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노예인데 보물을 주웠다니

2화

며칠이 지나도 서준은 천연보전의 존재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밤마다 몰래 서책을 펼쳐볼 때마다 허공에 뜨는 글자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는데, 그 글자들은 마치 어둠 속에서 홀로 숨 쉬는 작은 불씨처럼 그의 눈앞에서만 은은히 빛을 발했다. 창고의 낡은 문틈으로 새어 드는 달빛이 서책의 표지를 비출 때마다, 서준은 숨을 죽이고 그것을 품속 깊이 끌어안았다가 다시 조심스레 펼쳐보곤 했다. 『에너지값 : 3』이라는 숫자가 떠오른 밤, 서준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손끝으로 글자를 매만졌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이 힘이 아직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다만 몸에 쌓인 상처가 예전보다 조금 빨리 아무는 것 같다는 느낌만을 어렴풋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낮에 훈련장에서 채찍에 맞아 부풀었던 자리가 저녁이 되자 벌써 옅은 자국만 남기고 가라앉는 것을 발견했을 때도, 그는 그것이 우연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문제는 그로부터 나흘째 되는 날 훈련장에서 벌어졌다. 방준혁의 종자인 방수가 처음으로 그의 훈련에 끼어든 것이었는데, 1품2계에 불과한 실력임에도 그는 주인의 그늘을 등에 업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자였다. 방수는 늘 방준혁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잔심부름을 하던 자였으나, 그 위세만은 웬만한 무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으니, 노예들 사이에서는 그를 건드리는 것이 곧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노예 놈이 요즘 눈빛이 좀 달라졌다 싶더니." 방수는 팔짱을 낀 채 서준의 주위를 빙 돌며 그의 품속과 옷자락을 훑어보았고, 그 시선에는 순수한 호기심이 아니라 먹잇감을 찾는 자의 탐욕이 섞여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서준의 허리춤에서 가슴께로, 다시 목덜미로 훑고 지나갈 때마다 서준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참았다. "별것 아닙니다." 서준은 눈을 내리깐 채 짧게 답했으나, 방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코웃음을 쳤다. "노예 팔자에 별것 아닌 게 어디 있겠느냐. 다 늘어놓아 보아라, 뭘 숨기고 있는지." 그가 한 발짝 더 다가서자 흙바닥을 밟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품속에 감춰둔 천연보전이 옷자락 위로 미세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았고,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슬며시 옆구리로 가져가 그것을 가리려 했으나 그 동작이 오히려 방수의 의심을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 그 순간 방수의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옷깃을 낚아채려 했다. "이거 놓으십시오!" 서준이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피하자, 방수의 눈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스쳤다. "이놈이 감히." 그는 허리춤의 채를 뽑아들며 서준의 등을 겨누었는데, 채의 끝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쐐액 하고 울렸다. 그러나 마침 훈련장으로 들어서던 방준혁의 목소리가 그를 멈춰 세웠다. "수야, 뭐 하는 것이냐." 방준혁이 심드렁하게 던진 한마디에 방수는 채를 거두었으나,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서준을 향해 날카롭게 박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자님. 노예 놈이 게으름을 피우기에 좀 훈계를 하려던 것뿐입니다." 방수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으니, 주인 앞에서의 비굴함과 아랫사람 앞에서의 오만함이 한 몸에서 이토록 태연하게 오가는 것을 서준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날 밤 서준은 창고 구석에 웅크린 채 서책을 꺼내 다시 펼쳐보았다. 『에너지값 : 3』,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는 숫자였다. 그러나 그는 방수의 눈빛을 떠올리며, 저 자가 결코 이대로 물러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방수는 앙심을 품은 자였고, 앙심을 품은 자는 반드시 그 앙심을 갚을 방도를 찾는 법이었다. 창밖으로는 초겨울의 마른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지나갔고, 까마귀 한 마리가 낮게 울며 창고 지붕 위를 맴돌았다. 그 울음소리가 마치 불길한 전조처럼 서준의 귓가에 오래 머물렀다. 서준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지금 딛고 있는 자리가 얼마나 얇은 얼음판 위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인간이 방심하는 곳에는 언제나 칼날이 숨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서준이 양부모의 오두막으로 물을 길어가던 길목에서 방수와 다시 마주쳤다. 물동이를 어깨에 걸치고 걸어가던 서준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고, 저만치 앞에서 방수가 팔짱을 낀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서 있었다. 방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밟듯 따라오다가, 오두막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쪽을 흘긋 들여다보았다. 낡은 문짝 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과 부뚜막의 연기 냄새가 그의 코끝을 스쳤을 것이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가 네놈이 밤마다 기어드는 곳이었구나."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서준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 미소는 마치 먹이를 앞에 둔 짐승이 짓는 것과도 같았으니, 서준은 물동이를 쥔 손에 힘이 저절로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이제 이 오두막마저 더는 안전한 곳이 아니게 되었음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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