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 왼손, 우습게 보지 마

3화

### 3화 검날이 손목에 닿았다. 차가운 감촉이 피부를 스쳤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밖에서 스며드는 옅은 노을빛이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붉은빛이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끝이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폐 안 가득 공기가 차오르는 감각조차 낯설었다. 이대로 손에 힘을 주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담담하게 다가왔다. 강준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그의 비웃음,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 전부 흐릿하게 머릿속을 지나갔다. 손에 힘을 주려는 순간, 왼손이 갑자기 격렬하게 떨렸다. 쿵. 심장 박동이 아니라, 몸 안 어딘가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가슴이 아니라 뼈 속에서,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것 같았다. 나는 검을 놓쳤다. 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낮은 금속음을 냈다. 챙그랑. 손등의 무늬가 검붉은 빛으로 물들며 순식간에 팔 전체로 번져나갔다. "뭐, 뭐야…"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손끝에서 시작된 열기가 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살갗 밑으로 뭔가가 기어오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마치 벌레가 핏줄을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그 움직임이 소름 끼치게 선명했다. 눈앞이 흐려졌다. 방 안의 사물들이 마치 물속에서 보는 것처럼 일그러져 보였다. 책상 모서리가 휘어지고, 창문의 빛이 물결처럼 번졌다. (이건…뭐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던 건지조차 흐릿해졌다. 의식이 점점 옅어졌다. 바닥이 기울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바닥에 쓰러지듯 무너졌다. 몸이 바닥에 닿는 감각조차 뒤늦게,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왼손 위로 떠오르는, 검붉고 낯선 문양이었다. 그 문양은 마치 스스로 숨을 쉬는 것처럼 미세하게 일렁였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얘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낮고 다급한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나는 눈을 뜨려 했지만 눈꺼풀이 무겁게 짓눌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몸 전체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무거웠다. "이휘! 정신 차려!" 누군가 내 어깨를 강하게 흔들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강선아. 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간신히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표정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평소의 여유로운 얼굴이 아니었다. 눈썹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입술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왼팔로 향해 있었다. "…팔이 왜 이래." 선아가 조심스럽게 내 왼팔을 들어 확인했다.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 올린 손등에는 이상한 문양이 여전히 옅은 빛을 내며 남아 있었다. 피는 이미 멎어 있었다. 하지만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가 힘을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팔 전체가 부자연스럽게 뒤틀려 있었다. 핏줄이 평소보다 짙게 도드라져 보였고, 그 위로 검붉은 문양이 희미하게 맥동했다. "…죽으려고 했어?"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혀가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선아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다가, 방바닥에 떨어진 검을 발끝으로 밀어냈다. 검이 벽에 부딛히며 둔한 소리를 냈다. 탁. 그녀는 그 검을 한참 노려보았다. 마치 검이 아니라 그 검을 쥔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미친 짓이야, 이휘." 그녀의 목소리에는 화가 섞여 있었지만, 그보다 더 짙은 무언가가 배어 있었다.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감정이었을까. 나는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은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는 것만, 나중에서야 떠올랐다. "…강준이 그런 거예요."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목이 바짝 말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선아의 눈빛이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그건 나중에 얘기해. 지금은." 그녀가 내 왼손을 다시 조심스럽게 살폈다. 손끝으로 문양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듯 훑었다. "이 문양… 처음 봐." 낮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신청령 육 단계에 이른 천재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의 무언가. 그 사실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그때까지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선아의 얼굴에 드리운 낯선 긴장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선아가 문양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짚어보았다. 순간, 손등이 다시 미세하게 빛났다. 번쩍. 짧은 빛과 함께 방 안의 공기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딘가로 통하는 문이 잠깐 열렸다가 닫힌 것처럼. 그 순간 방 안의 온도가 한 자락 내려간 것 같았다. 창밖의 노을빛마저 한순간 어둡게 잠긴 듯했다. 선아도 그것을 느꼈는지 손을 재빨리 떼었다. 그녀의 손끝이 잠깐 떨리고 있었다. "…뭔가 있어. 네 왼손에."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걱정과 함께, 처음 보는 종류의 긴장이 섞여 있었다. 마치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살피는 눈빛 같았다. "당분간 아무한테도 이 얘기 하지 마." 선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투에는 평소의 장난스러움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몸을 부축해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선아의 팔이 내 옆구리를 단단히 받쳤다. "일단 치료실로 가자." 부축받아 걸어가는 동안, 나는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는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의 문양은 이제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 무언가가 여전히 숨죽인 채 웅크려 있는 것 같았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타박, 타박. 두 사람의 발소리가 어긋난 박자로 겹쳐졌다. 선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그녀의 옆얼굴에는 아직도 지우지 못한 긴장이 남아 있었다. (방금 그건…뭐였을까.) 죽으려던 순간 느꼈던 그 낯선 힘. 분명 왼손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냥 휩쓸렸을 뿐이었다. 마치 내 몸이 잠시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된 듯한 감각이었다. 그 감각이 사라진 지금도, 손끝에는 미세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선아의 부축을 받으며 걷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내가…살아 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죽으려 했던 순간이 불과 몇 분 전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걸어가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복도 끝, 치료실의 문이 보였다. 선아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문 앞에 다다르자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괜찮을 거야." 그녀가 낮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문이 열리고, 안쪽의 서늘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그 공기 속에서, 나는 왼손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문양은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지만, 손등 아래 어딘가에서 여전히 낮게 맥동하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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