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복권 당첨자의 이세계 임무

1화

알람이 울렸다. 나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더듬었다. 액정에는 어제 사둔 복권 앱의 알림이 떠 있었다. "1등... 당첨?"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좁은 반지하 방, 곰팡이 자국이 있는 천장, 다 뜯어진 장판. 그런 것들이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방 안 공기는 늘 그렇듯 축축했고, 어디선가 물이 새는 듯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 냄새마저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 (이게 진짜면... 인생이 바뀐다.) 손가락이 떨려서 화면을 세 번이나 잘못 눌렀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손끝에 힘을 주었다.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한 자리도 틀리지 않았다. 여섯 개의 숫자가 정확히 겹쳐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역시 틀리지 않았다. 이불을 걷어차고 밖으로 뛰어나갈 뻔했다. 하지만 곧 냉정을 되찾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스물아홉 평생, 좋은 일이 있으면 늘 뒤에 대가가 따라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혼자 버텨온 시간들이 그랬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축하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집으로 걸어오던 길이 떠올랐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뛰던 시절도, 결국 등록금을 다 채우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던 순간도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늘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한 번 실망하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두 번은 견디기 힘들었으니까. 편의점 야간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지 세 시간도 안 됐다. 몸은 무거웠지만 정신은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밤새 손님을 상대하고, 재고를 정리하고, 새벽 배송 물건을 받던 기억이 아직 몸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발바닥은 아직도 얼얼했다. 그럼에도 잠은 조금도 오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창문을 열었다. 골목 어귀에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불빛이 파르르 떨리는 방식이 조금... 삐걱거리는 듯했다. 마치 오래된 기계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불규칙하게 명멸했다. (그냥 전구가 오래된 거겠지.)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창밖을 조금 더 바라보았다. 골목에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바람이 낮게 불며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흔들었다.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나는 창문을 닫고 다시 복권 앱을 열었다. 당첨금 확인 절차를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졌다. 포털 사이트에 "복권 1등 당첨 절차"를 검색하고, 은행 수령 방법과 세금 공제율을 하나씩 읊어보았다. 숫자를 계산해보니 손이 다시 떨렸다. 평생 만져본 적 없는 액수였다. (이 돈이면... 이 방을 벗어날 수 있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순간, 방 안의 불빛이 갑자기 확 밝아졌다. 번쩍.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빛이 창문 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가렸다. "뭐야, 이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발밑이 사라진 것 같았다. 손을 뻗어 뭐라도 붙잡으려 했지만, 손끝에 닿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방바닥도, 책상도, 벽도 전부 사라진 듯한 감각이었다. 귓속에서 이명이 울렸다. 윙, 하는 낮은 진동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모든 게 새하얗게 지워졌다.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습기였다. 등이 축축한 흙바닥에 닿아 있었다. 코끝으로 풀 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익숙한 반지하의 곰팡이 냄새와는 전혀 다른, 살아 있는 흙의 냄새였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잠시 눈을 감았다. 숨을 몇 번 몰아쉬고 나서야 겨우 통증이 가라앉았다. 주위를 둘러봤다. 울창한 숲, 낮은 능선, 낯선 새소리.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바닥에 얼룩덜룩한 무늬를 그렸다. 반지하 방도 아니고, 서울의 골목도 아니었다. (꿈인가... 아니, 이건 너무 생생해.) 손끝으로 흙을 만져봤다. 차갑고 축축한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손톱 사이로 흙이 파고드는 느낌까지 선명했다. 이런 감각을 꿈에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몸을 조금 더 일으켜 앉았다. 옷차림은 그대로였다. 잠들기 전 입고 있던 낡은 티셔츠와 반바지 그대로였다. 주머니를 뒤졌지만 휴대폰은 없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더 큰 불안을 불러왔다. 그때 눈앞에 반투명한 창 하나가 떠올랐다. 마치 유리판에 글씨를 새긴 것 같은 형태였다. 빛이 파란색과 흰색 사이를 오가며 은은하게 흔들렸다. [천명 시스템] 각성자 이신우 님을 확인했습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이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천명 시스템] 놀라셨겠지만, 지금부터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천명 시스템] 당신은 청명대륙으로 전생하였습니다. 청명대륙. 그 단어가 머릿속에 낯설게 울렸다. 전생, 대륙, 각성자. 이런 단어들이 게임이나 소설 속에서만 보던 표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전생이라니. 이건 그냥 사고가 아니었어.) 혹시 이게 죽음의 다른 형태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숨은 여전히 뛰고 있었고, 심장 박동도 또렷했다. 죽은 사람의 몸이 이렇게 느껴질 리 없었다. [천명 시스템] 당신에게는 기해가 열렸습니다. [천명 시스템] 옥패각과 임무창을 확인해 주십시오. 말이 끝나자 손목 안쪽에 옥빛 문양 하나가 떠올랐다. 문양은 얕게 새겨진 듯 은은한 빛을 내며 피부 속에서 맥동하듯 깜빡였다. 만져보니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낯선 온도로, 내 몸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새로운 창이 펼쳐졌다. [임무] 24시간 내 한서아를 구출하라. [실패 시] 평생 미혼의 저주가 내려집니다. 나는 그 문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이게 무슨..." 한서아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그리고 실패했을 때 내려진다는 저주.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눈앞의 창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선명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의 뭔가가 삐걱거리듯 낮게 진동했다. 마치 몸속 깊은 곳에서 작은 파문이 번지는 느낌이었다. 가슴 한가운데서 시작된 그 파문은 손끝과 발끝까지 서서히 퍼져나갔다. 낯설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감각이었다. [천명 시스템]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천명 시스템] 남은 시간, 23시간 58분.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나무들 사이로 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숲 저편에서 낮게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렸다. 평화롭게 들려야 할 그 소리가, 어쩐지 낯설게 귓가에 감겼다. 바람도 없는데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감각이 훑고 지나갔다. 무언가가, 숲 깊은 곳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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