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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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청운산 수련장 바닥은 아직 이슬에 젖어 있었다.
나는 그 위에 맨발로 섰다.
발바닥에 닿는 냉기가 정신을 깨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대열을 맞추고 있었다.
다들 강씨 성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검은 도복 위로 새겨진 강씨 가문의 문양이 새벽빛에 희미하게 반사되었다.
나만 아니었다.
이휘.
성도 없이 이름만 있는, 이 산에서 유일한 이방인.
내 도복에는 아무 문양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대열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였다.
"또 왼손 숨기고 있네."
누군가 뒤에서 낮게 비웃었다.
나는 못 들은 척 소매를 조금 더 당겼다.
왼손은 늘 긴 천으로 감아 두었다.
손등에 새겨진 문양 같은 흉터, 아니 흉터라기보다는 결이 이상하게 뒤틀린 무늬가 보이면 또 시끄러워질 게 뻔했다.
(오늘은 조용히 지나가자.)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런 날은 3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변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몇 번 더 들렸다.
누군가는 일부러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나는 흔들리지 않으려 발끝에 힘을 주었다.
발바닥 아래 이슬 젖은 흙이 차갑게 눌렸다.
그 서늘함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수련장 앞에 강 사범이 나타났다.
그의 걸음걸이는 언제나 절도가 있었다.
등 뒤로 넘긴 백발이 새벽바람에 흩날렸다.
그가 손을 들자 스무 명의 기합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영기 순환, 삼 회전!"
나는 오른손을 들어 가슴 앞에 원을 그렸다.
뜨거운 기운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와 어깨를 지나 손끝으로 흘렀다.
익숙한 흐름이었다.
오른손은 문제없었다.
오른손만은.
세 번째 회전이 끝날 무렵, 다른 아이들의 손끝에서 옅은 빛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
붉은빛, 푸른빛, 저마다 다른 기운의 색이었다.
내 오른손 끝에서도 옅은 빛이 번졌다.
남들보다 흐릿했지만, 그래도 색은 나왔다.
왼손을 슬쩍 움직여 보았다.
손끝에 힘을 밀어 넣으려는 순간, 손가락이 제멋대로 떨렸다.
툭.
작은 진동이 손목까지 올라왔다.
(또…이러네.)
나는 재빨리 소매 속으로 손을 감췄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심장이 잠깐 빠르게 뛰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수련이 끝나자 아이들은 하나둘 흩어졌다.
누군가는 웃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고, 누군가는 물통을 나눠 마셨다.
나는 그 틈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우물가로 향했다.
발밑에서 자갈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물가에 홀로 앉아 왼손 천을 풀었다.
손등의 무늬가 평소보다 조금 더 검붉게 보였다.
(기분 탓이겠지.)
손을 쥐었다 펴보았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삐걱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뭔가가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나는 우물물을 손등에 조금 끼얹었다.
차가운 물이 흉터 위로 흘러내렸다.
잠깐 시원했지만, 그 밑에서 올라오는 이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 감각을 애써 무시했다.
3년째 반복된 일이었다.
왼손은 늘 이상했고, 나는 늘 그것을 참는 법만 배웠다.
우물 표면에 내 얼굴이 흔들리며 비쳤다.
그 위로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 동그란 파문을 만들었다.
파문은 곧 잦아들었지만, 손끝의 진동은 그렇게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이휘."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강선아가 서 있었다.
족장의 딸, 이 산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신청령 육 단계를 이룬 천재.
그녀는 늘 그렇듯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아침 햇살이 그녀의 어깨 너머로 비스듬히 스며들어, 얼굴 반쪽에만 그림자가 졌다.
"손, 또 그래?"
나는 얼른 천을 다시 감았다.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아니에요. 그냥… 조금 뻐근해서요."
선아는 미간을 살짝 좁혔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대신 내 옆에 조용히 앉았다.
치맛자락이 이슬에 젖은 돌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오늘 비시합 명단 붙었어."
그 말에 심장이 툭 내려앉았다.
비시합.
무가 내에서 아이들끼리 실력을 겨루는 공식 대결.
승자는 위계가 오르고, 패자는 그만큼 밑으로 밀린다.
나는 지난 3년간 늘 최하위였다.
매번 명단이 붙을 때마다 내 이름은 늘 대결 상대의 이름과 함께, 그리고 늘 패배의 기록과 함께 나붙었다.
"누구랑…이에요?"
선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이미 답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잠깐 우물물 위로 떨어졌다.
"강준."
짧은 정적이 흘렀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강준.
족장의 조카이자, 이 산에서 나를 가장 집요하게 괴롭히는 아이.
그와의 대결이라면,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작년에도 나는 그와 붙었다.
그때 나는 오른팔이 부러진 채로 사흘을 앓았다.
그 기억이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예요?"
"사흘 뒤."
나는 우물물을 내려다보며 숨을 한 번 삼켰다.
사흘.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른손의 흐름은 익숙했지만, 왼손은 여전히 낯설고 삐걱거렸다.
그 왼손으로 강준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선아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조심해."
그 말만 남기고 그녀는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자갈길을 따라 점점 멀어지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우물물 위로 흔들리는 내 얼굴뿐이었다.
그날 낮, 나는 처소 뒤편 대나무숲으로 가서 홀로 오른손 수련을 했다.
익숙한 동작이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바람이 대나무 잎을 스치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평소라면 그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을 텐데, 오늘은 어딘가 낯선 파문처럼 들렸다.
나는 몇 번이고 원을 그리다가, 결국 왼손을 슬쩍 들어보았다.
손가락 끝에서 다시 그 익숙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조금 더 뚜렷했다.
(이게 대체 뭘까.)
나는 손을 내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다.
그 맑음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날 저녁 나는 처소로 돌아가는 길에 왼손을 다시 풀어보았다.
달빛 아래에서 손등의 무늬가 미세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착각이겠지.)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다시 보았다.
빛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는 여전히 낯선 진동이 남아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껍질을 두드리는 것 같은, 낯선 파문이었다.
나는 손등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검붉은 무늬가 달빛을 받아 미묘하게 일렁이는 듯 보였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그 짧은 순간의 일렁임이 자꾸 눈앞에 남았다.
(설마 이게 점점 심해지는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는 그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천을 다시 감았다.
사흘 뒤의 비시합.
그리고 상대는 강준.
어쩐지 오늘 밤은 유독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처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나는 이불 위에 몸을 눕혔지만, 눈은 감기지 않았다.
천장의 나뭇결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왼손을 가슴 위에 얹었다.
손끝에서 여전히 희미한 떨림이 전해졌다.
그 떨림은 마치 무언가가 안에서 대답을 기다리듯, 규칙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그 검붉은 무늬가 자꾸 눈앞에 떠올랐다.
사흘 뒤, 강준과의 대결.
그리고 이 손.
둘 중 무엇이 먼저 나를 무너뜨릴지, 나는 알 수 없었다.