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독 사냥꾼 시험까지 6개월

1화

쇳내가 먼저 났다. 녹슨 우편함 뚜껑을 열 때마다 나는 냄새였다. 쇠와 곱은 물이 만나 삭아가는 냄새. 이 골목 전체가 그런 냄새를 풍겼다. 그 안에 흰 봉투 하나가 꽂혀 있었다. 먼지 앉은 우편함 안에서 유난히 새것처럼 하얬다. 손을 넣기 전에 잠깐 망설였다. 쥐새끼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서. 실제로 지난달엔 우편함 안에서 새끼 독설치가 튀어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이 도시를 저주했다. 나는 그 하얀 색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 동네에서 새것은 대부분 나쁜 소식이었다. 좋은 소식은 늘 낡고 구겨진 종이로 왔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그런 법칙이 있었다. 봉투를 뜯기 전에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오늘 하루 종일 폐건물 지하에서 쥐만 한 독설치(毒鼠雉) 세 마리를 잡느라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그 자식들, 마지막 한 마리가 유독 지독하게 굴었다. 독니에 스치기만 해도 반나절은 팔이 저릿거렸다. 지금도 오른팔 팔꿈치 안쪽이 뻐근했다. 현상금이라고 해봤자 은화 두 닢. 그걸로 오늘 저녁 감자 두 알과 소금을 살 수 있었다. 어쩌면 소금은 못 살 수도 있었다. 요즘 소금값이 자꾸 오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종이를 펼쳤다. 관인이 찍혀 있었다. 붉은 인주가 아직도 살짝 번져 있었다. 급하게 찍은 것처럼. 『독毒 사냥꾼 자격시험 응시 통보 — 강태호 귀하』 순간 손끝이 저렸다. 더위 때문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됐다. 나는 한 번 더 눈을 깜빡이고 글자를 다시 읽었다. 같은 글자였다. 강태호. 내 이름이 맞았다. 독 사냥꾼. 혈맥 각성자. 청동급, 은급, 그 위로 올라가면 금급까지 있다는,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사람 취급받는 존재들. 아버지가 한때 그 자리에 있었다. 다리 두 개를 두고 내려온 자리였다. 그 자리가 이제 내 앞으로 넘어왔다는 게 웃겼다. 웃을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는 종이를 다시 접었다. "뭐야 이거."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길 건너 담벼락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다가 흥미 없다는 듯 사라졌다. 그래, 너도 관심 없겠지. *** 집에 들어가는 계단은 열일곱 개였다. 어릴 때부터 세어서 안다. 열여섯 번째 칸이 유독 삐걱거렸다. 삐걱―. 그 소리가 나면 어머니가 먼저 반응했다. 그 소리는 이 집 안에서 유일하게 정확한 시계 역할을 했다. "태호냐." 방 안쪽에서 목소리가 넘어왔다. "네."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독약과 마른 약초, 그 아래 깔린 좁은 방의 습기. 그 세 가지가 뒤섞여서 만들어내는 특유의 공기. 이 냄새를 맡으면 몸이 자동으로 풀렸다. 집이란 그런 거였다. 어머니 윤서영이 부엌 자리에서 칼로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왼쪽 눈에는 검은 안대가 씌워져 있었다. 3년 전 그 자리는 이제 그냥 빈 구멍이었다. 칼질 소리는 여전히 정확했다. 눈이 하나 없어도 손끝의 감은 그대로였다. "늦었네." 어머니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독설치 세 마리요." "그거 얼마 쳐줬어." "은화 두 닢." 어머니가 픽 웃었다. 웃음소리에 힘이 없었다. "싸구려 장사꾼들. 시세가 그렇게 떨어졌나." "떨어진 게 아니라 원래 그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문제지." 방 안쪽, 커튼 뒤에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컥, 컥. 마른 나무를 부러뜨리는 소리 같았다. 나는 그 소리가 날 때마다 숨을 잠깐 참는 습관이 있었다. 언제 멈출지 모르니까. 나는 봉투를 어머니 앞에 내밀었다. 어머니가 나물 다듬던 손을 멈췄다. 칼끝이 도마에 닿은 채로 그대로 멈췄다. 종이를 펼치는 소리, 사각. 어머니의 남은 한쪽 눈이 천천히 커졌다. 눈동자가 종이 위를 두 번, 세 번 오갔다. 마치 글자가 틀렸을까 확인하는 사람처럼. "이거…… 언제 응시 신청했어." "안 했어요." "그럼 왜 왔는데." "몰라요. 아마 지난달 그 3성급 협조 임무 때문 아닐까요." 지난달, 서부 격리구역 정찰에 임시 인력으로 끌려갔다가 살아남았다. 그때 담당관이 내 근접전 판단력을 눈여겨봤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를 눈여겨본 게 아닐까 싶었다. 마법 재능은 없었다. 혈맥에서 아무것도 각성하지 않았다. 그래도 몸은 빨랐고, 눈은 안 죽었다.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어머니가 종이를 다시 접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자격시험은 응시료가 따로 있어. 금화 삼십." 순간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삼십 골드요?" "6개월 안에." 어머니가 종이 하단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작은 글자로 조건이 박혀 있었다. 『응시 자격 유효기간 180일. 기한 내 응시료 미납 시 자격 자동 소멸.』 금화 삼십. 독설치 사냥으로는 십 년이 걸려도 못 모을 돈이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은화 두 닢씩 모으면, 하루도 안 쉬고 모으면. 계산이 도중에 멈췄다. 숫자가 너무 커서 더 이상 계산할 의미가 없었다. *** 밥상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나무판 위에 죽 세 그릇이 놓였다. 좁쌀에 감자를 갈아 넣은 것. 김이 오르지도 않았다. 숟가락으로 뜨면 걸쭉한 게 아니라 그냥 물기 많은 죽이 흘러내렸다. 