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노예인데 보물을 주웠다니

4화

방수의 시신을 처리한 것은 다름 아닌 이택수와 그의 아내 순영이었다. 두 사람은 밤이 새기 전에 시신을 오두막 뒤편 얼어붙은 개울가에 묻고, 그 위로 눈을 쌓아 흔적을 지웠는데, 삽질하는 이택수의 손끝은 살갗이 갈라져 피가 배어났으나 그는 신음 한 번 내지 않았고, 순영은 그 곁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눈밭 위에 흩뜨려 발자국을 뒤섞었다. 그 손길에는 오랜 세월 노예 신분으로 살아온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침묵의 지혜가 배어 있었으니, 슬픔을 드러내는 것조차 사치인 삶이 두 사람의 몸에 이미 새겨져 있던 탓이었다.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순영은 서준의 손을 꼭 붙잡으며 낮게 속삭였고,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보다 더 큰 애처로움이 담겨 있었다. 서준은 그 손의 온기를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오두막 지붕 위로는 까마귀 한 마리가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올랐는데, 그 날갯짓 소리마저 서준의 귓가에는 방수의 마지막 숨소리처럼 들렸다. 서준은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방수의 텅 빈 눈동자가 떠올랐고, 손끝에 아직도 그의 목젖이 짚히던 감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마다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면 손바닥이 저절로 떨려왔고, 그 떨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 밤에는 꿈속에서 방수가 다시 눈을 뜨고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광경을 보았고, 서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나 앉아 밤새 창밖의 어둠만을 응시했다. 그렇게 열흘이 흘렀다. 방씨세가에서는 방수의 실종을 두고 몇 차례 형식적인 수색이 이루어졌으나, 본디 천출 출신 종자의 행방에 크게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으므로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색을 맡았던 하인들도 눈 쌓인 개울가까지는 발길을 옮기지 않았으니, 그들에게조차 방수의 생사는 그리 중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가의 마당에는 다시 평온이 찾아왔고, 오직 서준의 마음속에만 겨울보다 깊은 한기가 남아 있었다. 서준은 다시 훈련장으로 불려나가야 했으나, 이택수와 순영은 그가 밤마다 부엌 아궁이 곁에 앉아 몸을 데우도록 자리를 내주었고, 순영은 그의 등에 남은 상처에 손수 약초를 짓이겨 발라주며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아궁이의 붉은 불빛이 순영의 주름진 손등을 비출 때마다, 서준은 그 손이 자신의 어미의 손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목이 메었다. 그 조용한 손길 속에서 서준은 조금씩 숨을 고르는 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상처가 아무는 것과 마음이 아무는 것은 결코 같은 속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준은 그 열흘 동안 몸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저녁, 이택수가 조심스레 서준을 불러 앉히며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손에는 마시지도 못할 식은 차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을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서준아, 요 며칠 세가 안에서 이상한 소문이 돈다더구나."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방 공자가 네가 요즘 훈련에서 이상한 힘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 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며칠 전 훈련장에서 급한 마음에 몸을 놀리다 저도 모르게 손끝에서 미약한 기운을 뿜어낸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을 누군가 지켜본 모양이었다. 서준은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보았으나, 대체 누구의 눈이 자신을 살피고 있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택수는 그런 서준의 얼굴을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고, 순영은 부엌 문틀에 몸을 반쯤 숨긴 채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다음 날, 서준은 결국 세가의 관사로 불려가야 했다. 관사로 향하는 길목마다 시린 바람이 옷깃 사이로 파고들었고, 발밑에서는 서걱거리는 눈 밟는 소리만이 유독 크게 울렸다. 관사 앞에는 방준혁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고, 그의 옆에는 낯선 노년의 관리인이 서류를 든 채 서준을 훑어보고 있었다. 관리인의 눈빛은 마치 물건의 값어치를 재는 상인의 것과 같아서, 서준은 그 시선 아래서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셈속으로 취급받고 있음을 절감했다. "천출 노예가 감히 무공의 흔적을 보였다더군." 관리인의 목소리는 건조했으나, 그 말 속에는 명백한 위협이 깔려 있었다. "방씨세가의 규율에 따르면, 허락 없이 무공을 익힌 노예는 즉시 처분함이 마땅하다." 서준은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방준혁은 그런 그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며, 아무런 변명도 해주지 않았다. 서준은 그 눈빛 속에서 일말의 온정조차 찾을 수 없었으니, 방준혁의 얼굴은 마치 얼어붙은 개울처럼 차갑고 매끈했다. 관사 밖으로는 초저녁의 눈발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고, 그 눈발 사이로 이택수와 순영이 애타는 얼굴로 담장 너머를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순영은 두 손을 모아 쥐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기도인지 애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서준은 그 순간, 자신의 목숨보다도 두 사람의 처지가 더 걱정되어 손이 떨렸다. 만약 자신의 죄가 드러난다면, 방수의 죽음을 감춘 두 사람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관리인의 서류에는 이미 '처분 대상'이라는 문구가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고, 그 붉은 빛은 흩날리는 눈발 사이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서준의 눈을 찔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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