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붉은 점들이 늘어나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하나, 둘, 셋… 셀 틈도 없이 창고 바닥 전체가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가 뒤집혀 바닥에 쏟아진 것처럼, 점들은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이거, 함정이야.'
뒤늦은 자각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챈 게 다행이라 여겼다.
나는 곧바로 몸을 띄우려 했다.
그러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무언가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강철 케이블이 뱀처럼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차갑고 미끈한 감촉이 피부에 닿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한이 훑고 지나갔다.
"놔!"
힘껏 잡아당기자 케이블이 팽팽하게 당겨질 뿐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길수록 더 세게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발목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별빛의 힘이 통하지 않아.'
손끝에 빛을 모아 케이블을 태워보려 했지만, 표면이 이상하게 그 빛을 흡수해버렸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내가 쏘아낸 힘이 케이블 속으로 사라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시도해봐도 결과는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이런 재질은 처음 봐.'
지금까지 상대했던 어떤 적도 이런 식으로 내 힘을 무력화시킨 적은 없었다.
노강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케이블, 특수 합금이야. 네 힘을 흡수하도록 설계했지."
느긋한 어조였다.
마치 손님에게 신제품을 설명하는 사업가처럼.
"비싸게 만들었으니 도망갈 생각은 접어."
목소리에는 조바심이나 긴장이라곤 조금도 묻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여유마저 느껴졌다.
'미친놈.'
속으로 욕을 삼켰지만, 그 욕조차 지금 상황을 바꿔주진 못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
관절이 뒤틀리는 통증을 참아가며 발목을 억지로 꺾었다.
간신히 한쪽 발을 빼냈지만, 곧바로 다른 케이블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철컥, 하는 기계음과 함께 새로운 케이블이 바닥을 뚫고 솟아올랐다.
창고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그물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하나를 피하면 또 하나가.'
허탈함이 밀려왔다.
이건 함정이 아니라 애초에 하나의 거대한 짐승이었다.
그 짐승이 나를 씹어삼키기 전에 조금씩 맛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방향을 바꿔 창고 구석으로 몸을 던졌다.
퍼억!
등이 상자 더미에 부딪히며 통증이 번졌다.
숨이 턱 막히고 시야가 잠시 흐려졌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숨을 몰아쉬며 좁은 틈을 향해 달렸다.
발밑에서 붉은 점들이 계속 깜빡이며 나를 추적하고 있었다.
마치 이 창고 자체가 거대한 눈알이 되어 내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달릴수록 함정이 하나씩 더 반응했다.
천장에서 그물이 떨어지고, 벽에서 스파이크가 튀어나왔다.
간발의 차로 몸을 굴려 피했지만, 팔뚝에 얇은 상처가 그어졌다.
따끔거리는 통증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가 흘러 소매를 적셨지만, 지금은 상처를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제발, 제발 출구 하나만.'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추면 그대로 끝일 것 같았다.
발밑에서 또 다른 케이블이 튀어나오려는 조짐이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쿵! 어깨가 벽에 부딪히며 둔한 통증이 퍼졌다.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뛰었다.
창고 안의 조명이 붉은빛으로 물들며 마치 경보를 울리듯 점멸했다.
그 빛이 눈에 아른거려 방향감각조차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창고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알았다.
애초에 출구는 하나뿐이었고, 그 하나마저 이미 봉쇄되어 있었다.
녹슨 셔터 대신 두꺼운 철판이 새로 덧대어져 있는 걸 보고서야 확신이 들었다.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구조였다.
마치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나는 노강호가 설계한 수조 안에서 헤엄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도망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주지 않았던 거야.'
그 사실을 깨닫자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숨이 가빠졌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갈비뼈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전에, 몸이 먼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침착해.'
스스로에게 되풀이했지만, 심장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요동쳤다.
목이 타는 듯 마르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죽는 건가.'
그 생각이 스치자, 등에 닿은 벽의 냉기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슬슬 지쳤나?"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번엔 스피커가 아니었다.
진짜였다.
그 목소리에는 스피커를 거쳐 나올 때와는 다른, 미묘한 질감의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창고 중앙, 어둠이 가장 깊은 자리에서 실루엣 하나가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지나칠 정도로 여유로웠다.
마치 자신이 만든 무대 위를 걷는 배우처럼, 조명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도 그는 스스로가 주인공임을 확신하는 듯했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 정갈하게 넘긴 머리, 값비싼 슈트 위로 걸친 검은 코트.
걸음마다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그 소리가 정적을 가르는 유일한 리듬이었다.
탁, 탁, 탁—
소리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내 심장도 그 박자에 맞춰 뛰는 것 같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쳤지만, 등 뒤는 이미 벽이었다.
'막혔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차가운 벽의 감촉이 등을 타고 스며들었다.
손끝으로 벽을 더듬어봤지만, 그 어디에도 틈은 없었다.
실루엣이 서서히 빛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걸음이 마치 사형 선고를 향해 다가오는 시계추처럼 느껴졌다.
그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는 순간, 나는 그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