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강서윤 시점]
알람이 세 번째로 울렸을 때야 나는 겨우 눈을 떴다.
머릿속이 뭉개진 진흙처럼 무거웠다. 어젯밤에도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감았던 탓이었다. 뭘 했다고 그렇게 늦게 잤는지는 나조차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핸드폰을 붙잡고 의미 없이 화면을 넘기다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든 것 같았다.
창밖은 이미 완전히 밝았고, 시계는 7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교시 시작까지 20분. 집에서 학교까지 25분. 나는 이 숫자들을 계산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지각이었다. 이건 매일 반복되는 일이었고, 나는 이미 이 굴욕적인 루틴에 완벽히 적응해 있었다.
옷장 문을 열고 아무 옷이나 집었다. 어제 벗어둔 교복 셔츠에는 다행히 얼룩이 없었다. 그거면 됐다. 오늘 같은 날에는 완벽함을 바라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강서윤! 밥은 먹고 가야지!"
엄마의 목소리가 계단 아래에서 울렸다. 나는 대답 대신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현관으로 뛰었다. 신발을 신다가 균형을 잃고 벽에 손을 짚었을 때, 손바닥에 닿은 벽지의 차가운 감촉이 정신을 조금 깨워주었다. 나는 문득 오늘도 다르지 않은 하루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는,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1교시는 이미 15분이 지나 있었다. 복도를 뛰어가는 내내, 실내화 밑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교실 문을 열자 담임 선생님의 시선이 곧장 나를 찔렀다.
"또 늦었네, 강서윤."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향했다. 반 아이들 몇 명이 힐끔거리며 나를 쳐다봤지만, 이내 다시 자기 할 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일에 눈길을 오래 주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강서윤의 지각은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박하나가 작게 웃으며 내 팔을 툭 쳤다.
"너 진짜 타고난 재능이다. 지각 재능."
"칭찬으로 안 들려."
나는 가방을 의자 옆에 내려놓으며 숨을 골랐다. 심장이 아직도 쿵쿵 뛰고 있었다. 뛰어온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반대편에서 한지아가 턱을 괴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지아는 늘 그렇듯 나른한 얼굴로, 세상 모든 일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무심한 표정이 오늘따라 왜인지 위태롭게 느껴졌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냐, 서윤아? 새로 생긴 카페 가보려고 했는데."
"저녁엔… 안 될 것 같아."
왜인지는 나도 몰랐다. 그저 뭔가 예감이 이상했다. 아침부터 엄마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던 것 같았다. 지나치게 부드러웠다고 해야 할까. 나를 깨우던 그 목소리에 낯선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평소라면 벌써 세 번째 소리는 짜증이 배어 있어야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다정했다. 지나치게, 부자연스럽게 다정했다.
하나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몰라. 그냥, 느낌이 안 좋아."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이상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폭풍이 오기 전, 하늘이 이상하게 조용해지는 순간처럼. 수업 시간 내내 나는 칠판의 글씨보다는 창밖의 구름을 더 오래 바라보았다. 아무 이유 없이 손끝이 차가웠다.
점심시간에는 아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나가 내 앞에서 젓가락을 딱딱거리며 물었다.
"너 진짜 왜 그래. 얼굴이 하얘."
"그냥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봐."
거짓말이었다. 나조차 이유를 모르는 불안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했다.
집에 돌아온 건 오후 6시쯤이었다. 골목을 걸어 올라오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거웠다. 마치 몸이 먼저 뭔가를 알고,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낯선 향이 코를 찔렀다. 평소에는 쓰지 않던 값비싼 향수 냄새였다. 엄마가 이렇게 신경 써서 향수를 뿌린 적은, 아빠 회사 창립기념일 정도의 큰 자리가 아니면 없었다. 그 냄새가 코끝에 닿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뭔가, 정말로 뭔가가 벌어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윤아, 얘기 좀 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 김미영이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서 나는 이미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감지했다. 엄마의 손끝이 무릎 위에서 살짝 떨리고 있었다. 화장은 평소보다 진했고, 옷도 외출용 정장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만나고 온 사람처럼.
