 그대로 두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 넓은 어깨가, 언제나 궁을 지탱하던 그 어깨가, 그 순간만큼은 유난히 작아 보였다. 그 모습이 나를 더 화나게 했다. "미르신의 뜻이라고만 하지 마세요. 그건 설명이 아니에요." "윤서야." "설명해주세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머니가 왜 그 배를 탔는지. 저는 알 권리가 있어요." 아버지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했다. 마치 말이 목 끝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 것처럼. 창밖에서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와 등불이 꺼졌다. 방 안이 순간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숨소리만 들렸다. 나는 그 숨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마음속에 있던 말을 소리 내어 뱉었다. "차라리 저도 데려가시지."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방바닥이 미세하게 울렸다. 벽에 걸린 등잔이 흔들리며 작게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두려움과 슬픔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것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나는 그 말을 주워 담지 않았다. 방 안에는 여전히 파도 소리가 밀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가 이제 더 이상 궁 밖의 것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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