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독 먹었더니 고수가 됐다

2화

대비(大比)의 날, 검성문 하단 영지 연무장.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바람은 선선했다. 연무장을 둘러싼 관람석에는 수천 명의 시선이 걸려 있었다. 하단 영지의 모든 제자들과, 상단에서 내려온 심사관들, 그리고 각지에서 몰려든 구경꾼들까지. 올해 대비는 유난히 성황이었다. 무보산 자락을 타고 넘어온 바람이 연무장의 흙먼지를 살짝 흩뜨렸다. 그 먼지 사이로, 목검을 든 소년들이 하나둘 조를 나누어 서 있었다. 심사관들의 목소리가 확성음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조 배정을 마친다. 각 조의 승자만이 본선에 오른다." 관중석 한쪽, 조민아는 손톱을 물어뜯듯 초조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자리에는 조성민이 앉아 있었다. 겉으로는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무릎 위에 놓인 손은 아까부터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성민아, 강진이 몇 조야?" 조민아가 물었다. "삼 조." "거기 상품 자질 선배들 많다던데." "...그렇다더라." 조성민의 대답은 짧았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삼 조의 대기줄에 서 있는 이강진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보다 유독 곧게 뻗은 어깨. 평소보다 유독 여유로운 걸음걸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성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강진은 조 안에서 예상 밖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하품 자질의 소년이 상품 자질의 선배들을 차례로 꺾어가는 모습에, 관중석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저놈, 하품이라고 들었는데?" "동작이 왜 저렇게 정교하지... 자질로 안 되는 수준인데." "움직임이 무슨 상품 자질 애들 같아." 첫 번째 상대는 삼 초식도 채 버티지 못하고 목검을 놓쳤다. '딱!' 두 번째 상대는 이강진의 발놀림을 따라가지 못하고 스스로 균형을 잃었다. 세 번째 상대는 아예 처음부터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이강진의 보법이 그보다 한 걸음 빨랐다. 이강진의 몸속에서는 조성민이 건넨 단약의 기운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일시적인 활력이었다. 혈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평소보다 배는 빠른 몸놀림이 가능해졌다. 근육 하나하나가 팽창하듯 부풀어 오르는 느낌.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차오르는 느낌. 이강진 자신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따라 몸이 가볍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가.' 이강진은 그렇게만 생각했다. 땀 한 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마저도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준결승. 이강진의 목검이 상대의 목검을 밀어내는 순간, 상대의 눈에 두려움이 스쳤다. "이 자식... 진짜 하품 맞아?" 상대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이강진의 목검이 다시 파고들었다. '파앙!' 목검과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관중석의 함성이 한층 커졌다. 결승전. 이강진의 상대는 하단 영지 최고의 유망주라 불리던 선배였다. 키가 크고, 팔이 길고, 상품 자질에 걸맞은 정갈한 검로를 지닌 소년이었다. 심사관들 사이에서도 이번 대비의 우승은 그가 유력하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다. "저 녀석과 만나다니, 운이 없구나." 관중석 어딘가에서 누군가 혀를 찼다. 하지만 승부는 예상보다 빠르게 끝났다. 선배가 먼저 움직였다. 정갈한 자세에서 뻗어 나온 검로는 교본에 실릴 법할 만큼 흠이 없었다. '슈욱!' 목검이 이강진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이강진의 몸이 그 궤적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반보 물러섰다가, 곧바로 파고들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결코 낼 수 없는 속도였다. '슈아악!' 이강진의 목검이 상대의 목검을 후려쳤다. "제칠식, 유운단검(流雲斷劍)!" 이강진이 외쳤다. 연무장의 공기가 순간 갈라지듯 진동했다. '딱!' 상대의 목검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튕겨 나간 목검이 바닥을 두어 번 튀며 굴렀다. 정적이 일었다. 선배는 자신의 빈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말도 안 돼." 그리고 곧, 연무장이 터질 듯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우승! 하단 영지 대비 우승자는 이강진이다!" 심사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관중석이 파도처럼 일어섰다. 누군가는 발을 구르고, 누군가는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하품 자질이 우승이라니!" "저놈 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이야?" 관중석 한쪽에서 조민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눈에는 놀람과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강진이가... 정말 우승했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가에 물기가 살짝 어렸다. 그녀는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성민아! 봤지? 봤지?!" 조성민은 그 옆에서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고 있었지만, 조민아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성민아, 왜 그래? 안 기뻐?" 조민아가 물었다. "기쁘지. 당연히 기쁘지." 조성민이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시상대로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이강진의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시작될 시간인데.' 조성민은 속으로 시간을 헤아렸다. 단약을 건넨 지 이미 반나절이 지났다. 약효가 사그라들며 뒤따라올 것이 무엇인지,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시상대. 심사관이 우승 깃발을 이강진에게 내밀었다. "하단 영지 대비 우승, 이강진!" 이강진이 우승 깃발을 받아들었다. 깃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관중의 환호가 절정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강진! 이강진!" 그런데 그 순간, 이강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급격히 사라졌다. "...?" 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떨림이 아니었다. 전신의 감각이 조금씩 마비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스스스스.' 혈맥을 타고 흐르던 뜨거운 기운이, 이제는 얼음처럼 차갑게 바뀌어 있었다. 발끝부터 서서히 감각이 사라져 올라오는 느낌. 마치 누군가 그의 몸속에 얼음물을 부어놓은 것 같았다. "크윽..." 이강진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우승 깃발을 쥔 손이 자기도 모르게 흔들렸다. 몸의 이상 반응에 그는 처음엔 그저 승리 후의 피로라고 여겼다. 하지만 곧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경맥이 하나둘 끊어지는 감각. 마치 몸속에서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다가, 뚝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이강진은 분명히 그 감각을 느꼈다. 가슴 한복판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사지 끝으로 뻗어 나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쥐어짜지는 것 같았다. '이게... 뭐지.' 이강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의 몸은 날개를 단 듯 가벼웠다. 그런데 지금은,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강진아?" 조민아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시상대 앞으로 다가섰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짙게 묻어 있었다.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이강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무언가로 막힌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야가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 관중석의 얼굴들이, 깃발이, 하늘이, 모두 뭉개진 형상으로 보였다. 대신 그의 무릎이 서서히 꺾이기 시작했다. '투욱.'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관중석은 아직 그 이상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환호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강진! 이강진!" 누군가는 여전히 그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고, 누군가는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시상대 위, 우승 깃발을 손에 쥔 소년의 몸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강진의 시야 끝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오는 조민아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편, 관중석 어딘가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조성민의 모습이 흐릿하게 겹쳐졌다. '왜...' 이강진의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오늘 아침 조성민이 건넨 작은 단약이었다. "몸에 좋은 거야. 대비 전에 먹어두면 도움이 될 거야."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이강진의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졌다. '쿠당탕!' 우승 깃발이 손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강진의 몸이 시상대 위에 완전히 쓰러졌다. "강진아!!" 조민아의 비명이 그제야 연무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환호로 가득했던 관중석이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방금 쓰러진 거야?" "우승자가 쓰러졌어!" 심사관들이 다급하게 시상대로 달려 올라갔다. "의원! 의원을 불러라!"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성민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쓰러진 이강진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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