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지하실의 문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쾅! 쾅!
밖에서 병사들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나무로 된 문짝이 경첩째 뜯겨나갈 듯 삐걱거렸고, 그 틈으로 횃불의 붉은 빛이 스며들었다.
"공주는 안에 있다! 문을 부숴라!" 누군가의 명령이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강무열이라는 것을, 하린은 단번에 알아챘다. 태오의 심복이자 추격대의 대장. 궁에서도 검술로 이름 높은 자였다. 하린이 어렸을 적, 궁의 연회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사내였다. 그때는 그저 딱딱한 인상의 무인이라고만 여겼는데, 지금은 그 딱딱함이 살기로 바뀌어 있었다.
'하필 저 사람이라니.' 하린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강무열은 태오가 가장 신임하는 검이었다. 명령이 떨어지면 이유를 묻지 않고 실행하는 자. 그것이 그의 충성이었고, 동시에 그의 한계였다.
"백현도님, 저 사람들이..." 하린이 다급히 말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미 문이 부서지며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갑주를 두른 병사들의 발소리가 좁은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열 명은 족히 넘는 숫자였다. 하린은 순간 숨이 막혔다. 좁은 공간에 이만한 병력이 몰려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선두에 선 강무열이 지하실 안을 훑어보았다. 하린과, 그 옆에 선 낡은 도포의 노인을 확인한 그의 눈이 순간 이상하게 번뜩였다.
'저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강무열의 손이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그가 궁정 마법사에게 전수받은 감지술로는, 백현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파동을 사람의 것으로 읽어낼 수 없었다. 너무나 거대하고, 너무나 이질적인 파동이었다. 강무열은 지금까지 수많은 전장을 겪었고, 마물이라 불리는 것들과도 검을 맞댄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마물에게서도 이런 파동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저것은... 심연의 악마다!" 강무열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지만, 그 확신은 두려움을 덮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강무열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언제나 그것을 '악마'라는 이름으로 정의해버리는 습성이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두려운 것이고, 두려운 것은 베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린이 놀라 그를 향해 외쳤다.
"아닙니다! 저분은 사람입니다, 제가 소환한..."
"공주가 사악한 마법으로 대공 전하를 해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악마까지 불러들였구나!" 강무열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진실을 들으려는 의지가 없었다. 명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태오는 이미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명령을 내리기 전부터 공주를 역모의 죄인으로 규정해두었다. 강무열은 그 명분을 충실히 따를 뿐이었다. 충성이라는 것은 때로 사고를 멈추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베어라!" 강무열의 검이 스르릉- 검집을 벗어났다.
병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고 백현도를 향해 몰려들었다. 창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 갑주가 서로 스치는 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채웠다. 하린이 그를 막으려 몸을 던졌으나, 그보다 먼저 병사 하나의 창끝이 백현도의 어깨를 향해 뻗쳤다.
"안 돼!" 하린의 외침이 지하실 벽에 부딪쳐 울렸다.
백현도는 그 순간까지도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마치 아직 이 상황의 무게를 다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처럼. 그는 자신이 다시 이 세상에 발을 딛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봉인에서 풀려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칼을 마주하는가.' 그는 속으로 그렇게 되씹었다.
봉인 속에서 그가 얼마나 긴 세월을 보냈는지, 그 자신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시간이라는 것이 그 안에서는 다르게 흘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몸에 새겨진 습성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
'칼을 잡던 손은, 봉인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래전 누군가 그에게 그렇게 가르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것이 스승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스스로 되새긴 말이었는지도 이제는 흐릿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탁-
창끝이 백현도의 손가락 두 개에 걸려 멈췄다. 병사는 그것을 밀어붙이려 했으나, 창은 마치 벽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병사가 온몸의 힘을 다해 창을 밀었지만, 백현도의 손가락 두 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 이게..." 병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치 거대한 벽을 밀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사람의 손가락 두 개가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강무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후퇴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면 대공 전하께 명분을 잃는다.' 강무열의 판단은 여전히 명령에 묶여 있었다.
"전원 공격하라!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그가 다시 소리쳤다.
병사들이 사방에서 백현도를 에워싸며 무기를 겨눴다. 좁은 지하실은 이제 발 디딜 틈도 없이 병사들로 채워졌고, 그들의 창끝과 검날이 백현도 한 사람을 향해 집중되었다.
하린은 그 광경을 보며 온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저분마저 죽는다면...' 그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하린은 손을 뻗어 무언가를 하려 했지만, 자신에게 남은 마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환식을 완성하는 데 이미 대부분의 힘을 써버린 뒤였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부른 분인데, 내가 지켜드릴 수가 없다니.' 그 무력함이 하린의 가슴을 짓눌렀다.
지하실은 순식간에 병사들로 가득 찼고, 유일한 출구는 이미 강무열과 그의 부하들이 막아선 뒤였다.
퇴로는 없었다.
병사들의 숨소리, 갑주가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강무열의 낮은 명령이 뒤섞여 지하실 안은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 찼다. 누구 하나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정적이 아주 짧게 흘렀다.
백현도가 천천히 눈을 완전히 떴다. 그 눈동자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가장 앞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무의식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본능이 그렇게 시켰을 뿐이었다.
'몸이... 왜 이러지.' 그 병사는 자신의 다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스스로도 놀랐다.
강무열조차 그 눈빛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해온 그 어떤 적과도 다른,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존재감이었다.
'저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그 의문을 끝맺을 시간은 없었다. 백현도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파동이, 서서히 그 형태를 바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