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석유 냄새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눅눅하고 오래된, 쇠와 기름이 뒤섞인 냄새였다. 어릴 때부터 맡아온 냄새라 이제는 아버지의 체취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침대 옆 휠체어에 앉아 작은 놋쇠 통을 만지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예전엔 저 손으로 청동급 자탄을 백 개도 넘게 깎아냈다고 했다. 지금은 통 하나 여는 것도 시간이 걸렸다.
"이리 와봐라."
낮은 목소리였다. 명령이라기보다는 그냥 습관처럼 나오는 말투였다.
나는 문턱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오늘 등록소에서 최덕수 팀에 이름을 올렸다는 말을, 아직 하지 않았다.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하루 종일 미룬 것도 있었다. 등록소를 나올 때부터 이미 이 순간을 상상했다. 아버지가 화를 낼까, 아니면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까.
"벌써 알고 있다."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김이 빠졌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이 집에서 비밀은 오래 못 갔다. 옆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듯 흘린 말 한마디가 저녁상에 오르기 전에 아버지 귀에 들어가는 동네였다. 하물며 아들이 시험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이 새어나가지 않을 리가.
방 안 등불이 낮게 흔들렸다. 그 불빛에 아버지 얼굴의 굴곡이 더 깊게 파여 보였다.
그가 손에 쥔 것을 내밀었다. 작고, 검은, 총알 하나였다. 표면에 미세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육안으로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촘촘했다. 손끝에 닿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마치 그 안에 뭔가 살아있는 것이 잠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제독 자탄이다."
그가 말했다.
"청동급 시절에 쓰던 마지막 하나야."
숨이 잠깐 멈췄다. 아버지가 만드는 자탄은 시장에 나가면 은화 수십 닢은 받을 물건이었다. 하물며 제독 자탄이라면. 어릴 적 옆에서 구경할 때 들었던 이름이었다. 특급 사냥꾼들만 쓸 수 있는, 위력이 다르다는 그 물건.
"이걸 왜."
"쓸 데가 있을 거다."
간단한 답이었다.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더 캐묻지 않았다. 그는 원래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고, 다리를 잃은 뒤로는 더 그랬다. 사고 이후로 아버지는 문장을 반으로 줄이는 버릇이 생겼다. 마치 말을 아껴서 다리 대신 채우려는 것처럼.
나는 자탄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차가운 무게가 허벅지에 닿았다. 별거 아닌 무게였는데도, 그 무게가 계속 신경 쓰였다.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라."
그가 씩 웃었다.
"안 그래도 잔소리할 게 산더미다."
농담이었다. 그런데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웃음에는 늘 뭔가 뒤에 숨긴 게 있었다. 다리를 잃기 전에도 그랬고, 잃은 뒤로도 그랬다. 나는 그 웃음의 뒷면을 읽으려 애썼지만, 그날 밤엔 결국 실패했다.
방을 나오면서 창밖을 봤다. 매연 섞인 밤하늘에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서부 격리구역 방향에서 낮게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내 귀가 만들어낸 환청이었는지도 모른다.
***
다음 날 아침, 등록소 앞은 사람으로 붐볐다.
매연이 낮게 깔린 하늘 아래, 사냥꾼들이 무기를 점검하며 줄지어 서 있었다. 창을 어깨에 걸친 사람, 등에 활을 멘 사람, 허리에 낡은 권총을 찬 사람. 다들 표정이 비슷했다. 긴장과 무심함이 뒤섞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냥꾼들의 얼굴.
박준혁이 창을 어깨에 걸치고 다가왔다.
"어. 왔네."
어제 만난 게 전부인데 벌써 익숙한 투였다. 이 남자는 어제도 처음 본 사람 대하듯 하지 않았다. 원래 이런 성격인지, 아니면 나를 만만하게 본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최 팀장은 저쪽에."
그가 턱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비만한 중년 남자가 서류를 들고 사람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최덕수였다. 가까이서 보니 눈매가 유난히 가늘었다. 웃을 때조차 그 눈은 완전히 감기지 않고 가느다란 틈을 남겼다. 그 틈 사이로 뭘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강태호 군."