"뭔데요."
나는 가방을 소파 옆에 던지고 맞은편에 앉았다. 소파의 차가운 가죽이 허벅지에 닿는 감촉이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치 준비해둔 대본을 읊듯 입을 열었다. 그 조심스러운 시작이, 오히려 더 불길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맞선 자리가 있어."
순간 나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머릿속에서 그 단어가 몇 번이나 반복되고서야 겨우 의미가 조립되었다.
"맞선이요? 제가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졌다.
"그래. 좋은 집안이고, 상대도 반듯한 사람이야. 저녁 7시에 레스토랑 예약해뒀어."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열여덟, 아니, 열여덟 살짜리 고등학생한테 맞선이라니. 이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코미디인가 싶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우리 집 거실에서 엄마 입으로 듣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저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무슨 맞선을 봐요."
"양가 어른들 상견례 자리 같은 거야. 결혼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면 돼. 일단 만나보기만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마의 눈빛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협상의 여지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나는 이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직감했다. 마치 이미 문이 닫혀버린 방 안에서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상대가 누군데요."
엄마는 대답 대신 시선을 피했다.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대답이 준비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도현이라는 청년이야. 아빠 회사와 협력 관계에 있는 집안 자제고, 지금은 아버지 회사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투자사업 실무를 맡고 있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뛰기 시작했다.
이도현.
그 이름이 이렇게 다시 내 삶에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순간 열 살 언저리의 어느 여름날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뜨거운 마당, 낯선 소년의 뒷모습, 그리고 내가 저지른 어떤 잘못된 말들.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던 그 오후. 마당에 서 있던 작은 등, 그 등이 움찔했던 순간까지도, 나는 마치 방금 겪은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이도현이요?"
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엄마는 그제야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어릴 때 알던 그 아이 맞아. 오랜만이지?"
오랜만이라는 말이, 그렇게 잔인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에 봉인해둔 상자를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열어젖히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뛰는 속도가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세상이 잠깐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저 안 갈래요. 절대 안 가요."
"서윤아."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그 낮은 목소리에는 애원과 경고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이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아빠 사업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너도 알잖니. 이 자리, 우리 집안한테 정말 중요해."
"그럼 왜 나예요. 왜 저를 이용하는 건데요."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뱉어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엄마의 얼굴에 잠깐 상처받은 표정이 스쳤다가, 곧 다시 단단하게 굳었다.
"이용이라니. 서윤아, 이건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야. 너도 이 가족의 일원이잖니."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말하려 했지만 목구멍이 사포처럼 껄끄러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남자.
어릴 적 내가 저지른 그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나조차도 잊지 못하는 그 여름날의 기억을, 그가 잊었을 리 없었다. 그 여름, 그 마당, 그 얼굴을.
"토요일 저녁 7시야. 옷은 준비해줄게."
엄마는 더 이상의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소파에 그대로 앉아, 창밖으로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실은 조용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나를 짓눌렀다.
이도현.
그 이름을 입 속으로 다시 되어보았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면 이 상황이 조금이나마 덜 무섭게 느껴질 것처럼. 몇 번이고 되뇌어봤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낯설고 동시에 지독하게 익숙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나는 그날 밤,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이불을 덮고 누워서도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열 살의 여름, 마당에 서 있던 낯선 소년의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그때 그가 지었던 그 표정.
상처받은, 그러나 애써 태연한 척하던 그 얼굴.
그리고 나는,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냄새, 그날 마당에 깔려 있던 자갈의 색깔까지도.
"거지 같은 게 왜 우리 집에 와 있어."
열 살짜리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사과하지 못했다. 그가 그 후 어디로 갔는지도, 어떻게 자랐는지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기를, 조용히 바라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흐릿해지길 바랐던 기억이, 이제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맞선이라는, 가장 잔인한 형태로.
토요일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나흘.
나는 그 나흘이 마치 폭풍 전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매 순간, 시계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 여름날의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지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나흘 뒤 내가 마주하게 될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도무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