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 저택, 제가 지키겠습니다

1화

아버지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편의점 삼각김밥을 씹고 있었다. 참치마요였다.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걸 골라서 반값에 산 거였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는 동안에도, 나는 밥알이 목에 걸리지 않게 신경 써서 삼켰다. 이상하지,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거 다 먹고 가도 되나'였다니. 선우강철. 낳아준 사람이지만 얼굴도 가물가물한 이름. 어머니가 죽은 뒤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이상하게도 슬픔보다 허탈함을 먼저 데려왔다. 슬퍼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뭘 슬퍼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게 더 슬펐다. 장례식장에 서 있는 나를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상주석에 앉아 있는데도 조문객 절반은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 하나는 나를 흘끗 보고는 옆 사람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 누구야, 하는 표정이 그대로 읽혔다. 아버지의 아들, 이라고 말하면 다들 그제야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아들이 있었어? 라는 표정으로. 그 표정을 열 번쯤 마주하고 나니, 나는 아예 자기소개를 하지 않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장례가 끝난 다음 날, 변호사가 나를 불렀다. 사무실은 좁았고 서류는 산더미였다. 변호사는 안경 너머로 나를 한 번 훑어보고는, 뭔가 판단이 끝난 사람처럼 서류를 넘겼다. "선우강철 님의 유언에 따라, 선우도현 씨가 선우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로 지정되었습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정당한 후계자라니. 스무 살도 안 된 나를 열아홉 평생 방치했던 사람의 유언장에 그런 말이 적혀 있다는 게,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당함이라는 단어를 그 사람이 쓸 자격이 있나.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거절할 수 있습니까." 변호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목소리에 변화는 없었다. 이미 여러 번 해본 대답 같았다. "거절하시면, 가문의 재산은 물론 선우강철 님이 남기신 모든 기록이 소각될 겁니다. 유언장에 그렇게 명시돼 있습니다." 기록. 그 단어가 걸렸다. 아버지가 왜 나를 버렸는지, 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는지, 그 답이 어딘가에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산 같은 건 상상도 안 됐다. 그런 걸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이나 재산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이유를 알아야 했다. 선우 저택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문에서 본관까지 걸어가는 데만 오 분이 걸렸고, 정원의 나무 한 그루가 내가 살던 원룸보다 커 보였다. 정원사도 없어 보이는데 잔디는 자로 잰 듯 가지런했다. 이런 곳에서 자랐으면 인생이 좀 달랐을까, 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가 곧 스스로 지웠다. 부질없는 상상이었다. "도련님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집사로 보이는 노년의 남자가 나를 지하로 안내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서늘해졌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벽에는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었는데, 그 빛이 어딘가 죽어 있는 색깔이었다. 마지막 문을 열자, 커다란 원형 홀이 나타났다. 여섯 개의 석관 같은 것이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관이라기엔 너무 정교했고, 조각상이라기엔 너무 사람 같았다. "저게 뭡니까." 내 물음에 노집사는 짧게 답했다. "드래곤메이드입니다. 선우 가문 대대로 영주를 섬긴 존재들이지요. 새로운 영주가 정해지면 자동으로 각성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관 하나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치고 싶었는데 다리가 붙박이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이상한 박자로 뛰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머리로는 하나도 이해가 안 됐는데, 몸은 벌써 위험을 감지한 것처럼 굳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을 뜬 건 금발의 여자였다. 붉은 눈동자, 흠 잡을 데 없는 자세. 관에서 걸어 나오는 동작조차 훈련받은 군인처럼 절도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홍련입니다. 새 주인님을 뵙습니다." 목소리에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인사가 아니라 판결문 같았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뒤이어 눈을 뜬 건 검붉은 기모노를 입은 여자였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에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관에서 나오며 나른하게 몸을 늘였다. 마치 오래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단희예요. 반가워요, 새 도련님." 웃는 낯이었지만 눈빛은 이미 무언가를 재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웃음 뒤에 뭐가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다음 관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다음은 초록과 노란색이 섞인 짧은 머리의 여자아이였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다. 관에서 튀어나오듯 뛰쳐나와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소율이에요! 오, 진짜 사람이다!" 제일 먼저 웃은 것도 소율이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게 했다. 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사람 같은 반응이었다. 안경을 쓴 갈색 머리의 여자가 조용히 일어나며 말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서은입니다. 도서관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자료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자료. 그 말에 나는 순간 귀가 트였다. 아버지에 대한 기록도 저 도서관 어딘가에 있을까. 분홍빛 머리의 여자에게서는 등 뒤로 접힌 날개가 보였다. 유일하게 날개가 달린 존재였다. 걸을 때마다 날개 끝이 살짝 흔들렸다. "소하예요. 도련님 몸이 안 좋으시면 언제든 오세요." 마지막으로, 바지와 블레이저를 입은 여자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다가왔다. 다른 이들이 관에서 나오는 동작에 각각의 개성이 묻어 있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처음부터 흐트러짐 없이 걸었다. "진서입니다. 도련님의 개인 시종으로 배정되었습니다." 다섯, 아니 여섯. 홍련까지 여섯 명의 여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아름다웠고, 다들 하나같이 나를 '주인'이라 불렀다. 스무 살 근처 남자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편의점 삼각김밥을 반값에 사 먹던 인간이었는데. "저는 이런 걸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는데요." 내 말에 홍련이 처음으로 표정을 바꿨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는 정도였지만, 나는 그게 불쾌함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준비 여부는 상관없습니다. 저희는 이미 도련님께 종속되었습니다. 그것이 규율입니다." 규율. 그 말이 유독 차갑게 들렸다. 종속이라는 단어도 마음에 걸렸다. 물건처럼 소속이 정해진다는 뜻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규율을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홍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메이드들의 표정이 잠깐 굳는 걸 봤다. 서은이 시선을 피했고, 소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율조차 웃음을 지우고 바닥을 봤다. 그 짧은 정적이, 이 저택의 어떤 진실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뭔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저택에는, 내가 아직 모르는 뭔가가 있다. 아버지가 남긴 건 재산과 기록만이 아니었다. 이 여섯 명의 여자들도,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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