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왕녀, 심해에 잠들다

2화

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미르신께서 화가 나신 거래요.' 시장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낮에 포구를 지나다 우연히 들은 말이었는데,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감싸며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으로 궁의 정원이 펼쳐졌고, 그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늘 보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물빛이 짙었다. 마치 먹을 풀어놓은 것처럼 어두운 청색이었다. 파도가 유난히 크게 부서지는 것도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나는 수건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물비린내가 옷자락에서 옅게 풍겼다. 오늘도 바다에 다녀온 흔적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 강모왕과 함께 저녁상에 앉았다. 아버지는 청란도의 왕이었고, 늘 말이 적었다. 상 위에는 흰살 생선구이와 미역국이 놓여 있었다. 김이 올라오는 국그릇을 바라보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오늘도 바다에 다녀왔느냐." "네." "몸조심하라 일렀거늘." "저는 괜찮아요, 아버지." 아버지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조용한 부녀. 숟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어업을 관리하는 관리 하나가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고, 갓끈이 반쯤 풀려 있었다. 뛰어온 게 분명했다. "전하! 급한 소식입니다!" 아버지의 표정이 굳었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무슨 일이냐." "남쪽 산호초 지대가… 어젯밤 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합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걷었는데, 예년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나는 숟가락을 든 채로 굳어버렸다. 국물이 식어가는 것도 몰랐다. "절반?" "아닙니다, 전하. 절반이 아니라… 삼 할입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삼 할이라니. 그 숫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청란도는 바다가 곧 생명이었다. 산호초가 무너지면 물고기가 사라지고, 물고기가 사라지면 사람이 굶었다. 지난 태풍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여러 마을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아이들이 배를 곯고, 노인들이 먼저 쓰러졌다. 그리고 지난 태풍 때, 나는 어머니를 잃었다. '그때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는 거야.' 속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저릿했다. '또, 또 그런 식으로.' "남쪽 지대는 원래 우리 잠수부들이 다니던 곳이 아닙니다." 관리가 말을 이었다. "더 깊은 곳, 아직 아무도 내려가 본 적 없는 해역까지 손상이 번졌다 합니다. 그쪽 암초까지 완전히 무너졌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래 침묵했다. 상 위의 국이 다 식어갈 만큼 긴 침묵이었다. "어부들을 더 보내라." "전하, 그 깊이는… 보통 잠수부로는 무리입니다. 서른 자 이상입니다. 지난번에도 두 명이 무리하다 정신을 잃고 겨우 끌어올렸습니다." 서른 자. 그 숫자가 내 귀에 박혔다. 못이 박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깊이를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깊이보다 더 깊은 곳까지도 숨 한 번에 다녀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관리가 나간 뒤, 아버지는 나를 흘깃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짧은 시선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걱정인지, 경계인지, 혹은 둘 다인지. "오늘은 그만 쉬어라." 그 말에는 다른 뜻이 없었다. 정말로 그저, 쉬라는 말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부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부탁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왔다. 걸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창문을 열어두고 침상에 앉았다. 파도 소리가 궁 안까지 들려왔다. 평소보다 거센 소리였다. 마치 바다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마을에서는 이미 소문이 돌고 있었다. 왕녀가 서른 자 아래까지 내려간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 서른 자 아래에서 사람들이 굶고 있다는 것. 두 소문이 하나로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사람들이 나를 찾아올 거야. 아니면 아버지가 결국 부탁하게 되겠지.'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밤바람이 창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서늘했다. '또 시작이구나.' 작년의 기억이 되살아나려 했다. 사람들의 얼굴, 굶주림에 지친 눈빛, 그리고 어머니가 그 바다로 나갔던 그날의 하늘. 나는 그것을 애써 밀어냈다. 아직은 아니었다. 지금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어머니의 유품이 담긴 상자를 꺼내 들었다. 상자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표면에는 잔잔한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오랫동안 열지 않아서인지 뚜껑에 먼지가 얇게 쌓여 있었다. 뚜껑을 여는 손끝이 떨렸다. 그 안에는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편지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편지지의 색이 이미 누렇게 변해 있었고, 접힌 모서리는 닳아 있었다. 몇 번이나 펼쳤다가 다시 접었던 흔적이었다. 파도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천천히, 편지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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