그가 명단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웃었다.
"열일곱인데 벌써 시험 통보를 받았다지. 대단하군."
칭찬처럼 들렸지만 어딘가 껄끄러웠다. 그가 내 나이를 말할 때 강조하는 방식이 마음에 걸렸다. 대단하다는 말과 그의 표정이 어울리지 않았다.
"운이 좋았습니다."
짧게 답했다. 더 길게 말할 이유가 없었다.
"보상은 확실히 챙겨줄 테니 걱정 말게."
그가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갔다. 손바닥이 두껍고 축축했다. 그 촉감이 옷 위로도 선명하게 남았다.
왜인지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확실히, 라는 말은 대체로 확실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었다. 확실하면 그냥 확실하다고 하면 될 텐데, 굳이 그 단어를 앞에 붙이는 사람은 대개 뭔가를 감추고 있었다.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도 그랬다. "이거 확실히 좋은 물건이오"라고 할 때가, 사실 제일 의심해야 할 순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냥꾼들도 하나둘씩 최덕수와 몇 마디 나누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밝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사냥꾼 한 명이 최덕수 뒤에서 조용히 뭔가를 중얼거렸는데,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표정만으로도 좋은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사람 원래 저래요?"
박준혁에게 낮게 물었다.
"뭐가."
"말 하는 방식이. 뭔가 다 뭉뚱그리는 느낌이라."
박준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팀장이 다 그렇지. 뭐 하나 딱 정해서 말하면 나중에 책임질 일이 생기니까."
납득이 가는 답이었다. 그런데도 완전히 편해지진 않았다.
***
마차 세 대가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물들이 점점 낮아지고, 낡은 담벼락 사이로 철조망이 나타났다. 서부 격리구역. 지도에서만 봤던 이름이 실제로 눈앞에 서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지도에는 그저 붉은 선 하나로 표시되어 있던 곳이었다. 실제로 보니 그 선은 훨씬 두껍고, 훨씬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검문소마다 감시탑이 세워져 있었고, 총구가 우리를 따라 움직였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총구가 움직인다는 건 안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우리를 하나의 표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냥감을 사냥하러 가는 사람들이, 도리어 감시탑 위에서 사냥감처럼 관찰당하고 있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저기 위에."
박준혁이 눈짓으로 탑 꼭대기를 가리켰다.
사람 형체가 하나, 망원경을 든 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리가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자세만으로도 뭔가 훈련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왜 저렇게 지켜보는 겁니까."
"글쎄."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2성급이면 원래 이래. 위험수당 붙는 이유가 있는 거지."
2성급. 그 숫자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아직 감이 오지 않았다. 다만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 목소리가 살짝 낮아진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껴졌다.
마차가 멈췄다. 최덕수가 내려서 서류를 검문소 초소에 건넸다. 초소 안에서 도장 소리가 났다.
턱, 턱.
두 번.
귓가에 익숙한 소리였다. 등록소 게시판에서 봤던 그 겹쳐 찍힌 도장이 떠올랐다. 왜 자꾸 두 번씩 찍는 걸까. 한 번으로도 충분한 도장을, 굳이 두 번 겹쳐 찍는 이유가 뭘까. 서류 확인용 도장이 두 개 필요한 절차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습관인가.
생각이 자꾸 그 소리로 돌아갔다. 별거 아닌 디테일인데, 자꾸 걸렸다. 마치 몸이 먼저 뭔가를 알아채고, 머리는 아직 그걸 언어로 정리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덕수가 돌아서며 웃었다.
"자, 다들 준비하지. 오늘 밤 안으로 자리를 잡아야 해."
웃는 얼굴이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주머니 속 자탄의 무게가 그 순간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왜 그걸 나에게 줬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하나만은 분명했다. 아버지가 아무 이유 없이 뭔가를 건네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마차 문이 열리고, 우리는 하나씩 내렸다. 발밑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격리구역의 공기는 도시와 달랐다. 매연 냄새 대신, 뭔가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를 어디서 맡아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철조망 너머로, 저 멀리 검은 숲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