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강여옥의 눈이 정확히 내 쪽을 향했을 때,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숨을 죽였다. 정원수 그늘에 몸을 반쯤 숨긴 채로, 발끝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저 여자가 나를 봤을까. 아니, 봤다면 이미 뭐라고 말을 걸었겠지. 아니 어쩌면 못 본 척하는 게 더 무서운 건가. 머릿속으로 온갖 가능성이 스치는 동안에도 강여옥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나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시선을 거두고, 남자에게 뭔가 짧게 말한 뒤 자리를 떴다. 남자도 곧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것처럼.
발걸음 소리도 없었다. 옷깃 스치는 소리도 없었다. 그냥 있다가, 없어졌다. 이 저택 사람들은 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걸까. 아니면 저 두 사람만 유독 그런 걸까.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방금 본 게 뭔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강여옥이라는 이름, 그리고 낯선 남자의 얼굴, 그 사이를 오간 짧은 문장 하나. '도현이라는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나는 정말로 몰랐다.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다.
그늘에서 나오자 정원의 햇살이 눈을 찔렀다.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나서야 겨우 걸음을 뗄 수 있었다.
·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선우태준이 나를 불렀다. 아버지의 형이라는 사람. 첫 대면 이후로 몇 번 마주쳤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식탁 위에는 손도 대지 않은 요리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그는 그 사이로 나를 향해 손짓했다.
"도현이라 했나."
"네, 큰아버님."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애썼다. 이 집안에서는 목소리 떨림 하나로도 약점을 잡힐 수 있다는 걸, 며칠 만에 배웠다.
그는 나를 한참 응시했다. 평가하는 눈빛이었다.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사람처럼,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몹시 불편했다.
"요즘 저택 안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다고 들었다."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이 저택은 비밀이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벽에도 귀가 달렸고, 그림자에도 눈이 달린 곳. 여기선 숨을 크게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어젯밤 정원에서 낯선 사람을 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낮에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걸 말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강여옥과 그 남자의 대화를 그대로 전했다. 정확한 단어까지 기억나는 대로. 목소리를 낮추고, 주변을 한 번 살피면서. 선우태준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처음에는 무심하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확실히 그 대화를 들었느냐."
"네. '도현이라는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선우태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 뭔가 무거운 걸 삼키는 듯한 얼굴이었다. 손가락으로 식탁 끝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네가 본 것, 그리고 판단한 것이 맞을 가능성이 크다."
"큰아버님도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강여옥은 오래전부터 강철이를 원망했다. 그 원망이 어디서 뻗어나갔는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는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방 전체를 무겁게 눌렀다.
"이 저택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으로서 말해두겠다. 네가 방금 보인 관찰력과 판단력, 그건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네 아버지도 그런 눈을 가졌었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어쩐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를 버린 사람과 닮았다는 말이, 반가운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인데, 눈빛이 닮았다는 말 한마디에 왜 이렇게 마음이 뒤틀리는 걸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식적인 대답이었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숨기고 있는 걸까. 큰아버지라는 사람도, 결국 이 저택의 일부일 뿐이었다.
"아직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켜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짧은 인정이었지만, 저택에 온 지 며칠도 안 돼 처음으로 받은 신뢰였다. 그 말이 고마운 건지, 아니면 그저 또 다른 감시의 시작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겠어. 여기서는 뭐든 일단 받아들이는 수밖에.
식사가 끝날 때까지, 선우태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접시 위에 늘어놓은 채, 우리는 그렇게 마주 앉아 있었다.
·
그날 밤, 방으로 돌아온 나에게 진서가 조용히 다가왔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걸음걸이였다. 이 저택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걷는 법을 훈련받는 걸까.
"도련님, 낮에 정원에서 보신 것, 다른 메이드들에게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목소리가 낮았다. 문 쪽을 한 번 흘긋 보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왜요."
나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췄다. 이 저택에서는 목소리 크기까지도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조금 우습기도 했다.
"강여옥 님의 뒤를 캐다가 이 저택에서 조용히 사라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녀였습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몇 도는 낮아진 느낌이었다.
"사라졌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걸, 그녀의 눈빛에서 이미 읽었으니까.
진서가 나가고 나서도, 나는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등불 하나만 켜진 방 안이 유난히 넓게 느껴졌다.
나는 창밖을 봤다. 담벼락 너머 어딘가에 시경이라는 남자가 있고, 저택 안쪽 어딘가에는 강여옥이 있고, 그 사이에 나를 지켜보는 눈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기분이었다. 밤바람이 창틀을 흔들 때마다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 저택에 들어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많은 그림자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애써 눈을 감았다. 오늘 밤만이라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그렇게 바라면서.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소율이 사라졌다.
방문은 안에서 잠긴 채였고, 창문은 열려 있었다. 이불은 흐트러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그녀의 신발 한 짝만 창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보고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발밑이 갑자기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제 진서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됐다. 조용히 사라진 사람이 있었다는 그 말. 그게 지금, 눈앞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