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뭔가 달라져 있다는 걸 직감했다.
공기가 달랐다. 평소라면 시끌벅적하게 오가는 아침의 소음, 누가 숙제를 안 해왔다는 원망 섞인 투덜거림, 매점에서 사 온 빵을 나눠 먹는 소리 같은 것들이 그날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대신 낮은 소곤거림이 곳곳에서 들렸다. 몇몇 애들이 나를 힐끗거렸다. 눈이 마주치면 얼른 시선을 피했다.
뭐지.
가방을 어깨에 멘 채로 자리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등 뒤로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시선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았다.
재현이 다가와 낮게 물었다.
"너 강예린한테 뭐 했냐?"
목소리가 이상하게 조심스러웠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소문 났어. 네가 강예린한테 고백했다가 차였다고."
숨이 턱 막혔다.
"뭐? 그거 완전 반댄데."
"그러니까. 근데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아침부터 완전 퍼졌더라. 누가 시작했는지도 몰라."
재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누가 그런 소문을 냈는데? 나는 강예린이랑 말 몇 번 섞은 것도 없어."
"몰라. 근데 소문이란 게 그렇잖아. 시작점은 아무도 몰라. 그냥 퍼지는 거지."
나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의자를 빼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등 뒤로 느껴지는 시선은 여전했다.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낮게, 하지만 분명하게.
고개를 돌려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돌아보면 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강예린은 평소처럼 반에서 웃고 있었다. 친구들에 둘러싸여, 그 어느 날보다 밝은 얼굴로. 손짓을 하며 뭔가 얘기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살짝 웃어 보였다. 다정한 웃음이었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선생님이 들어왔고, 아이들은 각자 자리로 흩어졌다. 그제야 시선이 조금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
그날 이후로 이상한 일들이 하나씩 쌓였다.
내 SNS 팔로워 수가 갑자기 늘었다. 확인해보니 낯선 계정들이었다. 프로필 사진도 없고, 게시물도 없는 텅 빈 계정들. 그런데 내 옛날 사진들에, 몇 년 전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같은 것에까지 좋아요가 눌려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 내 계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진 것 같은 느낌.
체육 시간이 끝난 후, 사물함을 열었더니 옷이 정리되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던 체육복이 각 잡힌 것처럼 접혀 있었다. 분명 그렇게 넣어두지 않았는데. 나는 사물함 문을 몇 번이나 다시 열었다 닫았다. 뭔가 잘못된 게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야, 뭐 하냐?"
옆에서 재현이 물었다.
"아니, 그냥."
나는 말을 삼켰다. 이 이야기를 하면 또 이상한 애 취급을 받을 것 같았다.
집에 가는 길, 뒤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그런 느낌.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골목 끝에 가로등 불빛만 흔들리고 있었다.
착각인가.
착각이겠지.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는지 셀 수도 없었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나는 재현에게 말했다.
"나 요즘 좀 이상해. 누가 계속 따라오는 느낌이야."
재현은 웃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야, 강예린 팬클럽 있는 거 알지? 걔네가 너 노려보는 거 아니냐. 강예린 눈 밖에 났다고."
"그런 게 있어?"
"몰라, 소문으로는. 확실치 않지만 걔 좋아한다고 대놓고 도는 애들 많잖아. 워낙 예쁘고 인기 많으니까."
"근데 왜 나를 노려봐?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소문 때문 아니야? 네가 고백했다 차인 걸로 다들 알잖아. 걔네 입장에서는 네가 강예린한테 감히 들이댔다가 까였다는 게, 뭐 그런 식으로 재밌는 얘깃거리가 됐겠지."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이상했다. 팬클럽이 있다는 것도, 그들이 나를 미워한다는 것도, 다 그럴듯한 설명이었지만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불안은 점점 커졌다.
밤에 잠들기 전에도 그 시선이 자꾸 떠올랐다. 창밖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별일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
어느 날 하굣길, 편의점 앞을 지나는데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처음엔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긴 머리카락, 익숙한 교복 재킷. 그러다 그 사람이 천천히 몸을 돌렸을 때, 나는 걸음을 멈췄다.
강예린이었다.
혼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표정이 이상했다. 웃고 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입꼬리는 위로 올라가 있었지만 그 아래 눈동자는 뭔가를 관찰하는 듯한, 차갑고 집요한 빛을 띠고 있었다.
"서준아."
그녀가 다가왔다. 발소리 없이 걷는 것처럼, 스르륵 거리가 좁혀졌다.
"요즘 잘 지내?"
"...응, 그냥."
목이 마르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소문 때문에 힘들었지? 미안해. 내가 정정하려고 했는데, 애들이 안 믿더라."
목소리는 상냥했다. 그런데 그 상냥함이 마치 계산된 것처럼 매끄러웠다. 대본을 읽는 배우 같았다.
"괜찮아, 그렇게 큰일도 아닌데."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래도 신경 쓰였을 텐데. 나 때문에 이상한 소문에 휘말린 거잖아."
그녀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나는 자연스럽게 반걸음 물러났다.
"우리 얘기 좀 더 할까? 나 사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목소리 끝이 살짝 낮아졌다. 그게 오히려 더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손끝이 저절로 뒤로 물러났다.
"미안, 나 지금 좀 바빠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다.
뒤에서 그녀의 시선이 오래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등 뒤에 눈이 달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골목을 돌아 나올 때까지 그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자꾸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그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뭔가 이상했다.
책상 위 물건들이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필통 위치, 노트 각도. 원래 필통은 책상 오른쪽 구석에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 가운데로 옮겨져 있었다. 노트도 각도가 달랐다. 분명 아침에 나갈 때와 달랐다.
나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옷장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원래 닫아뒀던 것 같은데.
창문은 잠겨 있었다. 확인해봤다. 현관도 잠겨 있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방 안엔, 누군가 있다가 나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누가 들어왔던 걸까.
설마.
나는 그 생각을 애써 지웠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창문도 문도 다 잠겨 있었으니까. 내가 착각한 걸 거야. 아침에 급하게 나가면서 뭔가 흐트러뜨렸을 수도 있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불안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물건들을 하나씩 다시 정리했다. 필통을 원래 자리로, 노트를 원래 각도로. 그렇게 정리하면서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저녁을 먹는 내내 부모님과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 뭔가 말을 꺼내려 해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방문을 잠그고도 한참을 뒤척였다.
이불 속에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천장의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엔 신경 쓰지 않던 벽지의 얼룩까지 눈에 들어왔다.
창밖에서 누군가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커튼 사이로 밖을 내다봤다.
돌아보면, 그저 나무 그림자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가 흔들렸고, 그 그림자가 벽에 어른거렸다. 사람 같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나는 커튼을 다시 닫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강예린의 웃는 얼굴이, 웃지 않는 눈이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방 안에 남아 있던 그 미묘한 흔적들.
누군가 정말 여기 들어왔던 걸까.
그 생각이 자꾸만 되돌아왔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