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폐허에서 깨어난 후계자

3화

강무영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 순간, 첫 번째 암살자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듯 뒤로 튕겨 나갔는데, 그 동작이 너무 매끄러워서 마치 무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피가 튀는 궤적조차 우아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분명 정신이 어딘가 고장 난 증거였다. '이게 투기라는 건가.' 발굴 현장에서 유물의 균열 패턴이나 관찰하던 내가, 이제는 사람의 몸이 갈라지는 각도를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기가 막혔다. 나는 그 광경에 압도되면서도 뒷걸음질 치는 걸 멈추지 않았고, 발밑에 걸리는 나무뿌리를 몇 번이나 헛디디며 넘어질 뻔했다. 박거석이 내 옆에서 큰 칼을 휘두르며 두 번째, 세 번째 암살자를 밀어붙이는 사이 나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굵은 둥치가 시야를 가려주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는데, 그 순간에도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이 나무의 수령이 최소 백 년은 됐겠군' 하는 쓸데없는 감정평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학자의 버릇은 어디 안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안심할 틈도 없이 등 뒤에서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고, 반사적으로 몸을 굴리자 창끝이 방금 내가 서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옷자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뺨 옆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죽을 뻔했다.' 그 자각과 동시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이 밀려왔고,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기라도 할 듯 쿵쾅거렸다. 손끝이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흙바닥에 짚은 손바닥이 쓸려 얼얼했고, 그 통증이 오히려 나를 현실로 붙들어주는 것 같았다. 창을 놓친 암살자가 다시 자세를 잡는 걸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놈은 두 번은 안 봐줄 거다.' 그러나 다음 동작을 취할 새도 없이, 박거석의 몸이 그 창을 든 사내를 향해 짓쳐들어갔다. 박거석이 창을 든 암살자를 향해 몸을 던지며 칼을 크게 휘두르는 순간, 상대의 창끝이 그의 옆구리를 그대로 관통하고 지나갔는데, 그 모습을 본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살이 뚫리는 둔탁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박거석은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오히려 그 창을 몸으로 붙잡은 채, 자루를 아예 옆구리에 고정시켜 상대가 뽑아내지 못하게 만들고는, 그대로 칼을 상대의 목에 박아 넣었다. 두 몸이 동시에 무너지는 광경을, 나는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사람이 죽고 죽이는 광경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발굴 현장에서 수백 년 전 유골을 만지며 죽음을 그저 학술적 대상으로만 다루던 나에게, 지금 눈앞의 죽음은 너무나 뜨겁고 축축했다. "공자님, 뒤로!" 강무영이 소리치며 다시 다가온 암살자 둘을 연속으로 베어 넘겼는데,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 쇠붙이가 살을 가르는 소리, 신음이 끊어지는 소리가 한데 뒤엉켜 귀를 때렸다. 그의 팔뚝에서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이 사람도 무한정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쳐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걸 두고 몸이 굳는다고 하는구나, 하고 실없이 납득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강무영의 검이 세 번째 암살자의 팔을 잘라내는 순간, 잘려나간 팔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아 떨어지는 걸 보며 나는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겨우 참았다. 그때 검은 옷의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섰는데, 다른 자들과 달리 걸음걸이에 자신감이 넘쳤고, 눈빛에서 서늘한 냉기가 흘렀다. 걸음마다 흙바닥이 살짝 눌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만큼 가벼웠고, 그 가벼움이 오히려 더 섬뜩했다. 그가 손을 들자 주위의 암살자들이 일제히 물러났고, 마치 훈련된 개들이 주인의 손짓 하나에 물러서듯 순식간에 대열이 정리되었다. 강무영이 그를 향해 검을 겨누며 낮게 말했다. "당신이 우두머리인가." 사내는 대답 대신 옅은 웃음을 지으며 검을 뽑았는데, 그 검신에서 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그 붉은 기운을 보며 저것이 파편에서 봤던 그 문양의 색과 똑같다는 걸 알아챘지만, 그 생각을 끝맺기도 전에 두 사람이 부딪혔다. 두 사람이 부딪히는 순간, 나무들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의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나는 그 여파에 뒤로 나뒹굴며 갈비뼈에 둔탁한 통증을 느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옆구리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건 인간의 싸움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강무영의 어깨에서 붉은 선이 그어지듯 상처가 벌어졌다. 검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불꽃 같은 섬광이 튀었고, 두 사람의 발이 땅을 박찰 때마다 흙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강무영의 자세가 눈에 띄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뛰어난 무인이었지만, 상대는 그보다 한 수, 아니 몇 수는 위였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아마도 아까 마차에서 굴러 나올 때 어딘가를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다리를 내려다보니 바짓단이 검붉게 젖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피가 났는지도 몰랐다. 통증은 나중에야 몰려오는 법이라던 어느 책의 구절이 문득 떠올랐는데, 그 지식이 지금 이 순간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게 우스웠다. 시야가 흐려지고 소리가 먹먹해지는 가운데, 강무영이 우두머리의 검을 막아내며 소리쳤다. "공자님, 도망치십시오, 단양성으로!" 그 말이 마지막으로 선명하게 들린 목소리였고, 이후로는 모든 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뭉개졌다. 강무영의 입 모양이 계속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박거석이 창에 꿰인 채로도 마지막 힘을 짜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그 순간에도 실없이 생각했다. '이렇게 죽으면 발굴 보고서는 누가 마무리하는 거지.' 몇 달을 매달렸던 유적지 보고서가, 하필 이 순간에 떠오를 게 뭐란 말인가. 죽음을 앞두고도 사람은 이렇게까지 어처구니없어질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걱정을 끝으로, 세상이 다시 검게 물들었다. 그런데 이번의 어둠은 이전과 달랐다. 완전한 무(無)가 아니라, 아득히 먼 곳에서 은은한 붉은 빛이 스며드는 공간이었는데, 나는 그 안에 부유하듯 떠 있었다. 발밑도 없고 천장도 없는, 오직 붉은 안개만이 사방을 채운 그곳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서 마치 감각 자체가 정지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낯선 문양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저 파편에 새겨져 있던 것과 똑같은 문양이었는데, 나선형으로 얽힌 선들 사이사이에 알아볼 수 없는 글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문양이 서서히 회전하며 내 가슴 쪽으로 스며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나는 두려움보다 학자적 호기심이 먼저 발동해서 그 흐름을 관찰하려 했다. 이 문양의 회전 방향, 색의 농도 변화, 그것이 스며드는 속도까지도 기록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는데, 죽기 직전까지도 관찰 본능을 못 버리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뜨거운 것이 심장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고,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켜며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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