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전화를 끊고서도 서연은 한동안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액정이 까맣게 꺼졌다.
서연은 그 까만 화면을 들여다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뭐래. 준호가 물었다.
강 원장님이. 서연이 말을 골랐다.
위탁잉태계약, 우리한테 딱 맞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고.
준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 프로그램. 준호가 되물었다.
청연도라고, 어디 섬이래. 서연이 대답했다.
섬. 준호가 인상을 썼다.
섬은 또 뭐야. 섬에서 애를 낳는다는 거야, 아니면 섬으로 이사를 가라는 거야.
몰라. 자세한 건 내일 병원 가서 들으면 되지. 서연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준호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장을 한참 쳐다봤다.
다음 날, 부부는 병원 진료실에 앉았다.
진료실은 평소와 다르게 조용했다.
간호사도 보이지 않았다.
강태식이 서류를 내밀었다.
청연도 위탁잉태 프로그램입니다. 강태식이 웃으며 말했다.
웃음이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합법화된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벌써 프로그램이 있어요. 준호가 서류를 훑었다.
원래부터 준비돼 있던 거니까요. 강태식이 대답했다.
준호는 그 말이 걸렸다.
원래부터.
합법화되기 전부터 준비했다는 얘기 아닌가.
준호는 서류를 넘기는 손을 멈추고 강태식을 봤다.
법이 통과되기 전부터 이걸 만들어놨다는 겁니까. 준호가 물었다.
법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강태식이 어깨를 살짝 들었다 놓았다.
준비하는 사람들은 다 미리 준비하죠.
준호는 그 대답이 대답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계약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준호가 물었다.
최소 6개월. 태아 인도까지. 강태식이 서류의 한 부분을 짚었다.
6개월. 준호가 그 숫자를 곱씹었다.
그동안 저희는 격리됩니까. 준호가 다시 물었다.
격리는 아니고, 전용 시설에서 관리받는 거죠. 강태식이 말끝을 흐렸다.
전용 시설이라는 게 어떤 곳인지. 준호가 캐물었다.
의료진 상주하고, 산모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시설이에요. 강태식이 서류철을 톡톡 두드렸다.
바깥세상보다 훨씬 안전하죠.
준호는 안전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불안했다.
서연 씨. 강태식이 갑자기 서연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제가 아는 부부 중에 이 프로그램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있어요. 강태식이 목소리를 낮췄다.
준호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서류를 넘기고 있었으니까.
종이 넘기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사각.
정말요? 서연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은 아이 셋 낳고 잘 살아요. 강태식이 서연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셋이나요. 서연이 되물었다.
셋이나요. 강태식이 그대로 따라 말하며 웃었다.
서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조건이 좀 까다로울 수도 있는데, 그건 다 감안할 만한 가치가 있죠. 강태식이 덧붙였다.
조건이요. 준호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뭐, 일반적인 계약 조건이에요. 강태식이 서류철을 덮었다.
일반적인 조건이 뭔지. 준호가 다시 물었다.
준호 씨, 너무 걱정 많으신 거 아니에요. 강태식이 웃으며 넘겼다.
다들 그렇게 시작해서 다들 잘 끝나요.
준호는 그 웃음이 조금도 안심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준호가 운전대를 잡고 물었다.
강 원장이 아까 뭐라고 한 거야. 준호가 물었다.
뭐가. 서연이 창밖을 봤다.
너한테만 따로 말한 거 있잖아. 준호가 다시 물었다.
아, 그냥. 아는 사람이 성공했다고. 서연이 짧게 대답했다.
그게 다야. 준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응. 서연이 웃었다.
준호는 신호에 걸려 차를 세웠다.
빨간불이 유리창에 번졌다.
정말 그게 다야. 준호가 재차 물었다.
서연이 이번엔 대답하지 않고 창밖만 봤다.
조건이 까다롭다는 말은 없었어. 실은 강태식이 조건에 대해 더 자세히 말했었다. 서연은 그걸 굳이 옮기지 않았다.
왜 굳이 감췄을까. 서연 자신도 정확히 몰랐다. 그냥 준호가 반대할 것 같았다.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차가 다시 출발했다.
준호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운전만 했다.
그날 밤. 서연은 계약서를 펼쳐놓고 몇 번이나 읽었다.
문장은 몇 개 되지 않았는데도 자꾸 처음으로 돌아갔다.
전용 시설.
관리.
인도.
단어 하나하나가 뭔가를 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준호는 옆에서 노트북으로 청연도를 검색했다.
검색 결과 없음.
검색 결과 없음.
검색 결과 없음.
이상하네. 준호가 중얼거렸다.
뭐가. 서연이 고개를 들었다.
섬 이름을 검색해도 아무것도 안 나와. 준호가 화면을 서연에게 보여줬다.
지도에도 없어. 뉴스에도 없고.
비밀 프로그램이라 그런 거 아니야. 서연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비밀. 준호가 그 말을 곱씹었다.
비밀이라는 말이 좋은 뜻으로 쓰인 적은 별로 없었다.
준호는 검색창에 청연도, 위탁잉태, 후기 같은 단어를 이것저것 붙여봤다.
전부 똑같았다.
검색 결과 없음.
인터넷에 없는 섬이 어떻게 존재하지. 준호가 노트북을 덮었다.
서연아. 준호가 서연의 손을 잡았다.
진짜 하고 싶어? 준호가 물었다.
서연은 준호의 눈을 정면으로 봤다.
응. 셋째, 갖고 싶어. 서연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준호는 그 눈빛을 이길 수가 없었다.
첫째와 둘째를 낳을 때도 저 눈빛이었다.
그때도 준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었다.
좋아. 하자. 준호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이 준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서명은 다음 날 오전에 이루어졌다.
사각.
펜이 종이에 닿는 소리.
준호는 서명란 앞에서 잠깐 멈췄다.
펜 끝이 종이 위에서 살짝 떨렸다.
강태식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강태식이 말했다.
급할 거 없으니까요.
준호는 그 말에 오히려 마음이 급해졌다.
사각.
준호의 서명이 끝났다.
이제 3일 후 이송 차량이 픽업하러 옵니다. 강태식이 서류를 정리했다.
3일. 짧네요. 준호가 말했다.
빠를수록 좋죠. 강태식이 웃었다.
준비물 같은 건 없습니까. 서연이 물었다.
전부 시설에 구비돼 있어요. 몸만 오시면 됩니다. 강태식이 서류철을 서랍에 넣었다.
몸만 오면 된다는 말이 준호의 귀에 이상하게 걸렸다.
몸만.
그 웃음이 자꾸 눈에 밟혔다.
준호는 서류에 서명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뭔가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은 느낌이었다.
진료실을 나서면서 준호는 뒤를 한 번 돌아봤다.
강태식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서류철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웃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