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접촉공포 소년의 위장연애

4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도윤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화장실 안의 조명은 노랗고 낮았고, 그 불빛 아래서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울을 붙잡고 서 있던 사람처럼 보였다. 서준이었다. 그는 문을 등지고 선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틀에 어깨를 기댄 자세로, 시선만 도윤의 뒷모습에 붙박인 채였다. 도윤은 그 시선을 피하려 다시 거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거울 속에는 낯선 얼굴이 하나 있었다. 조명 때문인지, 아니면 손끝이 아직도 미미하게 떨리고 있어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창백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괜찮아?" 서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조심스러웠다. 술집의 소음이 문 밖에서 뭉텅뭉텅 잘려 들어왔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뚝 끊겼다.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신경 쓰지 마." 도윤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손끝으로 세면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있었는데, 그 손등에 핏줄이 얕게 도드라져 있었다. 누가 팔을 스치기만 했는데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던 조금 전의 감각이, 아직도 피부 위에 얇은 막처럼 남아 있었다. 서준은 천천히 다가와 그의 옆, 세면대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섰다. 가까이 오되, 닿지는 않는 거리였다. 수도꼭지에서 미처 닫히지 않은 물방울이 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걔네 원래 그래. 악의 없어." "알아." "근데 너한테는 그게 악의처럼 들렸겠지." 그 말에 도윤은 잠시 숨을 멈췄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던 노력이 그 한마디로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그는 똑똑히 보았다. "나 원래 이래." 도윤이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끝이 계속 갈라졌다. "누가 만지는 거, 못 견뎌. 손잡는 것도, 안기는 것도. 다 어색하고 무서워. 그러니까 위장이고 뭐고,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계획이었을지도 몰라." 말을 뱉고 나니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것을 털어놓았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부터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됐을까, 도윤은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서준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얼마나 길었는지 도윤은 가늠하지 못했다. 물방울이 두 번 더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손등이 아니라, 손끝만 살짝 닿을 정도로. "싫으면 치워." 낮은 목소리였다. 명령도 아니고 부탁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말투였다. 도윤은 그 손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밀어내고 싶은 마음과, 이상하게도 밀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일었다. 손끝이 닿아 있는 부분만 유난히 뜨거웠다. 나머지는 다 차가운데, 딱 그 지점만. 결국 그는 손을 치우지 않았다. 손끝이 서준의 손끝에 닿은 채로, 두 사람은 세면대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거울에는 두 사람의 옆모습이 나란히 비쳤는데, 도윤은 그 그림자 같은 형상을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렸다. "돌아가자." 서준이 먼저 말했다. "저 안 가고 싶어." "그럼 나가서 바람 쐬자. 걔네한텐 내가 말해둘게." 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도윤의 손을 완전히 감쌌고, 이번에는 도윤도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손바닥 전체가 맞닿는 순간, 도윤은 숨을 짧게 들이켰다.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 그저 낯선 온도였다. *** 두 사람은 술집을 나와 밤거리를 걸었다.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골목이었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길게 늘어져 있었다. 걸음이 겹쳐질 때마다 그림자도 겹쳐졌다가 다시 갈라졌다. "고마워." 한참 만에 도윤이 중얼거렸다. "뭐가." "그냥, 아까." "별거 아니었어." 서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잡은 손에는 조금 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도윤은 그 온도를 느끼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손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언제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골목을 벗어나자 가로등 불빛이 뜸해지고, 대신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졌다. 도윤은 발밑을 보며 걸었다. 아스팔트 위로 늘어진 두 사람의 그림자가 마치 하나의 형체처럼 붙어 있다가, 걸음이 어긋날 때마다 얇게 벌어졌다. "너는 안 무서워?" 도윤이 불쑥 물었다. "뭐가." "나 같은 애랑 이런 거 하는 거." 서준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그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스쳤는지, 도윤은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다. 빛과 그림자가 반씩 걸친 얼굴이었는데, 그 반쪽의 표정만으로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안 무서워." 서준이 짧게 대답했다. "오히려." 그 뒷말은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서준은 다시 걷기 시작했고, 도윤은 그 등을 바라보며 무언가 더 있다는 걸 직감했지만 캐묻지 않았다. 캐묻는 순간 서준이 지금처럼 곁에 있어 주지 않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걸음은 계속됐다. 도윤은 서준의 옆얼굴을 슬쩍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손을 놓지 않은 채로 걷는 이 짧은 거리가,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저 사람은. 도윤은 몇 번이고 묻고 싶었지만 끝내 묻지 못했다. 대답이 두려운 게 아니라, 대답을 들은 후의 자신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걷던 골목 끝에서, 도윤은 처음으로 누군가의 손이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등 뒤에서 낯익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이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서준의 손에서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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