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장로님, 벌써 후회되시죠

2화

산을 내려가는 길은 온통 재냄새로 뒤덮여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옷자락 사이로 스며드는 그 냄새는 마치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다시는 빠져나가지 않을 것처럼 들러붙었고, 나는 몇 번이나 코를 막으려다 손을 다시 내렸다. 손을 들어 올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바닥이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몸이 앞으로 쏠렸고, 그럴 때마다 나는 숨을 짧게 들이켰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멀어지는 마을은 이제 불씨조차 사그라들어 검은 잔해로만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잔해를 몇 번이고 돌아보다가 결국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노인의 그림자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돌아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너진 지붕과 시커멓게 그을린 기둥뿐이었는데, 그 사이 어딘가에 부모님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목구멍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밀어내려 했지만, 밀어낸다고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었다. 선우명, 청색 도복을 입은 이 노인은 앞서 걸으면서도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는데, 그 뒷모습이 마치 세상 모든 일에 무심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나는 괜히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걸음걸이는 일정했고, 도복 자락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나 그를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의 걸음 속도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다리를 움직였다. '개는 어디 갔을까.' 소금이는 산 쪽으로 뛰어간 뒤로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몇 번이나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지만 목소리를 낼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산기슭 어디에도 하얀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아이도 나처럼 살아남았을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기대만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하루를 꼬박 걸어 도착한 곳은 커다란 산문 아래였는데, 붉은 기둥과 검은 기와가 겹겹이 늘어선 그 규모에 나는 저절로 입을 벌리고 말았다. 산문의 높이는 나무 몇 그루를 세워놓은 것보다도 높았고, 그 위에 걸린 현판에는 알아볼 수 없는 큼직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지붕 끝마다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낮게 울렸는데,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것 같았다. "태화문(太華門)이다." 선우명이 짧게 말하며 산문을 가리켰고, 나는 그제야 이곳이 무언가 대단한 곳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도, 설명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말하듯 건조했다. 산문을 지나자 넓은 마당이 펼쳐졌고, 그 마당에는 이미 여러 명의 젊은이들이 검을 쥔 채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다들 나를 흘끗 쳐다보고는 다시 자신의 동작에 집중했다.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나는 파공음이 귓가를 스쳤고, 그 소리가 낯설면서도 서늘하게 다가왔다. 몇몇은 웃으며 서로의 검을 부딪치듯 장난을 쳤고, 몇몇은 무표정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다른 세상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지나갈 때마다 몸을 움츠렸고, 선우명의 소매를 슬쩍 붙잡았다. 손끝에 닿는 도복의 감촉은 차갑고 뻣뻣해서, 사람의 옷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다른 것을 붙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놓아라." 노인의 말투는 여전히 감정이 없었지만, 나는 순순히 손을 떼지 못했다. 손을 놓으면 이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아주 잠깐, 그 속에서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두려운 게냐." "...모르겠어요."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너는 오늘부로 태화문의 제자가 될 것이니, 두려움도 슬픔도 차차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 말이 위로인지 경고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이 사람이 나의 앞날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내당(內堂)이라 불리는 넓은 전각에 이르자,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노인들이 모여 앉아 있었고, 그중 가장 상석에 앉은 백발의 노인이 나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전각 안은 향내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는데, 그 냄새는 마을에서 맡았던 재냄새와는 전혀 다른, 오래된 나무와 먹의 향이었다. 벽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이 걸려 있었고, 바닥은 발을 디딜 때마다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선우 장로, 이 아이가 그리 말하던 영근을 지녔단 말이오." "중품이오. 흔치 않은 자질이지." 선우명이 대답하며 나를 앞으로 밀어냈고, 나는 얼떨결에 여러 노인들의 시선 앞에 서게 되었다. 등을 밀리는 순간 나는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갔고, 그 자리에 서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옷은 재와 흙으로 얼룩져 있었고, 손등에는 마르지 않은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경계, 그리고 얼마간의 무시가 섞여 있었는데, 나는 그 시선들 아래에서 몸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몇몇 노인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낮게 헛기침을 했고, 또 몇몇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그 모든 시선이 마치 내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아서, 두 손을 모아 배 앞에 붙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상석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그 안에서 어떤 무게가 느껴졌는데, 마치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조금씩 눌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백화도인이라 하네. 