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지표면의 하늘이 세로로 갈라지던 순간을 이준서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대로 재생할 수 있었다. 40일 전, 그러니까 여름 방학이 시작된 지 사흘째 되던 날 오후,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쫓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도시 전체의 전광판이 일제히 꺼지고, 뒤이어 지평선 너머 하늘이 마치 유리처럼 균열을 일으키며 붉은빛을 토해내던 광경을, 그는 여전히 몸의 어딘가에 각인된 채로 지니고 있었다. 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화면이 새까맣게 꺼져버렸고, 하늘을 올려다본 아이들 몇몇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던 표정을, 이준서는 지금도 또렷이 떠올릴 수 있었다.
통신이 끊기고 도로가 뒤엉키고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며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곳을 향해 달려가던 그 몇 시간 동안, 정작 이준서의 가족을 태운 검은색 SUV는 놀라울 만큼 침착하게 국도를 벗어나 산악도로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 이강호의 표정에는 당혹도 공포도 없이 오직 계산된 무표정만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 사실이 오히려 이준서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타는 자동차 행렬과 도로 위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강호는 단 한 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이미 수십 번 예습이라도 한 사람처럼 갈림길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핸들을 꺾었다.
"아빠, 어디로 가는 거예요." 뒷좌석에서 이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을 때, 이강호는 백미러 너머로 딸을 한 번 응시하고는 짧게 대답했다. "안전한 곳." 그 두 글자가 전부였다. 이준서가 그 말에 뭔가 더 캐물으려 했지만,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 한서연이 뒤를 돌아보며 아무 말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고, 그 침묵 속에서 이준서는 자신이 알던 가족의 질서가 이미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강원도 산악지대 깊숙한 곳,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좁은 임도 끝에 숨겨진 강철 문이었는데, 그 문이 스르르 열리는 순간 이준서는 자신이 지금껏 알던 아버지라는 사람의 껍데기가 통째로 벗겨지는 감각을 느꼈다. 강철 문 표면에 새겨진 낯선 코드 번호와, 문이 열리기 직전 이강호가 손목시계 같은 장치에 대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모습이, 이준서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물음표로 뭉쳐지고 있었다.
지하로 세 개 층을 내려가는 동안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고, 공기청정 시스템이 웅웅거리며 가동되고, 식량 창고에는 최소 삼 년 치는 됨직한 물자가 선반마다 빼곡했으며, 벽면 한쪽에는 이준서로서는 처음 보는 종류의 서버랙과 제어 콘솔이 파란 불빛을 깜빡이고 있어서, 그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마련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하게 했다. 통로를 지나며 이수아가 벽에 붙은 낯선 도면들을 손끝으로 훑다가, "이거 봐, 오빠. 여기 지도, 우리나라 지도가 아닌 것 같아"라고 속삭였을 때, 이준서는 그 도면 위에 표시된 좌표들이 어쩐지 낯익은 도시들과 겹쳐 보인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이걸 언제부터……." 한서연이 남편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을 때, 이강호는 대답 대신 콘솔 앞으로 걸어가 손바닥을 인식판에 갖다 댔고, 화면에는 '이강호 마스터 권한 인증'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가, 곧이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문장이 그 아래 덧붙었다. 예비 관리자 등록 완료 — 이준서.
"뭐예요, 이거." 이준서가 자신의 이름이 뜬 화면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되물었지만, 이강호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등을 돌려 안쪽 통제실로 걸어 들어갈 뿐이었다. 설명은 없었다. 그저 아들의 이름 석 자가, 아버지 자신조차 미리 알리지 않았던 어떤 계획 속에 이미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만이 형광등 불빛 아래 차갑게 남아 있었다. 이준서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화면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지만,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예비 관리자, 이준서. 대체 언제부터, 어떤 근거로,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이 시스템 어딘가에 심어두었단 말인가.
그날 밤, 배정된 침실이 부족해 이준서와 이수아는 한 방을 나눠 써야 했는데, 좁은 이층 침대 아래 칸에 나란히 눕게 된 두 사람 사이로 서늘한 콘크리트 냄새와 함께 낯선 정적이 흘렀다. 천장 어딘가에서 공기순환 장치가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의 유일한 배경음이었고, 그 소리 사이로 이수아가 이불을 끌어당기며 몸을 뒤척이는 기척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수아가 몸을 뒤척이다 오빠의 팔에 어깨가 스쳤을 때, 그녀는 화들짝 몸을 떼며 벽 쪽으로 돌아누웠지만, 등을 돌린 채로도 심장이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뛰는 것을 스스로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빠도, 그것을 느꼈을까. 알 수 없었다. 다만 좁은 어둠 속에서 두 사람 모두 잠들지 못한 채 각자의 숨소리만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준서 역시 눈을 감은 채로 낮에 본 화면 속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었고, 그 글자들이 눈꺼풀 안쪽에 새겨진 것처럼 사라지지 않아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음 날 새벽, 잠을 이루지 못한 이준서가 홀로 통제실로 내려가 어제 본 화면을 다시 열어보았을 때, 복도의 센서등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 차례로 켜지며 어둠을 밀어냈고, 콘솔 앞에 앉아 인식판에 손을 올리자 화면은 별다른 저항 없이 다시 그 익숙한 문구를 띄웠다. 예비 관리자 등록 완료 — 이준서. 그는 자신의 이름 아래 숨겨진 하위 폴더 하나를 발견하고 손끝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폴더명은 단순했다. '준서에게.'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기분으로 그 폴더에 커서를 가져가 클릭하려는 순간, 화면이 붉게 점멸하며 비밀번호를 요구했고,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본 그의 눈앞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중년 여성이 조용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