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알파 셰프의 계약혼

3화

저택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서유라는 창밖만 바라볼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이종은 그 침묵이 오히려 심문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결혼식이 끝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 여자와 마주 앉은 시간이 십 년치 어색함을 쌓아 올린 것 같았고, 창밖으로 스쳐 가는 가로수의 그림자가 마차 바닥에 규칙적으로 드리워질 때마다 이종은 그 그림자의 수를 세는 것으로 애써 정신을 다른 곳에 두었다. 원래 살던 삶에서라면 결혼이니 저택이니 하는 것들은 그와 아무 상관 없는 단어였으나, 낯선 몸으로 눈을 뜬 그날 이후로 그는 이미 이 여자의 남편이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저택은 도심에서 벗어난 언덕 위에 자리했고, 흰 대리석 담장 너머로 정원수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으며, 그 정갈함이 오히려 낯선 위압감을 풍겼다. 나뭇가지 하나 흐트러짐 없이 다듬어진 정원은 사람의 손길이 아니라 어떤 규율의 손길이 지나간 것처럼 보였고, 이종은 문득 이 집안 전체가 그런 방식으로 다듬어져 왔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마차가 멈추자 고용인들이 줄지어 나와 고개를 숙였는데, 그 광경 속에서 유독 한 사람만이 팔짱을 끼고 서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흰 조리복을 입은 중년 남자였다. "이 저택 주방은 20년째 제가 지켜왔습니다."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박기범이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서유라의 부친 대부터 저택을 지켜온 요리사였으며, 새로운 배우자가 주방에 관여할 거라는 소문을 듣고 미리 벼르고 있었던 참이었다. 소문이라는 것이 대개 부풀려지기 마련이지만, 이번만큼은 사실보다 축소되어 있었다는 걸 그는 곧 알게 될 것이었다. "들으셨겠지만, 저는 대표님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새로 오신 분이 굳이 손댈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그의 말에 이종이 대답하기도 전에 서유라가 짧게 끼어들었다. "주방 문제는 나중에 논의하죠." 그 말에 박기범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으나, 그는 이내 이종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요리는 할 줄 아십니까?" 그 질문에 이종은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15년을 주방에서 살았던 그에게 그것은 우습다 못해 서글픈 질문이었으며, 손목에 화상 자국 하나 없이 매끈한 이 낯선 몸을 내려다보면 그 15년이 정말 자신의 것이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도마질 소리로 아침을 열고 기름 튀는 소리로 밤을 닫았던 그 시절, 손끝이 갈라지고 무뎌질 때까지 칼을 쥐었던 기억이 이 몸에는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증명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그는 짧게 답했는데, 그 심드렁한 대답이 오히려 박기범의 자존심을 긁었다. "조금이라뇨. 대표님 저택의 식사는 이 나라 상류층의 기준입니다. 조금 하는 사람이 감당할 자리가 아니죠." 그가 코웃음을 치며 돌아서려 하자, 이종은 문득 자신의 손끝에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눈앞에 작은 창이 떠오르며 [주방 접근 감지. 요리 시스템 일부 개방.] 라는 문구가 스쳤던 것이다. 시스템. 그 단어를 이종은 아직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이따금씩 시야 한쪽에 뜨는 그 창들이 무엇을 근거로 열리고 닫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칼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박기범이 어이없다는 듯 돌아보았고, 서유라 역시 처음으로 이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호기심도 아니고 경계도 아닌, 그저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겠다는 무심함이 담겨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선 이종은 조리대 위에 놓인 낯선 식재료들을 훑어보았는데,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손끝의 시스템 창이 각 재료의 특성을 짧게 알려주고 있었다. [흑연근 - 열을 가하면 향이 짙어짐. 서리버섯 - 저온 조리에 적합.] 처음 보는 재료라는 사실이 오히려 그를 안심시켰다. 낯선 재료는 낯선 방식으로 다루면 그만이었고, 그것은 오히려 익숙한 재료를 서투르게 다루는 것보다 덜 위험한 일이었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칼을 쥐었고, 그 순간 몸이 먼저 기억을 되찾은 것처럼 움직였다. 손목의 각도, 팔꿈치의 높이, 도마를 누르는 왼손의 힘까지,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근육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칼끝이 도마 위에서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박기범은 팔짱을 낀 채 지켜보다가 점차 표정이 굳어갔는데, 그것은 단순한 손놀림이 아니라 오랜 훈련이 몸에 새겨진 자의 리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20년간 이 주방을 지키며 수많은 신입 조리사들을 겪어보았으나, 그들 중 누구도 이런 리듬으로 재료를 다루지는 못했다. 처음 보는 재료를 앞에 두고도 망설임이 없었고, 불의 세기를 가늠하는 눈빛에는 계산이 아니라 확신이 있었다. 그것이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아 내밀자, 서유라는 잠시 그것을 응시하다 한 입 맛을 보았고, 그녀의 눈매가 아주 미세하게 풀리는 걸 이종은 놓치지 않았다. "나쁘지 않네요." 그녀가 짧게 말했을 뿐인데도, 박기범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 짧은 칭찬이 그에게는 20년의 세월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렸던 모양이었다. "이건... 어디서 배운 겁니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이종은 대답 대신 옅게 웃어 보였는데, 그 웃음 뒤에는 이 몸의 정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숨어 있었다.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는다면, 죽기 전 삶에서 배웠다고 답해야 할 것인데 그런 대답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기범은 그 웃음을 오해라도 한 듯 이를 악물며 돌아섰고, 낮게 중얼거렸다. "두고 봅시다." 그 말이 단순한 패배 인정이 아니라는 걸, 이종은 곧 알게 될 것이었다. 주방 밖으로 나서는 그의 뒷모습에는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는 자의 걸음걸이가 배어 있었고, 조리복 자락이 문틀에 걸려 스치는 소리마저 어딘가 날카롭게 들렸다. 서유라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종을 향해 시선을 돌렸는데, 그 눈빛에는 처음으로 어떤 흥미가 스쳐 지나갔다. "요리는 어디서 배웠어요?" 그녀가 묻자, 이종은 같은 질문을 두 번 받은 셈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더 신중하게 답을 골라야 했다. "그냥... 오래 했습니다." 대답은 짧았지만, 그 말 속에 담긴 진심의 무게를 그녀가 알아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눈빛이 조금 더 오래 그에게 머물렀다는 것만은 분명했고, 그것이 앞으로 이 저택에서 벌어질 일들의 서막이라는 걸 이종은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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