태화문의 대장로일세."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위엄이 있었으며,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짚었을 때는 서늘한 기운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 손끝이 이마에 닿는 순간, 나는 저절로 숨을 멈추고 말았다. 마치 얼음을 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오래된 우물 속 물처럼 깊고 서늘한 것 같기도 했다. "...확실히 체온이 남다르구나. 이런 몸으로 어찌 지금껏 버텼는지 모를 일이다." 백화도인의 말에 몇몇 장로들이 낮게 웅성거렸고,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특이체(特異體)"라는 말이 언뜻 들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이곳에서도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는 것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름이 무엇이냐." "이서한이에요."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이름을 말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부모님이 나를 부르던 목소리를 떠올렸고, 그 기억이 떠오르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좋다. 오늘부터 너는 태화문의 제자다. 사부는 선우 장로가 될 것이며, 사형제들과 함께 수행에 임하게 될 것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문 밖에서 젊은 사내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는데, 훤칠한 체격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그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걸음걸이에는 여유가 넘쳤고,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오면서도 다른 장로들에게 가볍게 목례만 할 뿐, 조금의 긴장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그 영근을 지녔다는 아이입니까." "박도현이다." 선우명이 짧게 소개했고,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를 불편함이 등줄기를 스쳤다. 이름만 들었을 뿐인데도, 마치 그 이름이 앞으로 내 삶에서 계속 반복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박도현은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환영한다, 사제(師弟).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의 웃음은 다정했지만, 그 눈빛 깊은 곳에는 무언가 서늘한 것이 도사리고 있었고, 나는 그 손을 잡으면서도 왜인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손을 맞잡는 순간 그의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는데, 그 감촉이 유난히 단단해서 마치 손이 아니라 돌덩이를 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내 손을 조금 오래, 필요 이상으로 오래 붙잡고 있다가 천천히 놓았다. "...잘 부탁드려요." 나는 겨우 그 말을 내뱉었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을 놓은 뒤에도 그 서늘한 감각은 손바닥에 계속 남아 있었다. 주변에 있던 몇몇 장로들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중 한 노인이 백화도인을 향해 무언가 낮게 속삭였는데, 나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시선이 자꾸 나와 박도현 사이를 오간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시선들이 마치 내가 무언가 시험대에 올라선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부모의 시신을 두고 온 산 마을이 아직도 눈앞에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는 모두가 나를 신기한 물건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산골 마을의 아이였는데, 지금은 낯선 도복을 입은 노인들 앞에서 이름을 말하고, 손을 맞잡고, "제자"라는 말을 듣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나는 아직도 이것이 현실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당의 창밖으로는 여전히 마당에서 검을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고, 그 소리는 마치 이곳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일러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문득 부모님이 나를 안고 걷던 그 좁은 산길을 떠올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길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도인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손을 저었다. "선우 장로, 아이를 데려가시게. 오늘은 쉬게 하고, 내일부터 정식으로 문규(門規)를 가르치도록." "알겠소." 선우명이 짧게 답하며 내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나는 그 손길에 따라 몸을 돌렸고, 전각을 나서기 직전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노인들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머물러 있었고, 그중에서도 박도현의 눈빛만은 이상하게도 오래 잔상처럼 남았다. 전각을 나서자 마당의 찬 공기가 다시 얼굴을 스쳤다. 저 멀리 지붕 끝에 매달린 풍경이 또 한 번 낮게 울렸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선우명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나는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들 중 유독 하나, 박도현이라는 사내의 시선이 내 뒷모습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다는 것만은, 어쩐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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