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 저택, 제가 지키겠습니다

3화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소율의 손이 떨리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녀는 저택 안에서 가장 어리고, 가장 잘 웃는 메이드였다. 밥을 먹다가도 별거 아닌 걸로 까르르 웃고, 복도를 지나가다가도 나만 보면 꽃 같은 얼굴로 인사하던 애였다. 그런 애가 그렇게 굳은 얼굴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천장을 노려보다가,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 앉았다. 창밖은 캄캄했다. 담벼락 쪽으로 시선이 자꾸 갔다. 어제 그 그림자, 분명히 사람 형태였는데 사람 같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기분 탓이었으면 좋겠는데. 기분 탓이 아닐 것 같아서 더 잠이 안 왔다. 결국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눈을 감았다. 자는 건지 마는 건지도 모를 잠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진서를 불렀다. 다른 메이드들보다 이 저택 사정을 오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진서였다. 나이도 있고, 말투도 신중하고, 무엇보다 이 집안의 어두운 구석을 제일 많이 알고 있을 사람. "소율한테 무슨 일 있어요." 진서는 잠깐 침묵했다. 대답하기 전의 그 몇 초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도 봤다. 저 사람, 뭔가 알고 있으면서 말을 고르고 있구나. "소율은 드래곤메이드 중에서 가장 어립니다. 힘도 가장 약하고요. 그래서……" "그래서요." 내가 다그치자 진서의 어깨가 살짝 굳었다. "저택 밖 세력이, 새 영주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장 약한 메이드를 먼저 건드립니다.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전 영주 때도요?" "예. 선우강철 님 때도, 새 대에 접어들 때마다 그런 시도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시간당 쪽 사람이었습니다." 시간당.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뭔가 거대한 조직의 냄새가 났다. "거기가 뭡니까." "시계점입니다. 표면적으로는요. 운영자는 시경이라는 자인데, 선우강철 님과 오래된 원한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원한. 아버지가 남긴 흔적이 여기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대체 아버지는 살아 있을 때 몇 개의 원한을 뿌리고 다닌 걸까. 죽어서도 그 뒤치닥거리를 아들이 하게 될 줄은 몰랐겠지. 아니, 알고서도 그냥 뒀을 수도 있고. "그 원한이 정확히 뭡니까. 언제부터 시작된 겁니까." "자세한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시경이라는 자가 젊었을 때 선우강철 님과 거래를 했다가 크게 손해를 봤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 뒤로 대를 거를 때마다 이 저택을 흔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저한테 이 얘기를 안 해줬네요." "규율에 따르면, 저희는 도련님의 명령 없이는 저택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도련님도 위험한 일에 직접 나서시면 안 됩니다." "누가 정한 규율입니까." "전대 영주들이 정한 것입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정말 이 집안은, 사람 하나 안전하게 지키는 것도 규율로 막아놨구나. 위험을 막겠다는 규율이 오히려 위험을 방치하고 있었다. 뭔가 앞뒤가 바뀐 것 같은데, 이 집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규율, 오늘부터 제가 깰 겁니다." 진서의 눈이 커졌다. "도련님." "소율이 위험하다면, 제가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그게 규율에 어긋나면, 어긋나는 거고요." "위험합니다. 도련님이 다치시면……" "제가 다치는 거랑, 소율이 다치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진서가 입을 다물었다. 대답할 말을 못 찾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 사람도 나름의 방식으로 저택 사람들을 지키려고 규율을 지켜온 거겠지. 하지만 그 방식이 지금은 소율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으니, 나는 다른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 그날 오후, 나는 소율을 데리고 정원으로 나갔다. 담벼락 근처, 어제 그림자가 서 있던 자리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소율은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따라나섰다가, 담벼락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느려졌다. "도련님, 이런 데 오시면 안 돼요." 소율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그 다급함이 오히려 확신을 줬다. 뭔가 있다는 확신. "왜 안 되는데요." "그냥…… 그냥 안 좋은 기분이 들어서요." 기분 탓이라고 하기엔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다. 눈동자가 자꾸 담벼락 위쪽을 향했다가 황급히 시선을 거두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담벼락 아래 흙바닥에는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저택 안 사람들의 것과는 다른, 낯선 신발 자국. 크기도 다르고 깊이도 달랐다. 뭔가 무거운 것을 신고 서 있었던 것처럼, 흙이 눌려 있었다. "소율, 솔직하게 말해줘요. 저 사람 본 적 있어요." 소율은 한참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부터…… 밤에 저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어요. 처음엔 그냥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 사람, 저랑 눈이 마주쳐도 도망도 안 가요. 그냥 서 있어요. 그게 더 무서웠어요." "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홍련 언니한테 말하면, 저를 방 안에만 갇혀 있게 할 거예요. 저는 그게 더 무서워요." 갇혀 있는 것보다 감시당하는 게 낫다는 논리. 이상했지만, 이해가 갔다. 자유를 뺏기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니까. 나도 어릴 때 비슷한 걸 겪어봐서 안다. 갇히는 순간, 세상이 딱 방 크기로 줄어드는 느낌. "밤마다 몇 시쯤에 나타났어요." "자정 넘어서요.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나타나 있어요." "소리는 안 나요." "안 나요. 그냥 있어요. 있다가, 없어져요."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발소리도 없이.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그럼 제가 약속할게요. 갇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위험한 상황도 아니게 만들어 줄게요." 소율의 눈이 흔들렸다. "그럼, 지금 저 담 너머로 가보시겠다는 거예요?" "아니요, 지금은 아니고요." 대답과 동시에 담벼락 위로 검은 형체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뭔가 이질적인 실루엣이었다. 옷자락도 없이 그냥 검은 윤곽 하나가 담벼락 위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숨이 턱 막혔다. 소율이 내 팔을 붙잡았다. 손끝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도련님, 도망쳐야 해요!" 하지만 나는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실루엣의 눈이,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마주쳤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올라왔다. 저건 그냥 지켜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뭔가를 확인하는, 재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 저택의 새 주인이 누구인지, 값어치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는 눈빛. 담벼락 위의 형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더, 나를 오래도록 내려다보다가— 바람이 한 번 불었을 뿐인데, 그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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