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발끝이 흙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염삼과 염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넌 또 누구야!"
나는 대답 없이 거리를 좁혔다.
발밑에서 마른 풀잎이 바스락거렸다.
숲의 공기는 여전히 서늘했지만, 등줄기에는 이미 땀이 배어 있었다.
손목의 옥패각이 옅게 진동했다.
[천명 시스템] 기해의 기운이 발동합니다.
순간 팔에 낯선 힘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힘은 아직 서툴렀다.
마치 처음 신은 신발처럼 어딘가 어긋난 감각이었다.
(이 힘을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모르는데.)
발끝에 힘을 주자 땅이 살짝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무게감이었다.
염삼이 먼저 달려들었다.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나는 고개를 틀어 피했다.
퍽.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깝다. 너무 가까웠어.)
나는 그 틈을 노려 발을 뻗었다.
하지만 염삼의 몸이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내 발목을 잡아채 그대로 넘겨버렸다.
쿵.
등이 바닥에 부딪히며 숨이 턱 막혔다.
시야가 잠깐 흔들렸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던 햇빛이 눈앞에서 어지럽게 흩어졌다.
(이 정도로는... 안 되는 건가.)
나는 급히 몸을 굴려 일어났다.
무릎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염이가 뒤에서 덤벼들었다.
손끝에서 뭔가 서늘한 기운이 뻗어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퍽.
팔뚝에 둔한 통증이 퍼졌다.
살갗이 뜨겁게 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숨이 가빠졌다.
두 사람은 확실히 나보다 숙련되어 있었다.
기해경 1층인 내 힘으로는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천명 시스템] 대상자의 무예 수준이 당신보다 높습니다.
[천명 시스템] 신중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신중하게 하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다고.)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버텨야 했다.
염삼이 씩 웃으며 다가왔다.
"애송이가 겁도 없이 끼어드네."
그의 손이 내 목을 향해 뻗어왔다.
손끝에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기서 끝인가.)
그 순간, 뒤쪽 나무 사이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휙.
돌 하나가 정확히 염삼의 관자놀이를 스쳤다.
"윽!"
그가 순간 균형을 잃었다.
"지금이에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또렷하고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낮춰 염삼의 다리를 걸었다.
쿵.
그가 바닥에 넘어졌다.
흙먼지가 확 피어올랐다.
염이가 당황한 듯 뒷걸음질했다.
그림자가 다시 움직였다.
작은 체구의 여자였다.
옷자락이 나뭇잎 사이로 스쳐 지나가며 바스락 소리를 냈다.
손에는 얇은 죽간 같은 것을 쥐고 있었는데, 그것을 날카롭게 던져 염이의 손목을 정확히 맞혔다.
"으악!"
염이가 손을 움켜쥐며 뒷걸음쳤다.
염삼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흔들리는 시야 탓인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지금 도망쳐야 해요, 이쪽으로!"
여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루 쪽으로 달려갔다.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끈을 풀었다.
끈을 풀어내자 안에서 의식을 잃은 여인이 드러났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술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살아 있다. 다행이야.)
나는 그녀를 안아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여자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이쪽이에요, 빨리요!"
염삼과 염이의 욕설이 뒤에서 들려왔지만, 몸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 거리가 좁혀지진 않았다.
나는 숲을 가로질러 달렸다.
발밑에서 나뭇잎과 흙이 뒤섞여 미끄러웠다.
품 안의 여인이 옅게 숨을 몰아쉬는 게 느껴졌다.
숲의 나무들이 스쳐 지나갔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멈추면 안 돼. 조금만 더.)
한참을 달린 뒤, 저택의 불빛이 다시 보였다.
멀리서부터 새어 나오는 불빛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늦췄다.
다리가 후들거려 한 걸음마다 힘이 빠졌다.
옆에서 함께 뛰던 여자가 나를 슬쩍 돌아봤다.
작은 체구에 앙증맞은 얼굴, 그러나 눈빛만큼은 또렷했다.
"괜찮으세요?"
"덕분에요..."
나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녀가 웃었다.
웃는 얼굴에 안도한 기색이 스쳤다.
"소이라고 해요. 한가의 시녀예요."
"저는... 이신우라고 합니다."
나는 뒤늦게 이름을 밝혔다.
숨이 아직 다 가라앉지 않아 말이 조금 늦게 나왔다.
소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앞을 살폈다.
혹시라도 뒤쫓는 기척이 있을까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제야 안겨 있는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창백했지만 단정한 얼굴이었다.
숨소리가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가느다란 눈썹, 야무지게 다물린 입술.
낯선 얼굴인데도 어딘가 마음이 쓰였다.
(내가... 누군가를 구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를 구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병원 복도에 앉아 있던 그 밤이 문득 떠올랐다.
아무도 오지 않았던 그 시간.
형광등 불빛이 유난히 하얗고 차가웠던 기억이었다.
(내가 지금, 그 반대의 일을 하고 있는 건가.)
가슴 한쪽이 묘하게 뻐근해졌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나는 품 안의 여인을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
그녀의 속눈썹이 옅게 떨렸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소이가 앞서 걸으며 말했다.
나는 대답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저택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 품 안의 여인이 작게 숨을 내뱉었다.
"…어."
가늘고 낮은 목소리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쿵, 뛰었다.
여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다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소이도 놀란 듯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깨어나나 봐요!"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다보며 숨을 죽였다.
여인의 시선이 흐릿하게 나를 향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그녀가 입술을 움직였다.
"…누구…"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분명한 물음이었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그녀를 마주 본 채, 저택의 불빛 아래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