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나는 옥상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고리가 차가웠다.
손끝이 그 차가움에 먼저 반응했다.
그날, 우연히 지나가던 길이 아니었다.
누가 물어본다면 그렇게 대답할 생각이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한도현.
나는 그 이름을 7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7년.
누군가에게는 짧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일 수도 있는 시간.
동네 공원 벤치에서 새끼손가락을 거는 걸 본 것도 나였다.
그때, 도현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소민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도현이 웃었던 것만 기억난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 나 이거 진짜 지킬 거야.
그때 도현이 그렇게 말했었나.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 표정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간절한 얼굴.
그때부터 나는 저 아이를 지켜봤다.
아무도 몰랐던 일이다.
소민도 몰랐고, 도현도 몰랐다.
나만 알고 있는 일.
그게 편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오늘, 정원에서 벌어진 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사이로 소민이 현우를 향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소민이 현우 품에 안기는 순간, 도현의 얼굴이 무너지는 걸 봤다.
정확히 말하면, 무너진 게 아니라 사라졌다.
표정이라는 게 통째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알았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도현이 몸을 돌렸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옥상으로.
나는 뒤따라갔다.
숨이 턱까지 찼다.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올랐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있었다.
늦으면 안 돼.
그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발이 미끄러졌다.
난간을 붙잡고 다시 뛰었다.
문을 열었을 때, 도현은 이미 난간 밖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쿵.
심장이 그 순간 멎는 줄 알았다.
"잡아!"
내가 외쳤다.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너무 크고, 너무 날카로웠다.
손을 뻗었다.
손끝이 도현의 손목에 닿았다.
닿았다.
그 순간 모든 게 느리게 흘렀다.
바람 소리, 도현의 옷깃이 펄럭이는 소리, 내 숨소리.
전부 따로따로 들렸다.
세게 잡아당겼다.
몸무게가 실려서 나도 같이 넘어질 뻔했다.
바닥에 등을 찧었다.
퍽.
숨이 턱 막혔다.
등이 저릿했다.
도현이 내 위로 쓰러졌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심장이 쿵쿵, 미친 듯이 뛰었다.
내 것인지, 도현 것인지 구분이 안 됐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숨소리만 계속 겹쳤다.
"괜찮아?"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도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눈물만 흘렸다.
소리도 안 내고, 그냥 눈물만.
눈물이 뚝, 뚝, 내 얼굴 위로 떨어졌다.
따뜻했다.
사람 몸에서 나온 거라는 게 이상하게 실감났다.
나는 그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가까이에서 본 도현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속눈썹이 젖어서 뭉쳐 있었다.
그게 접힐 때마다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드디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7년을 지켜만 보다가, 처음으로 닿았다.
이 손, 이 무게, 이 온도.
전부 처음이었다.
***
한참 뒤에야 도현이 몸을 일으켰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등이 아직도 얼얼했다.
옥상 문이 벌컥 열렸다.
선생님이었다.
누가 신고한 모양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선생님이 도현을 붙잡으려 했다.
도현은 그 손을 피하듯 몸을 움츠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교무실로 데려가겠다는 선생님을 내가 막았다.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얘 지금 사람들 앞에 서면 안 돼요."
선생님은 잠깐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워낙 모범생으로 알려져 있어서 다행이었다.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이 이럴 때 쓸모가 있었다.
"그럼 부탁한다. 상담실로 데려가."
"네."
거짓말이 이렇게 쉽게 나올 줄 몰랐다.
상담실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으니까.
선생님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걸 보고서야 숨을 뱉었다.
도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옷자락을 살짝 붙잡고 있었다.
그 손에 힘이 거의 없었다.
복도를 지나갈 때, 지나가던 애 하나가 나를 알아봤다.
"야, 너 소민이 친구 아니야?"
그 말에 도현의 몸이 움찔했다.
느껴졌다.
붙잡고 있던 손끝이 떨렸다.
"어, 맞아. 왜?"
내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목소리를 최대한 태연하게 냈다.
그 애는 별 뜻 없이 지나갔다.
그냥 아는 얼굴이라 인사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도현의 걸음이 그 순간부터 느려졌다는 걸.
맞다.
나는 윤소민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 같은 학원, 같은 동네.
소민의 모든 일과를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 사실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은 몰랐다.
동시에, 이렇게 위험할 줄도 몰랐다.
도현은 내가 소민의 친구라는 걸 아직 모른다.
알면, 이 손을 놓으려 할지도 모른다.
내가 지켜본 7년 동안, 도현은 딱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라는 걸 알게 되면.
거리를 둘 게 뻔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빈 교실 문을 열고 도현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문을 닫았다.
딸깍.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도현이 창가에 서서 밖을 봤다.
정원이 보이는 창이었다.
아직도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저기 안 봐도 돼."
내가 말했다.
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눈이 아직 붉었다.
"…왜 잡았어."
도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뭐?"
"왜 잡았냐고. 그냥 내버려두지."
가슴이 철렁했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랐다.
이게 맞나.
아니야.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내버려두면, 내가 후회할 것 같아서."
도현이 나를 빤히 봤다.
그 시선이 낯설었다.
누가 자신을 이렇게 붙잡아준 적이 있었나,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도현의 손을 꽉 쥐었다.
그 손은 차가웠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데워주지 않은 손 같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데울 거다.
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
이 손, 이 눈물, 이 무너진 얼굴.
전부 나만 알면 된다.
7년을 기다렸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꽃잎 몇 개가 창틀에 부딪혀 흩어졌다.
도현이 그 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빈 교실인 줄 알았던 이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