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 왼손, 우습게 보지 마

4화

### 4화 치료실 특유의 씁쑤레한 약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말린 쑥과 정체 모를 뿌리 냄새가 뒤섞여 방 안 가득 퍼져 있었다. 나는 하루 반나절을 그곳 침상에서 보냈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왼팔은 부목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손등의 문양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옅은 붉은 자국만 남아 있었는데, 마치 화상을 입었다가 아문 흔적 같았다. 다만 손끝에 닿는 감각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졌다. 이불의 촉감조차 예전과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이게 후유증인 걸까.) "움직여봐." 선아가 침상 옆에 앉아 내 왼손을 가리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시선은 손등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하나씩 굽혔다. 엄지, 검지, 중지. 순서대로 힘을 주자 관절이 삐걱거리는 듯한 느낌이 잠깐 스쳤다. 평소보다 힘이 덜 들어가는 느낌이었지만, 예전보다 심하게 떨리지는 않았다. "…괜찮은 것 같아요." "다행이네." 선아는 짧게 말하고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오후 햇빛이 창틀을 따라 방 안으로 길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 빛 속에서 그녀의 옆모습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콧날을 따라 떨어지는 빛의 경계선이 마치 칼로 그은 듯 선명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왜 나를 도와줬을까.) 족장의 딸이 이방인 하나를 위해 이렇게 시간을 쓸 이유는 없었다. 무가 내 위계로 보면, 나는 그녀와 눈도 마주치기 어려운 처지였다. 하지만 선아는 그 하루 반나절 동안 몇 번이고 이곳을 찾아왔다. 아침 수련이 끝난 직후에도, 저녁 식사 전에도, 그녀는 잠깐씩이라도 이 방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일이 반복되자 더는 우연이라 부를 수 없었다. "…왜 자꾸 오세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말해놓고 나서야 이게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아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게 이상해?" "이상하죠. 저는… 그냥 이방인이잖아요."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창밖에서 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평소라면 그저 배경음이었을 그 소리가, 이 순간에는 유독 크게 들렸다. "이상한 게 아니라." 선아가 낮게 말했다. "네가 죽으려고 했던 그 순간, 내가 봤어." 나는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느낌이었다. "그 문양… 그거, 보통 사람 몸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신청령 체계로도 설명이 안 돼. 나 육 단계까지 왔는데도, 그런 건 본 적이 없어." 짧은 정적이 흘렀다. 나는 이불 끝을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러니까 궁금해서 오는 거야. 너한테, 뭐가 있는지." 말끝에 그녀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그 표정이 평소의 담담함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나는 분명히 봤다. (그냥 궁금해서일까.) 나는 그 이유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굳이 되묻지 않았다. 더 캐물었다가 그녀가 다시 오지 않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감사해요. 그날, 구해주셔서." "됐어. 그런 말 안 해도 돼." 선아는 짧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맛자락이 스치며 스윽 소리를 냈다. "내일부터 다시 수련장 나와. 왼팔은 무리하지 말고." "…강준은요." 그 이름을 꺼내자 선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방금까지 있던 부드러운 기색이 탁 사라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암상은 명백한 규칙 위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부족했다. 말끝이 아주 살짝 갈라졌다. 나도 알고 있었다. 강준의 아버지는 무가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고, 그런 위치는 종종 규칙보다 위에 있었다. 선아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더는 그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턱을 넘기 전,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나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눈으로만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러고는 이내 문이 닫혔다. 며칠 뒤, 나는 다시 수련장에 나갔다. 왼팔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수련장 특유의 흙냄새와 땀 냄새가 코끝에 닿는 순간, 묘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이 냄새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이전과 조금 다른 종류의 시선이 섞여 있었다. 두려움 같은 것. 몇몇은 내가 지나갈 때 슬쩍 시선을 피했고, 몇몇은 대놓고 거리를 두었다. 비시합에서 있었던 이상한 일에 대한 소문이 이미 산 전체에 퍼져 있었을 것이었다. 누군가는 내 손등에서 이상한 문양이 빛났다고 했을 테고, 또 누군가는 그걸 저주라고 불렀을지도 몰랐다. 정확히 무슨 말이 돌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시선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선아는 그날부터 나와 함께 수련을 시작했다. "기본부터 다시 봐줄게." 그녀의 지도는 정확했고, 낮고 단정한 지시로 이루어졌다. "오른손 자세 낮춰. 왼팔은 방어 위치로만 써." 나는 그녀의 말을 하나하나 따르며 움직였다. 발끝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무릎을 살짝 굽히고, 시선은 정면. 그녀가 가르쳐주는 순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땀이 흐를 때마다,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다시 자세를 고쳐주었다. 손목을 잡아 각도를 바꿔주는 그녀의 손길은 놀랍도록 조심스러웠다. 한번은 내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을 때, 선아가 재빨리 팔을 잡아 붙잡아주었다. 탁, 짧은 소리와 함께 우리 둘의 몸이 순간 가까워졌다. "조심해." 그녀는 짧게 말하고는 곧바로 손을 놓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자세를 잡으라는 손짓을 했지만,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는 사이,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끾기 시작했다. 선아가 곁에 있을 때면, 왼손의 낯선 감각조차 잊혀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수련이 끝나고 그녀가 다음 동작을 설명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 사람은…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데.) 신청령 육 단계, 족장의 딸, 무가의 미래. 그녀와 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녀가 다른 수련생을 가르치러 자리를 옮길 때조차, 내 시선은 저절로 그쪽을 향했다. (부럽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나는 스스로도 이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이 사람 곁에 있으면 조금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뿐이었다. 매일이 그저 버티는 시간이었던 이곳에서, 그 감각은 낯설고도 반가운 것이었다. 그날 저녁, 수련이 끝난 뒤 선아가 처소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하늘은 붉은빛과 푸른빛이 뒤섞여 있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지나갔고, 그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다. 그녀가 돌아서려는 순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 같은 사람 본 적 있으세요? 이렇게 이상한 힘 가진 사람." 선아는 걸음을 멈췄다. 등을 보인 채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바람이 한 번 더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굳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그녀는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짧은 대답 속에,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말투 끝에 걸린 미묘한 떨림, 그리고 조금 빨라진 걸음. 평소의 그녀라면 이렇게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둠이 조금씩 처소 앞을 덮어갔지만, 나는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아니, 라고 했지만…정말 아닐까.) 그 짧은 대답 하나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 떠나지 않았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