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은 바다에서 죽는다.
청란도에서는 다들 그렇게 믿었다.
늙은 어부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바다에 손을 담가 축복을 빌었고, 사람이 죽으면 배를 타고 나가 시신을 물에 흘려보냈다. 땅에 묻히는 것보다 물에 안기는 것이 더 큰 축복이라 여겼다. 그것이 청란도의 방식이었다.
나는 청란도의 왕녀, 윤서다. 올해로 열아홉이 되었다.
나는 숨을 십 분 넘게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른 자가 넘는 물속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궁의 늙은 상궁들은 그걸 두고 혀를 내둘렀다. 보통 사람은 삼 분을 채우기도 힘들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웃었다.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이 두 가지는 궁 밖으로 나가면 소문이 되고, 소문은 곧 신화가 되었다. 왕녀가 미르신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어부들은 내가 지나가면 허리를 굽혔고, 아이들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저기, 물의 아이다. 그렇게.
미르신은 청란도의 주신이었다. 바다를 다스리고, 저승길을 인도하고, 심해의 어둠 속에서 길 잃은 자를 데려간다고 했다. 사람들은 배를 띄우기 전에 미르신께 절을 올렸고, 그물을 던지기 전에도 짧게 기도를 했다. 궁에서도 매달 초하루마다 큰 제를 지냈다. 향을 피우고, 쌀과 술을 바닷물에 흘려보내고, 무녀가 물에 젖은 종이를 태우며 신의 뜻을 물었다.
나는 그 신을 믿었다. 다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남들은 미르신을 두려워하며 믿었다. 나는 그 신을 그리워하며 믿었다. 마치 오래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처럼.
아침마다 나는 궁의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 바닷가로 향했다. 왕녀가 궁 밖을 나도는 것은 원래 금지된 일이었지만, 아무도 나를 막지 못했다. 아버지인 강모왕도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처음에는 문지기를 세우고 시녀를 붙여 감시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빠져나갔다. 결국 아버지는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물에 빠져 죽을 아이는 아니니, 그냥 두어라."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물에서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에서만 완전해지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나가시는 거예요?"
시녀 아이가 물었다. 이제 막 열다섯이 된 아이였는데, 매번 똑같은 질문을 하면서도 매번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신발을 벗고 있었으니까.
"저번처럼 늦게 오시면 안 돼요. 상궁마님이 또 화내실 거예요."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맨발로 모래를 밟았다. 아침의 모래는 차가웠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그 서늘함이 좋았다.
바다에 발을 담그면 세상이 조용해졌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사람들의 시선까지 전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그 고요를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몸을 뒤집었다. 물이 나를 감쌌다. 서늘하고, 부드럽고, 익숙했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이 감촉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서른 자를 내려가면 세상은 완전히 다른 색이 되었다. 위쪽의 빛은 흐릿한 은빛 실이 되어 흔들렸고, 아래쪽은 짙은 남색이었다. 산호초 사이로 물고기 떼가 지나갔다. 은빛 비늘이 번쩍이며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나는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 헤엄쳤다.
귓속에서 압력이 뭉근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것마저 익숙했다. 오히려 그 무게가 나를 감싸주는 것 같았다.
'여기 있으면 아무것도 나를 찾을 수 없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궁에서는 늘 누군가 나를 찾았다. 왕녀님, 이쪽으로 오세요. 왕녀님, 이 옷을 입으셔야 해요. 왕녀님, 대신들이 기다립니다. 하지만 이 아래에서는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물고기도, 산호도, 흔들리는 해초도 나를 왕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나였다.
숨이 다할 즈음 수면으로 올라오면, 언제나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이었다.
까맣게 탄 피부, 짧게 자른 머리카락, 소금기 밴 옷차림. 어릴 때부터 봐온 모습인데도 매번 조금씩 낯설게 느껴졌다.
"오늘은 좀 오래 계셨네요." 도현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걱정했잖아요."
"걱정 안 해도 돼. 나 잘 하는 거 알잖아."
"그래도요. 매번 이렇게 오래 계시면 저는 심장이 떨려서 못 견뎌요."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물 밖으로 나왔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매일 그물을 당기고 배를 끄는 손이었다.
도현은 나보다 두 살 위였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고, 지금은 연인이었다. 궁의 사람들 눈을 피해 만나는 사이. 왕녀와 평민 어부의 아들.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도현의 수영 솜씨는 마을에서 손꼽혔다. 하지만 내 발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늘 나를 따라 바다에 들어왔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열두 살, 열네 살, 어린 우리는 서로 누가 더 오래 숨을 참는지 내기를 했고, 나는 늘 이겼다. 도현은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는데도 유독 나에게만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오늘 마을 어른들이 그러던데요." 도현이 젖은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요즘 바다가 이상하대요."
"이상해?"
"물살이 세지고, 산호초 색이 변했다고. 지진이 잦아진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들 해요."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최근 며칠 사이 땅이 흔들리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궁에서도 그 일로 사람들이 조용히 수군거렸다. 상궁들은 촛대가 흔들리는 걸 보며 서로 눈치를 봤고, 대신들은 회의 중에도 몇 번씩 천장을 올려다봤다.
"우리 옆집 할아버지는 배를 아예 안 띄우기로 했대요." 도현이 덧붙였다. "바다가 뭔가 준비하는 것 같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짜로 믿는 눈치더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닐 수도 있잖아."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발끝으로 물을 살짝 튕겼다. 파문이 동그랗게 퍼져나갔다.
"미르신께서 화가 나신 거래요." 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제사를 소홀히 지냈다느니, 누가 부정한 짓을 했다느니. 다들 말이 많아요."
나는 물속에 다시 얼굴을 담갔다. 대답하지 않았다.
물속에서 눈을 뜨자 도현의 다리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 위로 흐릿한 하늘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미르신이 화가 났다는 말보다, 미르신이 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물속에 있을 때마다 가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 밑에서 무언가가, 아주 오래된 무언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리움 같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 생각이 유난히 오래 머물렀다.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도현이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얼굴이 왜 그렇게 하얘요."
나는 웃으려고 했다. 그런데 웃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낮게 깔린 먹구름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는 없었던 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