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완벽한 공주의 결핍

3화

그날 이후 나는 밤마다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최준혁의 추격이 정말 나를 위한 보호일까.' 왕실이 이미 나를 버렸다고 공표한 이상, 나를 찾는 데 흠결 없는 영웅을 앞세울 이유는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손해가 큰 일이었다. 예정된 신부가 도망친 것도 모자라, 영웅이 직접 그 뒤를 쫓는다는 건 왕실의 위신을 더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차라리 조용히 덮는 게 나았을 텐데.' 배신당한 왕실 입장에서 보자면, 도망친 신부를 잡으러 나서는 것 자체가 스캔들을 키우는 일이었다. 소문은 이미 났을 것이다. 신부가 도망쳤다는 소문보다, 마신 토벌의 영웅이 그 신부를 직접 쫓고 있다는 소문이 더 자극적일 테니까. 그럼에도 최준혁은 나섰다. '명분이 없는 추격.' 답은 하나로 좁혀졌다. 그건 왕실의 명령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의지라는 것.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눈을 질끈 감았다. 보호라는 말로 포장된 독점욕.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가 정말 그런 사람이었나.' 마신 토벌 당시 최준혁은 완벽했다. 도덕적으로도, 실력으로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전장에서 그는 항상 가장 먼저 나섰고, 가장 늦게 물러났다. 부하들은 그를 존경했고, 나 역시 한때는 그런 그를 믿었다. 그런데 완벽하다는 평가가 진짜 그의 전부를 말해주는 건 아닐지도 몰랐다. '완벽한 영웅과 집착하는 남자가 같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근거 없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 상상을 지우려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나는 이 생각을 도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다. 인정하는 순간, 우리가 도망치는 이유가 더 무거워지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신분과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한 남자의 소유욕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건 너무 크고 무서운 이야기였다. '차라리 지금처럼, 그냥 도윤과의 문제로 남기고 싶어.' 도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문제, 밤마다 그의 표정에서 읽히는 미묘한 실망, 그런 작고 다룰 수 있는 문제로 도망치고 싶었다. 큰 위험을 인정하는 것보다, 작은 결핍을 자책하는 게 차라리 편했다. 스스로도 부끄러운 회피였다. '나는 겁쟁이다.'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면서도, 나는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 같은 회피를 반복할 걸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낮, 나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다가 손이 미끄러져 항아리를 놓쳤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퍼졌다.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에 놀란 도윤이 뛰어왔다. 맨발로 뛰어온 그의 발밑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괜찮아?" 그가 물었다. "괜찮아." 나는 즉답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걸 그가 눈치챘는지 알 수 없었다. 도윤은 깨진 항아리 조각들을 눈으로 훑고는, 내 손을 먼저 살폈다. 손등에 물이 튄 자국만 있을 뿐 상처는 없었다. "다행이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이 항아리를 향한 건지, 내 손을 향한 건지 알 수 없어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물이 튀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요즘 좀... 이상해." 도윤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뭐가." "음, 그, 그러니까... 밤에도 그렇고, 낮에도 자꾸 딴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아까도 물 받으면서 완전히 멍하니 있었잖아." 나는 그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했다. '말해야 할까.' 최준혁의 추격이 보호가 아니라 독점욕일지 모른다는 직감을 이 사람에게 말한다면, 이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윤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빛이 흔들리고, 결국 아무 말도 못 한 채 화롯가에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미 최준혁에 대한 알 수 없는 증오를 품고 있는 도윤에게, 그 짐을 더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안고 가는 게 나아.' 그건 스스로에게 하는 위안이자, 동시에 또 다른 회피였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진 항아리 조각을 주우려 손을 뻗었지만, 도윤이 먼저 그것들을 치웠다. "이서린, 손 다칠라." 그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평소보다 조금 더 낮고 조심스러운 어조였다. 도윤은 더 캐묻지 않았다. 늘 그렇듯 물러났다. 대신 조각들을 조용히 모아 마당 구석에 쌓아두고, 새 항아리를 가져다 다시 물을 채워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또다시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를 위해 물러나 주었다. 캐묻지 않고, 몰아붙이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으로.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자꾸 숨기려는 걸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최준혁이라는 존재가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것도 두려웠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도 두려웠다. 인정하면 도망은 더 절박해져야 했고, 절박함은 곧 우리 관계의 위태로움을 뜻했다. 낮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도윤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그는 여느 때처럼 부지런히 움직였다. 장작을 패고, 텃밭에 물을 주고, 저녁거리를 준비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도 뭔가를 삼키고 있다는 걸. 그런데 그날 저녁, 화롯불 앞에서 그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불빛이 그의 얼굴 위로 흔들리며 명암을 그렸다. 도윤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말은 내가 감춘 진실보다 더 무거운 무언가를 은신처 안에 던져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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