아버지 강민준이 침대 옆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양다리는 무릎 아래로 없었다. 5년 전, 청동급 임무 중 독 숙주의 산성 안개에 하반신이 녹았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아버지 입으로 직접 들은 적은 없었다. 어머니한테서 몇 번, 이웃한테서 몇 번, 조각조각 주워 들은 이야기였다. "삼십 골드라……" 아버지가 죽을 뜨다 말고 나를 봤다. 그 눈빛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뭔가를 재는 눈빛이었다. "임무 몇 개 뛰면 되겠지." 내가 태연하게 말했다. 속으로는 계산이 안 됐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속으로는 숫자가 뒤엉켜서 아무것도 안 나왔다. "2성급 임무 하나가 얼마쯤 되지." 아버지가 물었다. "그건 왜요." "모르면 대답을 못 해줄까 봐서 물어보는 거다." 아버지 특유의 무뚝뚝한 농담이었다. 저 양반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꼭 저런 농담을 던졌다. 농담이라기보다는 그냥 말을 그렇게밖에 못 하는 사람이었다. "금화 열이요. 위험수당 붙으면 열둘." "세 번이면 되네." "세 번 살아서 돌아오면요." 아버지가 잠시 조용해졌다. 숟가락이 죽 그릇 벽을 긁는 소리만 났다. 달그락.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방 안이 그만큼 조용했다는 뜻이었다. "내일 등록소 다녀와." 어머니가 말했다. "거기 2성급 인력 모집 붙어 있을 거다. 소포장업자들이 요즘 사람 많이 찾는다더라." 소포장업자. 정부 임무를 대신 받아 사냥꾼들에게 하청 놓는 자들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벌써 배가 아팠다. 그런 자들 밑에서 일하면 목숨값이 항상 헐값으로 떨어졌다. "믿을 만한 데 있어요?" "믿을 만한 데가 어딨어. 그냥 안 죽이는 데를 찾아야지." 어머니가 웃지도 않고 말했다. 그게 이 동네의 농담이었다. 웃기지도 않은데 다들 그 말을 들으면 픽 웃었다. 나도 픽 웃었다. *** 밤이 깊어지고, 어머니가 아버지의 몸을 눕히는 걸 도왔다. 나는 방 밖으로 나와 등을 벽에 붙이고 앉았다. 벽이 차가웠다. 땀이 식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등 뒤로 아버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태호 저놈, 갈 데가 정해지면 다시 불러라." 어머니가 뭐라고 낮게 대답했다. 잘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 톤만으로도 무슨 말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걱정하는 말이었을 거다. 아니면 계산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었다. 이 집에서는 걱정과 계산이 항상 같은 문장 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통보서를 다시 꺼내 들여다봤다. 독 사냥꾼. 혈맥 각성자. 그 단어들이 낯설고 무겁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저 단어들을 짊어지고 살다가 두 다리를 두고 내려왔다. 나는 저 단어들을 짊어지고 뭘 두고 내려오게 될까. 마당 쪼가리 하늘에 별은 없었다. 대재앙 이후로 이 도시 밤하늘에서 별을 본 적이 없다는 게 문득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는 별이 있었다는 얘기를 어머니한테서 들었다. 지금은 그냥 잿빛 하늘만 있었다. 매연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하늘을 계속 덮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등록소 게시판 앞에 서서 나는 그 이름을 처음 봤다. 게시판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다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절박함과 무심함이 반쯤 섞인 얼굴. 『2성급 임무 인력 모집 — 팀장 최덕수』 게시판 아래 몇 줄 더 있었다. 보상 조건, 위험도 등급, 모집 인원 세 명. 손끝으로 그 종이를 만져봤다. 종이 가장자리가 유난히 반질반질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만지고 지나간 흔적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종이 앞에 서서 같은 계산을 했을까.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여기 등록하려고?" 뒤에서 누가 물었다. 턱수염이 거뭇하게 자란 남자였다. 키가 크고, 손에 흑색 목재로 된 창을 짚고 있었다. 창날 부분이 유독 어두운 색이었다. 날이 많이 사용된 흔적이 보였다. 녹인지 핏자국인지 구분이 안 됐다. "네." "최덕수 팀?" "…네." 남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 시선이 딱히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냥 익숙한 시선이었다. 값을 매기는 시선. "어리네." "열일곱입니다." "난 박준혁이야. 아마 같이 갈 거다." 박준혁이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쳤다. 그 손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스쳐가면서 창끝이 살짝 흔들렸다. 챙-. 쇠와 쇠가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나는 다시 게시판을 봤다. 종이 하단, 작은 글자로 적힌 서명란이 눈에 들어왔다. 서명 옆에 도장이 두 번 겹쳐 찍혀 있었다. 한 번 찍은 위에 다시 한 번. 왜 저기만 두 번 찍혀 있을까. 그 순간까지 나는 아무 의미도 두지 않았다. 그저 관인 찍는 사람 손이 좀 굼떴나 보다, 하고 넘겼다. 그 작은 어긋남 하나가 나중에 얼마나 큰 구멍이 될지, 그때는 정말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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