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울음소리가 터졌다.
"고고고, 옹알이?"
산실 가득 향냄새가 났다.
짙은 약재 냄새였다.
쑥과 인삼을 달인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강민준은, 정확히는 무언가 다른 몸에 들어간 강민준은 눈을 떴다.
시야가 뭉개져 있었다.
색깔들이 뒤섞여 뭉텅이로 보였다.
손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려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플레이어 강민준님, 신체 이진(李瑨)에 귀속되었습니다]
[대운제국 영친왕부 소속으로 편입됩니다]
뭐라고?
영친왕부?
지하철 문이 닫히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 냄새, 이 소리, 이 무게감.
갓난아기 몸으로 들어왔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팔다리가 짧고 통제가 되지 않았다.
힘을 줘도 팔이 겨우 몇 센티 움직일 뿐이었다.
그런데 머릿속은 또렷했다.
지하철에서 겪었던 그 모든 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26년치 기억이 통째로 이 조그만 두개골 안에 들어박혀 있었다.
이거 미친 거 아닌가.
아니, 이미 미친 상황이지.
"진이가 눈을 뜨셨습니다, 왕비마마."
산파의 목소리였다.
다급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톤이었다.
윤서연이 다가왔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웃고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우리 아기."
손을 뻗어 아기의 뺨을 살짝 짚었다.
따뜻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천호가 그 옆에 서 있었다.
큰 체격에 눈매가 서늘했지만 지금은 그저 아버지 얼굴이었다.
"눈빛이 유독 맑구나."
이천호가 중얼거렸다.
강민준은, 아니 이진은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웅얼거렸다.
당연히 맑겠지, 안에 26년 산 놈이 들어앉았는데.
이 양반들이 알면 기절하겠지.
시녀들이 물러가고 방 안이 조용해졌다.
이진은 그 정적 속에서 눈을 굴렸다.
시야가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천장 무늬가 보였다.
용과 봉황이 얽힌 문양이었다.
이거 뭐, 궁궐급 아니야?
왕부라고 했으니 왕족은 확실한 것 같은데.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적어도 노숙자로 태어난 건 아니니까.
돌이 지날 무렵부터 말이 트였다.
다른 아기들보다 빨랐다.
소은이라는 시녀가 신기해하며 매번 왕비에게 보고했다.
"진이 아가씨, 아니 아기님이 오늘도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윤서연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반쯤 웃고 반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했느냐."
"밥그릇이 깨질 거라고 하셨는데, 정말 점심상에서 그릇이 깨졌습니다."
그날, 이진은 마당에서 놀다가 문득 하늘을 가리켰다.
"비 와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쨍쨍한 볕이 마당 흙바닥을 데우고 있었다.
소은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맑은데요, 도련님."
"곧 와요. 아주 많이."
이진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콱 찔렀다.
시스템 알림이 눈앞에 떠 있었으니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근처 이상 기류 감지: 확률 87%]
이 정도면 거의 확정이지.
두 시간 뒤 갑작스러운 폭우가 왕부를 덮쳤다.
빗줄기가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투두두두둑.
소은의 얼굴이 하얘졌다.
빗물이 튀는 마당을 내다보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윤서연도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눈이 커졌다.
젓가락을 든 손이 멈췄다.
"우연이겠지요."
이천호가 말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창밖을 응시했다.
"우연이 몇 번이나 반복되면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윤서연이 낮게 답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실제로 이진은 그 뒤로도 몇 차례 예사롭지 않은 말을 흘렸다.
곡물 창고에 벌레가 생길 것이라거나, 북문 쪽 다리가 위태롭다거나.
전부 시스템이 슬쩍 던져주는 알림 정보였다.
[근처 이상 기류 감지: 확률 87%]
[구조물 손상 예측: 북문교 붕괴 위험 62%]
숨길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아기라서 뭐라 캐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아는 걸 아는 대로 흘렸을 뿐이다.
울면 그냥 우는 아기고, 말하면 그냥 신기한 아기니까.
책임질 것도 없고 밑질 것도 없는 장사였다.
곡물 창고 벌레 얘기가 나온 다음 날, 관리인이 부랴부랴 창고를 뒤졌다.
정말로 벌레가 슬어 있었다.
쌀 포대 아래쪽에서 곰팡이와 벌레가 잔뜩 나왔다.
관리인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북문교 얘기가 나온 지 사흘째, 다리 한쪽 기둥이 서서히 기울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공사 인부들이 부랴부랴 보강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부모의 시선은 점점 달라졌다.
사랑스러움과 동시에, 아주 미묘한 경계가 섞였다.
윤서연이 이진을 안아 올릴 때 손끝이 살짝 굳는 것을 이진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가 특별한 건 좋은데."
이천호가 밤늦게 윤서연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너무 특별하면 궁에서 좋게만 보지 않을 게요."
윤서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 걱정이 스쳤다.
"소문이 벌써 시녀들 사이에서 돌고 있어요."
"어디까지 퍼졌소."
"아직 왕부 안에서만."
"밖으로 새면 골치 아파지오."
그 대화를 이진은 문틈으로 다 듣고 있었다.
어른들 눈에는 그냥 방문 옆에 앉아 놀고 있는 아기였다.
손가락으로 문살을 잡고 서 있는 조그만 몸뚱이.
겉으로는 침 흘리며 눈만 깜빡이는 갓난쟁이였지만 속은 전혀 딴판이었다.
됐고, 어쨌든 이 세계에서 왕족으로 태어난 건 나쁘지 않지.
소문이야 나든 말든 일단 밥은 나오고 잠자리는 따뜻하니까.
나중에 궁에서 눈총 좀 받는 거야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다만 그 밤, 시야 구석에 새로운 알림이 하나 떠올랐다.
[히든 던전: 이계형 훈련장 개방 조건 충족 - 개방까지 남은 시간 72시간]
이진의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뭔가 시작되는구나.
72시간이라니, 그 안에 뭘 준비해야 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갓난아기 몸으로 뭘 어떻게 준비한다는 건지도 막막했다.
그래도 심장이, 아니 이 조그만 가슴팍 안에서 뭔가가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세상에 떨어진 이유가 이제야 드러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