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낯선 방의 딱딱한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천장에서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고, 창호지를 통과한 흐릿한 빛이 방 안의 먹빛 그림자들을 어루만지듯 흔들리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조차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는데, 마치 얼음물에 담갔다가 꺼낸 것처럼 무겁고 감각이 둔했다. 가슴 안쪽, 배꼽 아래 어딘가에서 느껴지던 뜨거운 기운의 흐름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리에는 차갑고 딱딱한 무언가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이물감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서, 나는 몇 번이나 얕은 숨을 몰아쉬었다.
천장의 목재 무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화도인이 몇 명의 장로들과 함께 들어섰는데, 그들의 옷자락에서 나는 약재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졌다.
"깨어났구나."
대장로는 다가와 내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그의 손끝은 서늘했고, 손목을 누르는 손가락의 힘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나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심하던 그 손끝이 점점 신중해지고, 다시 미간이 좁아지는 것을, 나는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단전이 완전히 굳었다."
그 말이 방 안에 퍼지자 몇몇 장로들이 낮게 탄식을 흘렸다. 누군가는 헛기침을 했고, 누군가는 낮게 혀를 찼다.
"굳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체구가 작고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본래 기운이 흐르며 넓어져야 할 단전이, 마치 돌덩이처럼 응고되어 있소.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 보는구려."
백화도인의 목소리에는 냉정한 판단만이 담겨 있었을 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캐묻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되물었다. '처음 본다면서, 왜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 걸까.' 하지만 그 물음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혹 체내에 다른 기운이 섞여 들어간 것은 아니오?"
또 다른 장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순간 대장로의 손끝이 다시 내 손목을 눌렀는데,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물의 기운은 없소. 그저... 단전 자체가 스스로 굳어버린 것이오. 마치 누군가 억지로 문을 걸어 잠근 것처럼."
그 말에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형이 가르쳐준 대로 했을 뿐인데..."
목소리는 갈라져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방 안의 몇몇은 분명히 그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 말에 방 안에 있던 누군가가 낮게 웃었다. 문가에 비스듬히 서 있던 사내였는데, 나이는 스물이 조금 넘어 보였고 이름은 박도현이라 했다. 나에게 기초 기공법을 가르쳐 준 사형이었다.
"기초 기공법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리가 있나. 아이가 스스로 무리한 게지."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거리감이 반쯤 섞여 있었다. 나는 항변하려 했다.
"저는... 사형이 알려준 순서대로, 호흡을 세 번 끊고 다시 이어가라고..."
하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그 어떤 어른도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젓기까지 했다. '내가 잘못했다는 건가. 정말로 내 탓인가.' 그 물음이 가슴 안쪽에서 뜨겁게 부풀어 올랐지만, 나는 그것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선우명이 방문 앞에 서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그 무표정함이 오히려 방 안의 모든 소란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사부님..."
내가 그를 부르자, 선우명은 그제야 방 안으로 들어와 내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고요했고,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을 읽어내려 했지만 나는 실패했다.
"단전이 굳었다면, 더 이상 정식 수행자로서는 쓸모가 없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고요했는데, 그 고요함이 오히려 내 가슴을 찢는 듯했다. 나는 그 순간 숨을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침상을 짚은 손끝이 떨렸고, 목 안쪽이 뜨겁게 조여왔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대장로가 옆에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완전히 회복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소. 시간이 지나면..."
"소용없소."
선우명이 대장로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 짧은 한마디에 방 안의 모든 웅성거림이 뚝 끊겼다.
"돌처럼 굳은 단전은 다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도 알지 않소."
대장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방 안에서 나를 위해 싸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약초원(藥草園)으로 보내라."
선우명은 다른 장로에게 그렇게 지시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떠났다. 그의 발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를... 버리는 건가.'
그 물음에 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 안에 남은 장로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하나둘 자리를 떴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백화도인이었다. 그는 내 이불을 대충 여며주며 낮게 중얼거렸다.
"...안타깝구나. 자질은 나쁘지 않았는데."
그 말이 위로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말에서 어떤 온기도 느끼지 못했다.
며칠 뒤, 나는 절뚝거리는 몸으로 태화문 뒤편에 자리한 약초원으로 옮겨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끝에서부터 무릎, 허리까지 저릿한 통증이 퍼졌는데, 그 통증은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크다는 것을 자꾸만 일깨워주는 듯했다. 나를 이끌던 시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습기와 흙냄새가 짓누르는 그곳에는 이미 낡은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지붕은 반쯤 기울어 있었고, 벽에는 이끼가 짙게 앉아 있었으며, 마당 곳곳에는 알아볼 수 없는 약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코끝을 자극했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만이 이 공간에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나를 기다리던 사내가 있었다.
"네가 그 폐인이라는 놈이냐."
험상궂은 얼굴에 다부진 체격, 이름은 장수현이라 했다. 그는 대장로의 측근으로 축기 후기의 수행자라 자신을 소개했는데, 그 말투에는 나를 향한 일말의 존중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예."
"예, 라니. 그것도 예의는 아는군."
그가 코웃음을 치며 내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마치 물건을 살펴보듯,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 시선이 몹시 불쾌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들었겠지만, 나는 여기서 약초를 돌보며 지낸다. 앞으로 네놈도 그렇게 살 거고."
"약초원지기 노릇이나 하면서 앞으로는 여기서 살아라. 다른 곳엔 얼씬도 하지 말고."
그가 내 어깨를 세게 밀치자 나는 그대로 흙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무릎이 젖은 흙에 파묻히며 축축한 냉기가 스며들었고, 손바닥에는 자갈이 박혀 따끔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태화문의 정식 제자들이 저 위에서 무공을 익히는 동안, 너는 여기서 잡초를 뽑고 약초에 물을 줄 거다. 그게 네 남은 인생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발끝으로 내 옆의 흙을 툭 걷어찼다. 흙먼지가 얼굴 위로 흩뿌려졌고, 나는 눈을 감으며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예."
나는 그 짧은 대답 외에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 안쪽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을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장수현은 그런 나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흥, 하고 콧소리를 내며 오두막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흙바닥의 냉기가 옷을 통해 스며들었고, 어디선가 새어드는 저녁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밤이 되자 오두막 한쪽 구석에 마련된 짚더미 위에 몸을 뉘였다. 지붕 사이로 새어드는 달빛이 얼굴 위로 흩어졌고, 저 멀리서 벌레 우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박도현의 그 짧은 웃음, 선우명의 무심한 뒷모습, 백화도인의 냉정한 판단,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뒤엉켜 내 안에 가라앉으며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느꼈다. 마치 내 단전이 굳어버린 것처럼, 내 마음의 어느 부분도 그렇게 딱딱하게 응고되어 가는 것 같았다.
'왜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사형이 알려준 방법이 틀렸다면, 그건 정말 내 잘못일까.'
그 물음들은 답을 찾지 못한 채 밤새 내 안을 떠돌았다. 짚더미의 거친 감촉이 등을 찔렀지만, 그보다 더 아픈 것은 가슴 안쪽에서 자라나는 어떤 냉기였다.
'언젠가는...'
그 뒤에 이어질 말을 나는 차마 끝맺지 못했지만, 그 씨앗은 이미 내 안에 심어졌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오두막 밖에서 낮게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장수현과 또 다른 누군가가 나누는 대화였는데, 바람에 실려 온 그 말 중 한 마디가 유독 선명하게 귓가에 박혔다.
"...그 아이 단전, 정말로 스스로 굳은 게 맞나?"
나는 짚더미 위에서 몸을 굳혔다. 심장이 갑자기 세차게 뛰기 시작했고,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