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알파 셰프의 계약혼

5화

비명은 정원 경비 하나가 내지른 것이었는데, 검은 옷의 사내들이 담장을 넘어 들어오며 순식간에 정원 전체가 소란에 휩싸였다. 저택은 늘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야말로 이 집안의 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종은 며칠 사이 배운 참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 조용함은 흔적도 없이 깨어져 있었다. 서유라는 짧게 욕설 같은 것을 내뱉으며 경비 호출용 단말을 눌렀고,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빠르고 정확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이종은 창밖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는 걸 느꼈다. 그들이 노리는 게 자신이라는 말을 들은 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안으로." 서유라가 짧게 명령하듯 말했으나, 이종은 오히려 반대로 문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도망칠 곳이 아니라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이 낯선 몸의 알파적 본능인지, 오래된 자신의 습성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이 뒤따라오는 이 감각에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절대 이런 순간에 앞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몸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처럼, 위험 쪽으로 발이 먼저 향하고 있었다. 정원으로 나서자 검은 옷의 사내 셋이 경비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눈빛에는 뚜렷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경비 하나는 이미 팔을 붙잡힌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코피를 흘리며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이 저택의 경비들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이종도 그동안 지켜봐 알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이 이렇게 밀리는 걸 보니 상대의 실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미등록 개체는 우리 연합이 처리한다." 앞장선 자가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했고, 그 말에 이종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처리라는 단어가 자신을 향해 겨눠지고 있다는 사실이, 낯선 세계의 잔혹함을 처음으로 몸으로 실감하게 했다. 손이 떨렸고, 숨이 가빠 왔으며, 다리가 제멋대로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 시야 한켠에 익숙한 창이 떠올랐다. [경고: 위협 감지. 계약 결속체 보호 프로토콜 가동 가능.] 이런 순간에도 이 시스템은 참으로 사무적이구나, 이종은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치 재난 방송처럼 건조한 문구였는데, 그 건조함이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실감 나게 만들었다. 그 문구를 읽는 순간 시스템은 묻지도 않고 스스로 판단을 내린 듯, 이종의 몸 전체에 낯선 열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 잠들어 있던 근육 하나하나가 동시에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사내들이 달려드는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하나를 막아냈는데, 그 힘이 자신의 것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강했다. 사내가 팔을 붙잡힌 채 그대로 뒤로 밀려나 담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그 둔탁한 소리에 이종 자신도 놀라 잠시 멈칫했다. 뒤이어 서유라가 소리쳤다. "물러서세요!"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스템 창이 다시 떠올랐다. [프로토콜 가동. 임시 신체 강화 30초.]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종은 자신이 아니라 이 몸이 원래부터 지녔을 야성이 깨어나는 걸 느꼈다. 눈앞의 사물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고, 사내들의 움직임이 마치 느린 화면처럼 눈에 들어왔다. 이게 알파의 감각이라는 건가. 두 번째 사내가 칼처럼 보이는 것을 휘두르며 다가왔지만, 이종의 몸은 이미 그것을 피해 옆으로 비틀며 상대의 다리를 걷어차고 있었다. 세 번째 사내는 뒤에서 목을 조르려 했는데, 그 순간 이종은 팔꿈치로 상대의 복부를 가격했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뜨렸다. 자신의 몸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익숙한 감각이었다. 사내들이 하나둘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사이, 저택 경비들이 뒤늦게 합류하며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마지막 사내가 담장 너머로 도망치듯 사라지는 걸 지켜보며, 이종은 다리가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30초의 시간이 끝나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고, 대신 참아왔던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방금까지 자신이 사람을 걷어차고 내던졌다는 사실이,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실감이 났다. 손끝이 저려 왔고,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게 정말 내가 한 일인가. 이종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자문했다. 서유라가 다가와 그를 내려다보았는데, 그 눈빛에 처음으로 낯선 감정이 스치는 걸 이종은 놓치지 않았다. 경계도 아니고 안도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표정이었다. "괜찮습니까." 그녀가 물었고, 그 목소리는 여전히 사무적이었으나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종은 대답 대신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 손길이 생각보다 조심스러웠다는 걸, 이종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경비들이 사내들의 흔적을 정리하며 저택 안팎을 살피는 사이, 서유라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오메가로 살아온 20년 동안, 나를 지켜준 계약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말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이종을 향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목소리에는 원망도 없었고 슬픔도 없었는데, 그 텅 빈 어조가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왔다. 그녀는 곧 표정을 다시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이종은 방금 스친 그 문장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지켜준 계약자가 없었다는 것, 그 말 속에 숨은 지난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지만, 그 순간부터 그녀를 향한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서유라는 다시 예의 그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으나 이종은 그녀의 등 뒤로 흐르는 침묵이 방금 전과는 다른 무게를 지녔다는 걸 느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발걸음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저 사람도 방금 전 순간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익숙한 일이라 그냥 넘긴 걸까, 이종은 곁눈질로 그녀의 옆모습을 살피며 그렇게 생각했다. 겉으로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손끝이 옷자락을 살짝 움켜쥐고 있는 것을 이종은 놓치지 않았다. 응접실 문턱에 이르렀을 때, 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며 말했다. "내일부터 당신을 시험하겠습니다. 요리든, 다른 무엇이든." 그 말이 단순한 통보가 아니라는 걸, 이종은 그녀의 눈빛에서 읽어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죽음의 위기를 넘긴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말을 저렇게 태연하게 할 수 있는지, 이종은 잠시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그 웃음은 이내 다른 무게에 눌려 사라졌다. 이 저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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