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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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련장 담벼락 근처를 지날 때마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귀에 꽂혔다.
"강준이 이번엔 뭔가 준비했다던데."
"암상 말이야?"
"그거 원래 비시합 금지 술법 아니었어?"
"근데 누가 말리겠어. 강씨 무가 도련님인데."
나는 못 들은 척 지나쳤지만 속에서는 이미 서늘한 무언가가 번지고 있었다.
암상.
정면으로 부딛치는 게 아니라 그림자 속에서 은밀하게 상대의 영기 흐름을 흩뜨리는 술법이라고 들었다.
비시합에서는 엄연히 금지된 수법이었다.
심판인 강 사범조차 강준의 숙부였다.
규칙이란 것이 애초에 이방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심판도 강씨겠지.)
수련장 마당을 가로지를 때마다 아이들의 시선이 등에 따라붙었다.
누군가는 안타깟다는 듯 나를 쳐다봤고, 누군가는 재밋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웃음을 참았다.
나는 그 어느 시선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저 걸음을 빠르게 옮겨 처소로 향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처소 마루에 앉아 왼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손등의 무늬가 여전히 이상하게 뒤틀려 있었다.
달빛이 그 위로 비스듬히 내려앉아 있었는데, 무늬는 그 빛조차 삐걱거리는 듯 이상하게 굴절시키고 있었다.
"이걸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펴보았다.
엄지, 검지, 중지까지는 그럭저럭 움직였지만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늘 반박자 늦게 따라왔다.
그 미세한 지연이 실전에서는 치명적이라는 걸 나는 지난 삼 년 동안 몸으로 배웠다.
오른손만으로는 강준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그는 정식으로 신청령 사 단계를 통과한 아이였다.
나는 아직 이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왼손이 정상이었다면 지금쯉 삼 단계는 넘었을 거라고, 사범들도 몇 번 흘리듯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지나간 가정에 매달리는 것만큼 소용없는 일도 없었으니까.
풀벌레 소리가 마루 밑에서 낮게 울렸다.
평소라면 익숙하고 평온했을 그 소리가, 그날 밤에는 이상하게 귀에 걸렸다.
마치 무언가 어긋난 곳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처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수련장에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비시합이 열리는 원형 마당 가운데, 강준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몇몇 무리들이 벌써부터 낄낄거리며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흥분과 기대가 뒤섞인 묘한 열기가 감돌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오전의 여흥거리였을 것이다.
강준이 나를 보자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드디어 오셨네. 이 자식."
나는 대답하지 않고 마당 안으로 걸어갔다.
발밑의 흙이 유난히 단단하게 느껴졌다.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강 사범이 손을 들어 정적을 만들었다.
그 손짓 하나에 마당 전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시작."
짧은 종소리가 울렸다.
댕.
강준이 먼저 움직였다.
오른손을 들어 영기를 뽑아 올리며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영기의 궤적이 허공에 붉은 실선처럼 남았다가 곧 흩어졌다.
나는 옆으로 몸을 틀며 그의 공격을 피했다.
(정면은 위험해. 거리를 벌려야 해.)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오른손에 영기를 모았다.
작은 파장이 손끝에서 일었다.
손목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강준은 곧바로 방향을 바꿔 다시 달려들었다.
나는 그의 발끝을 주시하며 다음 움직임을 가늠하려 했다.
(왼쪽으로 틀 거야. 지난번에도 그랬으니까.)
예상대로 그는 왼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반격의 영기를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강준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손가락을 은밀하게 튕겼다.
(뭐지?)
찰나, 발밑 그림자가 미묘하게 일렁였다.
삐걱거리는 듯한 위화감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낯선 파문이 발밑에서 스며들어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감각뿐이었다.
퍽.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충격이 왼팔을 강타했다.
시야가 흔들렸다.
(뭐야 이건…)
세상이 잠깐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소리도 뭉개져 들렸고, 사람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왼팔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숙여 팔을 보았다.
소매가 검붉게 젖어 있었다.
그 검붉은 색이 천천히 번져나가는 것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저거 암상 아니야?"
"규칙 위반인데…"
"근데 누가 저 이방인 대신 나서겠어."
목소리들이 겹쳐 들려왔지만 어느 하나도 또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강 사범조차 미간만 살짝 좁힌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무표정이 오히려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강준이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섰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 정도로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
그는 낮게 웃으며 발끝으로 내 어깨를 밀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등이 흙바닥에 부딛치는 둔한 통증이 뒤늦게 느껴졌다.
"…비켜."
간신히 낸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 있었다.
강준은 대답 대신 몸을 돌려 걸어갔다.
웃음소리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 웃음소리는 마당을 채우다 서서히 흩어졌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바닥의 냉기가 옷을 뚫고 살갗까지 스며들었다.
왼팔은 감각이 거의 없었다.
손가락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미세한 떨림만 있을 뿐이었다.
(이 팔… 다시 못 쓰는 건가.)
그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어딘가가 시큰거렸다.
누군가 부축하려 다가왔지만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괜찮아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입만 움직였을 뿐이었다.
혼자 일어서서, 절뚝이며 처소로 돌아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팔이 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등 뒤에서 계속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문을 닫고 방 한가운데에 주저앉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오후 햇빛이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다.
빛이 스며드는 자리와 그림자가 진 자리가 방바닥 위에서 선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나는 그 경계선 위에 걸쳐 앉아 있었다.
3년.
3년 동안 참아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왼손은 처음부터 저주였다.
이 산에서 나는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사범들의 흘리는 말들, 아이들의 수군거림, 강준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귓가에서 재생되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구석에 놓인 낡은 검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손끝이 떨렸다.
검날이 창문 틈으로 스며든 빛을 받아 희미하게 번쩍였다.
손잡이의 낡은 가죽이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이상하게 차갑게 느껴졌다.
(그냥…여기서 끝내면.)
그 생각과 동시에,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왼팔에서 시작된 통증이 아니라, 왼손 그 자체에서 낯선 파문이 번지고 있었다.
손등의 뒤틀린 무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색을 바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